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아족(Frisii)        700 ~ 900  2009. 4. 22.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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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네덜란드라는 국가를 형성하는 주민족이다. 게르만족 대이동 시기에 색슨족의 지배하에 있다가 서로마 멸망후 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고 프랑크 왕국 멸망 뒤, 신성로마, 스페인의 지배를 차례로 받다가 독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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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지아인 (-人 Friesian)

요약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북부, 북해 연안의 프리지아 여러 섬에 거주하는 민족.

설명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북부, 북해 연안의 프리지아 여러 섬에 거주하는 민족. 인구 약 30만. 게르만계통 민족으로 프리스인(Frisii)이라고도 한다. 종교는 그리스도교로 7세기 무렵 개종하였고, 언어는 영어와 비슷한 프리지아어를 쓰나 북·동 프리지아섬에서는 독일어를 쓴다. BC 3000년 무렵부터 프리지아지방에 정착하여 아우구스투스황제 시대에 로마의 맹방(盟邦)이 된 뒤, 로마·라인·스칸디나비아·영국을 연결하는 상업교역에 종사하였다. 게르만 민족이동기를 거쳐 프랑크왕국 지배 아래에서도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상업민족으로 활동하였다. 홍수가 잦았으나 제방과 운하건설로 토지유실을 막고, 저지대라는 이점을 살려 낙농을 발달시켰다. 주요 산업으로는 낙농을 비롯하여 밀·감자를 재배하였고, 전통적으로 통상·해운이 발달하여 이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다.
 

프리지아
오늘날 네덜란드·독일에 속해 있는 지역의 옛 이름.
북해에 면해 있으며, 프리지아 제도를 포함한다. 1815년 네덜란드프리슬란트 주와 독일 북서부의 오스트프리슬란트·노르트프리슬란트 주로 분할된 프리지아는 영어와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리지아인이 오래 전부터 살아온 고향이다. 프리지아 부족은 연대가 분명하지 않은 선사시대에 라인 강 어귀(헤이그 북쪽의 캇웨이크)와 엠스 강 어귀 사이의 북해 해안지방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고 있던 켈트족을 몰아냈다. 1~5세기에 그들은 로마에 어느 정도 종속되어 있었다. 그후 앵글족과 색슨족은 잉글랜드로 가는 길에 프리지아에 침투했고, 샤를마뉴 대제가 이끄는 프랑크족은 프리지아를 점령한 뒤 프리지아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그후 수백 년 동안 그들의 영토는 분할되었다가 16세기에 서프리지아인들은 동맹을 결성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네덜란드가 되었다. 종교개혁 때 프리지아인들은 개신교도가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프리지아는 프리지아산(産) 소로 가장 유명해졌다. 프리지아인들은 오래전부터 소를 길러왔는데, 이런 사실은 BC 1세기의 기록에도 나와 있다. 그들은 목축만이 아니라 다른 농업에도 종사했다. 옛날부터 바다를 항해하면서 장사를 했고, 중세에는 북서 유럽에서 가장 큰 직물 공장들을 운영했다. 한때 프리지아어는 사라지는 듯했으나 최근에 다시 되살아났다. 프리지아어는 네덜란드의 공용어로 인정받고 프리슬란트 주 전역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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