롬바르드족 (Lombards)        500 ~ 600  2009. 4. 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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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드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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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드 왕국(568년~774년)
공용어 롬바르드어
수도 라벤나
체제 젠제군주제
성립 568년
해체 774년
성립
이전
동로마 제국령 이탈리아
해체
이후
프랑크 왕국,로마 교황령

롬바르드 왕국(568년~774년)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한 게르만계 롬바르드족이 도나우강에 정착한 이후 알보인왕의 명령 아래 비잔틴령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북이탈리아를 빼앗고 세운 왕국이다. 774년 프랑크 왕국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존속하였으며, 수도는 라벤나였다.

[편집] 역사

롬바르드족 부족장인 알보인이 알프스를 넘어 비잔틴 제국령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하였다. 당시 비잔틴이 벨리사리우스에 의해 동고트 왕국을 멸하고 이탈리아반도를 접수한 상황이었다. 북이탈리아를 평정했으며 베네치아, 롬바르디아, 사보이 지방을 차지했다. 프랑크 왕국과 국경을 접했으며 남으로는 교황령과 접했다.

데시데리우스왕대에 로마 교황령을 자주침공하여 프랑크 왕국의 경고를 받아왔고, 결국 프랑크 왕국피핀왕 대에 알프스 지방 영토를 빼앗겼다. 카롤루스 대제때 또다시 교황령을 침공하여 프랑크 왕국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아 결국 라벤나가 함락되고 그 왕족들은 비잔틴으로 망명함에 따라 멸망했다.

몬차 대성당안에 보관되어 있는 롬바르드의 철제 왕관

[편집] 국왕

10년간의 공백기


고대 게르만민족의 한 부족인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로 침입하여 세운 왕국. 롬바르디아왕국이라고도 한다. 랑고바르드족의 원주지는 엘베강 하류였는데, 2세기 중엽에는 다뉴브강 방면, 5세기 후반에는 하(下)오스트리아, 6세기 중엽에는 노리쿰·판노니아 지방으로 옮겼고, 568년 이탈리아에 침입하여 파비아를 수도로 포강 유역의 롬바르디아 지방에 부족왕국을 세웠다. 그 뒤 토스카나로부터 남(南)이탈리아의 스폴레토·베네벤토 지방까지 미쳤으나, 각지에 호족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독립성이 강한 여러 공국(公國)이 형성되어, 알보인의 후계자 클레프가 살해된 이후에는 35명의 대공(大公)에 의해 지배되는 여러 공국이 병존하게 되었다. 프랑크왕국의 위협이 커짐에 따라, 584년 아우타리왕 때에 왕제가 부활되어 제후 권력을 억압,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였으나, 대(大)제후의 힘은 여전히 강하여 643년 로타리왕은 랑고바르드법전을 성립시켰다. 8세기 전반, 류트프란드왕이 스폴레토, 베네벤트 두 공국을 격파한 결과 드디어 왕권이 신장되었다.



요약
고대 게르만족의 한 갈래로서 568년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워 774년 프랑크 왕국에 멸망될 때까지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했다.
본문
고대 게르만 족의 한 갈래로 롬바르드(Lombards), 롱고바르드(Longobards)라고도 불린다. 568년 알보인(Alboin)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를 침공하여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으며, 774년 프랑크 왕국샤를마뉴(Charlemagne, 재위 768~814)에게 정복될 때까지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했다. 이탈리아 중남부에도 진출하여 그곳에 스폴레토(Spoleto) 공국()과 베네벤토(Benevento) 공국 등을 세우기도 하였다. 오늘날 밀라노(Milano)를 주도()로 하는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Lombardia) 주의 명칭도 랑고바르드에서 비롯되었다.

