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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지역)는 카스피해 부근의 땅이며 보통 조선민족이 생각하는 동양과는 먼 지역이다. 거기서 발흥한 훈누족(투르크계의 조상)이 서양으로 이주하여 게르만족과 혼혈하였으니. 그것이 훈족이다.
경주 대릉원 인근 계림로 14호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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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계림로 14호 고분 발굴 -보물 635호 황금보검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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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검 출토 당시 |
1973년, 경주에서는 신라시대 고분 중 가장 큰 무덤인 황남대총의 발굴이 시작됐다. 금관을 비롯하여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당시에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발견된 또 다른 무덤이 있었다. 계림로 14호 고분이 바로 그 것이다. 소형적석목곽분인 이 고분에서는 유례가 없는 유물들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서도 이 무덤 피장자의 허리춤에서 나온 ‘황금보검’은 그 특이함과 화려함으로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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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정취의 황금보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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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석류석 장식이 돋보인다. 이 검에 감입된 보석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한 유례가 없는 석류석으로 그 중에서도 동유럽이 주 생산지인 희귀한 종류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이 검은 동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유라시아 대륙의 최동단에 위치한 신라 계림로 14호분의 피장자가 어떻게 황금보검을 가지고 잠들 수 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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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로 14호 고분과 가까운 미추 왕릉지구에서 발굴된 특이한 유물에는 인면 모자이크 유리구슬 ‘미소 짓는 상감옥’ 목걸이가 있다. 지름 1.8cm, 높이 1.6cm에 불과한 이 구슬 안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형상이 모자이크 기법으로 상감되어 있다. 이 구슬에 묘사된 사람들은 피부가 희고 콧날이 오뚝한 것으로 보아 백인종으로 보인다. 일본학자 요시미츠 츠네오는 이 구슬에 표현된 인물이 황금보검의 제작자인 흑해연안의 켈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 유리구슬의 인물이 황금보검을 제작한 사람들일까? 제작진은 의문을 품고 불가리아로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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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연안에서 황금보검의 기원을 찾다. |
고대 트라키아 문명의 발원지 불가리아. 현지 학자들을 취재한 제작진은 훈족이 촉발한 민족이동시기(3~6세기)의 유물들이 황금보검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서양을 아울러 초원을 중심으로 거대한 민족이동이 이뤄졌던 당시, 동로마의 장인들은 이민족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한다. 석류석이 감입된 동로마 지역의 유물들. 그리고 소용돌이 문양의 전통. 이것은 황금보검의 생산지가 흑해연안 동로마 문화권이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
초기에는 무덤양식조차 주변 중국, 조선국과 달랐으며,

















극동으로 이동한 훈족은 이동을 하였지만 흑해에 남은 아틸라는 대제국을 이루다.
유물은 무역으로 이루어진 것이 절대 아니라, 민족이동의 증거다. 신라 금관은 서양 중세에 쓰이는 금관과 유래가 같으며, 아틸라도 썼고, 조선사가 날조가 되어있는데 가야 수로왕은 절대 금관을 쓰지 않았다. 가야가 금관을 쓴 것은 5세기 이후가 정설이다.
만들어진거면 반드시 무너지고, 만들지 않고도록고 틀에 박히지 않으며 계속받도록
훈족계가 아니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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