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운동가 출신 조병옥 장로(당시 민주당대표)의 만행
입산자 아내에 대한 성폭력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어떤 여성의 남편은 경찰이었는데 남편이 입산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친구와 친척이 빨갱이로 지목되면 그 사람 또한 살아남을 길이 없게 되어 입산한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집을 감시하던 남편 친구(경찰)와 정을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성관계를 맺으려던 순간 서청이 집으로 들이 닥쳤고, 아내와 남편 친구를 벌거벗긴 채 끌어내어 수용소에 가둬 두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 성교를 시킵니다. 그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심한 채찍질을 당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성관계를 하게 됩니다. 그후 서청은 그 여성의 질에다 수류탄을 집어넣고 안전핀 고리에 실을 묶어두고 '뛰어가도 좋다' 말합니다. 그후 그녀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죠.
- 한림화, '4.3 당시 서북청년단에 의해 행해진 제주여성에 대한 테러'(1998.5), 여성인권과 평화
세미나 발제문
하루는 내가 제주경찰서에서 숙직을 하는데 여자의 비명소리가 나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취조실로 가보니 여자를 나체로 만들어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문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 김호겸 증언, 서울시 은평구 역촌1동, 당시 서귀포경찰서장 역임
창고 안에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갇혔는데 무자비한 구타와 함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벌어졌습니다. 남녀를 불러내 구타하면서 성교를 강요했고 여자의 국부를 불로 지지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그 썩는 냄새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습니다. 난 그들이 제정신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홍경토 증언,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1999), 제주4.3연구소
성산포 주정공장 창고 부근에는 부녀자와 처녀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청은 여자들을 겁탈한 후 고구마를 쑤셔대며 히히덕거리기도 했습니다.
- 고성중 증언, 제민일보 4.3취재반(1998)
여자들인 경우 아무 근거도 없이 (달을 쳐다보라고 한 후) 달빛에 얼굴을 비춰 골라 냈는데 (20세 미만의) 유독 젊고 예쁜 여자만 사상에 연루됐다는 말이냐. 성적(性的)인 문제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우리 형님과 사혼(死婚)하여 형수가 된 분은 당시 1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그 형수의 여동생은 당시 15세인데 유일하게 살아서 돌아왔다. 난 그분을 찾아가 여러차례 당시 상황을 물었지만 수치심 때문에 일체 말이 없었다.
- 김양학 증언, 62세, 표선면 토산리, 2002. 5. 22 채록
이번엔 어떤 여자를 지목해 끌어냈습니다. 25세쯤 되는 임산부였습니다. 경찰은 그 여인의 겨드랑이에 밧줄을 묶어 큰 팽나무에 매달아 놓은 후 경찰 3명이 총에 대검을 꽂아 찔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쏠 것이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모두들 고개를 돌리자 경찰은 “잘 구경하라”며 소리쳤습니다. 이어 경찰은 주민들을 선별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도가족을 가려내기 위해서였습니다.
- 안인행 증언, 67세, 애월읍 장전리, 2001. 8. 21 채록
삼양지서가 습격을 받자 며칠간 그곳에서 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정용철)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했습니다.
- 김제진 증언, 78세, 한림읍 귀덕1리, 제주경찰학교 10기생, 2001. 11. 19 채록
나는 대한청년단 분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정 주임 그놈은 오래 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 고봉수 증언, 79세, 제주시 삼양2동 1999. 8. 28 (제민일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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