8세기에 파울루스(Paulus Diaconus)가 편찬한 <랑고바르드사(Historia Langobardorum)>에는 랑고바르드족의 기원과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전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랑고바르드족의 옛 이름은 윈니리(Winnili)였으며, 북방에서 발트해(Baltic Sea) 연안의 덴마크와 독일 북부 지역으로 남하해 왔다. 그곳에서 토착 세력인 완달족(Wandals)과 대립하다가 목축지를 찾아 다시 남하를 시작하여 5세기에는 도나우강(Donau R.) 유역과 오스트리아 동부 판노니아(Pannonia)까지 진출하였다. 성인 남성이 턱수염을 길게 기르는 풍습을 지니고 있어서 ‘긴 턱수염(long beard)’이라는 뜻의 랑고바르드(Langobard)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로마에서는 엘베강(Elbe R.) 유역에 거주하던 게르만계 수에비족(Suebi)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546년 아우도인(Audoin, 재위 546~565)은 왕이 되어 랑고바르드의 부족 체계를 정비하였다. 그 뒤를 이은 알보인(Alboin, 재위 566~572)은 게피다이족(Gepidae)을 멸망시키고, 568년 줄리안알프스(Julian Alps)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하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553년 동고트 왕국(Ostrogoth)이 동로마제국에 멸망된 뒤 혼란이 거듭되고 있어서 랑고바르드족은 손쉽게 이탈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들을 정복하였다. 파비아(Pavia)를 정복한 알보인은 572년 그곳을 도읍으로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이탈리아 중남부에는 스폴레토(Spoleto) 공국과 베네벤토(Benevento) 공국 등이 건설되었다.

572년 알보인이 살해된 뒤에 클레프(Cleph, 재위 573~574)가 그 뒤를 이었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왕을 뽑지 않고 35명의 공작들이 각자의 공국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584년 프랑크족(Frank)이 침공해오자 공작들은 클레프의 아들인 아우타리(Authari, 재위 584~590)를 왕으로 삼았다.

랑고바르드 왕국은 8세기 후반까지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며 로마 문화와 게르만 문화의 융합에 크게 기여하였다. 712년 혁명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리우트프란트(Liutprand, 재위 712~744)는 스폴레토 공국과 로마를 공격하여 왕권 강화와 영토 확장을 꾀했다. 그 뒤를 이은 아이스툴프(Aistulf, 재위 749~756)와 데시데리우스(Desiderius, 재위 756~774)도 로마의 교황령을 위협하자, 교황 하드리아노 1세(Hadrianus I, 재위 772∼795)는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샤를마뉴는 773년 랑고바르드 왕국을 공격해 파비아를 일 년 동안 포위하여 공격한 끝에 함락시키고 데시데리우스를 사로잡았다. 774년 랑고바르드 왕국은 멸망했지만, 베네벤토 등 랑고바르드족이 세운 일부 공국들은 11세기 무렵까지 존속되었다.

랑고바르드왕국 [Langobard]
요약
게르만민족의 한 부족인 랑고바르드족이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 지방에 세운 왕국(568~774).
본문

롬바르디아왕국이라고도 한다. 랑고바르드족의 원주지는 엘베강() 하류지역이었지만 2세기 중엽에 다뉴브강() 방면으로, 5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 지역으로, 6세기 중엽에는 노리쿰 ·파노니아 지방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568년에 알보인왕 지휘하에 북이탈리아로 침입하여 파비아를 수도로 하고, 포강() 유역의 롬바르디아 지방에 랑고바르드왕국을 세웠다.

그 후 남쪽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토스카나에서 스포레트 ·베네벤트 지방까지 지배하게 되었으나, 각지에 배치된 호족을 중심으로 독립성이 강한 여러 공국()이 형성되어, 유일한 후계자 클레프왕의 사후에는 35명의 대공()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 후 프랑크왕국의 위협이 있게 되자 584년 아우타리는 왕제()를 부활시켜, 제후의 억압과 왕권의 강화를 도모하였으나, 대제후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였다. 8세기 전반에 이르러 리우트프란트왕이 베네벤토 ·스포레트 양 공국()을 격파하여 겨우 왕권이 강화되었다.

