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색슨족(Anglo-Saxons) 500 ~ 600 2009. 4. 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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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400년대부터 대륙의 색슨족이 서쪽의 브리튼 섬으로 이주하였다. 그리하여 원주민인 브리튼족(켈트족의 한민족)은 스코틀랜드, 웨일즈가 되고 앵글로색슨족은 잉글랜드가 되었다. 대륙에서 들어온 앵글로색슨족이 원주민인 켈트족(브리튼족)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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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잉글랜드의 색슨인을 대륙의 색슨인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기 전의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현재의 영국 국민의 중심을 이루는 민족이며, 앵글인 ·색슨인 ·유트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종적으로는 북방계(北方系)에 속하여 장신(長身) ·백색 ·금발 ·벽안(碧眼)에다 좁고 높은 코 등의 육체적 특징이 있으나 민족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語族)에 속하는 게르만족의 한 파이다. 이 민족의 이주기(移住期)인 5∼6세기에 관해서는 아직도 불분명한 점이 많다. 그 이유는 그들이 문자를 갖지 못하였고 또 신뢰할 만한 문헌적 자료가 없기 때문이며 겨우 약간의 고고학적 자료가 있는 데 불과하다. 베다(674?∼735)의 《영국 교회사》(8세기)에 의하면 스코트인 ·픽트인 등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는 영국 남동부 켄트 지방의 브리튼인의 수장(首長)은 앵글인(유트人)의 도움으로 그 침입에 대응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1세기 반 동안이나 이주가 행해졌는데, 그것은 인구증가로 인하여 비옥한 브리튼의 저지(低地) 지역에 이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이주는 민족 전체의 이주로서 종래와 같은 해적적(海賊的) 침략이 아니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아마 군사적 지도하에 민족적 집단이 침입하여 성공하면 고향에서 처자를 불러들였던 것 같다. 앵글로색슨의 제족(諸族)은 섬의 동부 저지지역에 들어가자 잇달아 작은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들 소국(小國)은 종족국가(種族國家)로서 이주 ·정복을 통하여 그 전력이 증대한 종족의 군사지도자가 왕으로 된 국가이다. 소국들은 상호간에, 또 서부로 몰아낸 켈트인(웨일스人:외국인의 뜻)과 항쟁을 계속하여 7왕국시대를 전개하였다. 6세기 말에는 원주민인 브리튼족(스코틀랜드,웨일즈등)으로부터 가톨릭교회가 전래하여 성장중에 있던 왕권과 손을 잡았다. 이윽고 웨식스 왕국이 강력해지면서 9세기 전반에 액버트에 의한 전(全)잉글랜드의 정복, 후반에는 앨프레드 대왕이 잉글랜드 통일에 거의 성공하였다. 그러나 9세기부터 시작된 노르만인(데인人)의 침략 결과로 1016∼42년 데인인의 왕 카누트(크누트)와 그 후계자에 의한 지배로 말미암아 앵글로색슨왕조는 무너졌다.앵글로색슨이라는 용어는 8세기말 유럽 대륙의 저술가들이 브리튼 색슨족과 유럽 대륙에 살던 색슨족을 구분하기 위해서 처음 사용했으며, 가경자(可敬者) 비드는 유럽의 색슨족을 특히 고대 색슨족이라 불렀다. 노르만 정복 후, 영국 연대기 편자들은 앵글로색슨을 '잉글랜드인'을 뜻하는 말로 썼다. 앨프레드 대왕(899 죽음)과 그 후계자들은 물론 11세기의 왕들도 사용했던 '렉스 앙굴 삭소눔'(rex Angul-Saxonum : '앵글로색슨의 왕'이라는 뜻)이라는 칭호에도 이 말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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