다음 왕인 아이스툴프는 더 나아가 비잔틴령()인 라베나를 병합하고, 이어 로마를 위협하였다. 이로 인해 로마 교황이 구원을 청한 프랑크왕 소()피핀의 간섭을 초래하였으며, 그 후 774년 프랑크카를대제에게 패하여 국왕 데시데리우스가 포로가 됨으로써 랑고바르드왕국은 프랑크에 병합되고 말았다. 그 후 9세기에 한때 독립하였으나, 신성로마제국오토 1세에게 정복되었다. 이어 랑고바르드족의 전통을 승계한 남이탈리아의 베네벤토공국도 11세기 말 노르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라)Langobardi.

568~774년에 이탈리아 반도의 한 왕국을 다스렸던 게르만족의 일파.

롬바르드족은 게르만 민족인 수에비족에 속해 있었으며, AD 1세기에는 북서 독일에 주로 살았다. 가끔 로마인이나 다른 이웃 종족과 싸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목축생활을 하면서 정착지를 찾아다녔고, 4세기에는 남쪽으로 대이동을 했으며, 5세기말에는 도나우 강 북쪽인 지금의 오스트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옮겨갔다. 546년에 아우도인이 왕이 되어 새로운 롬바르드 왕조를 열었다. 이때 롬바르드족은 자신들의 부족 조직과 제도를 제국군대체계로 바꿔, 친척과 혈족을 바탕으로 조직한 군대를 공작·백작 등의 귀족계급이 지휘했다. 20년이 넘도록 롬바르드족은 게피다이족과 가끔 전쟁을 벌였으며 결국 아우도인의 후계자 알보인은 게피다이를 멸망시켰다(567경).

이무렵 롬바르드족은 이탈리아로 옮겨가기로 결정했는데, 이탈리아는 비잔틴 군대가 이곳의 동고트 왕국을 무너뜨린 뒤 거의 무방비상태였다. 568년 봄, 줄리안알프스 산을 넘은 롬바르드족은 별 저항을 받지 않고 이탈리아 북부를 손에 넣었다. 569년 말에는 파비아를 제외한 북쪽의 모든 주요도시를 정복했고, 이탈리아 반도 중부와 남부지대를 점령했으며 572년에는 파비아도 함락했다. 그러나 그해에 알보인은 살해당했고, 그뒤를 이은 클레프는 이탈리아인 토지소유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루면서 18개월간 이탈리아를 통치했다.

클레프가 죽은 뒤 롬바르드족은 왕위계승자를 뽑지 않고, 대신 공작들이 그뒤 10년 동안 특정 도시영지에서 권력을 행사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를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통치시대로 보았다. 584년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위협을 느낀 공작들은 클레프의 아들 아우타리를 왕으로 삼았다.

아우타리가 왕이 되었을 때, 공작들은 왕실의 생활 유지를 위해 영지의 반을 바쳤고 왕궁이 있던 파비아는 행정조직의 중심이 되었다. 아리우스파였던 롬바르드족은 7세기 후반에 정통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야만적인 아리페르트 2세(700~712 재위) 이후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으며, 새 왕조의 2번째 왕 리우트프란트(712~744 재위)는 롬바르드 왕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다. 726년까지는 내정에만 관심을 기울인 듯하나, 그뒤로는 이탈리아 반도의 비잔틴 영토를 꾸준히 정복했다. 그의 왕궁에서 쓰인 동전과 서류들을 보면, 그는 강하고 유능한 군주였음을 알 수 있다. 그뒤의 왕들인 아이스툴프(749~756 재위)와 데시데리우스(756~774 재위)가 교황령으로 쳐들어갔을 때 교황 아드리아누스 1세는 프랑크 왕 샤를마뉴에게 도움을 구했다. 프랑크족은 773년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파비아를 1년 동안 포위한 뒤 함락했다. 데시데리우스는 사로잡혔고 샤를마뉴는 프랑크와 롬바르드의 왕을 겸하게 되어, 롬바르드 왕국은 멸망했으나 롬바르드족의 통치는 끝나지 않았다. 남 이탈리아에서 롬바르드 왕국 지배하에 있던 롬바르드족 공작이 다스리는 베네벤토 공국이 독립했으며 독립 롬바르드 왕국은 망했지만, 그들은 예술·언어·법률 분야에서 많은 전통과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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