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玄奘 602∼664)        500 ~ 600  2009. 5. 3.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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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기의 원주인공

현장 (玄奘 602∼664)

 
설명
당제국 승려. 속성은 진(陳), 이름은 위. 허난성[河南省(하남성)] 옌스현 출생. 중국 법상종(法相宗)·구사종(俱舍宗)의 개조(開祖)이며, 보통 삼장법사(三藏法師)로 알려져 있다.

13세에 출가하여 뤄양[洛陽(낙양)] 정토사(淨土寺)에서 경론(經論)을 공부하였다. 622년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각지를 다니면서 스승을 구하여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소승(小乘)의 여러 이론에 통달하였으나 의심나는 부분이 많아 원전(原典)을 접하고자 629년 불교의 근원지 인도로 떠났다. 인도의 여러 성지를 참배하고 대덕(大德)들을 찾아 불교 및 학문·예술을 익혔으며, 특히 중인도 마가다국 나란다사[那爛陀寺(나란타사)]에 5년간 머무르며 계현론사(戒賢論師) 아래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중심의 교학을 연구하였다. 다시 인도 각지로 구법과 불적(佛蹟) 순례여행을 계속하였고, 불사리 150알, 불상 8구, 경전 520질 657부 등을 얻어 645년 장안(長安)에 돌아왔다.

그 뒤 태종의 후원으로 홍복사(弘福寺)·자은사(慈恩寺) 등에서 불전 번역에 종사하였는데, 그가 20년간에 걸쳐 번역한 경론은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600권)》을 비롯 《유가사지론》 《구사론(俱舍論)》 등 75부 1335권에 이르렀다. 또한 여행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12권)》는 그의 전기인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 10권)》과 함께 7세기의 서역과 인도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현장 [奘, 602?~664]
요약
중국 당나라의 고승()으로 인도로 떠나 나란다 사원에 들어가 계현(:시라바드라) 밑에서 불교 연구에 힘썼다. 이후 중국으로 돌아와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西)》를 저술하였다.
본명 위()
국적 당()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중국 허난성[] 뤄양[] 거우스현
주요저서 《대당서역기(西)》
대자은사 현장법사 동상 / 중국 산시성 시안(西安). 대자은사는 당 고종의 어머니인 문덕황후의 극락왕생을 건립한 당나라 황실사찰이다.
본문

이름 위(). 진혜()의 아들. 허난성[] 뤄양[] 동쪽에 있는 거우스현[緱] 출생. 10세에 뤄양 정토사()에 들어갔으며, 13세에 승적에 올랐다. 장안() ·청두[]와 그 밖의 중국 중북부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불교 연구에 진력한 뒤, 많은 의문을 풀기 위하여, 또한 불교 경전을 가져오기 위해 627년(일설에는 629년) 인도로 떠났다. 도중 고창국() 왕 국문태()의 대접을 받았으며, 인도에 도착한 후 나란다 사원에 들어가 계현(:시라바드라) 밑에서 불교 연구에 힘썼다. 당시 카나우지에 도읍하고 있던 하르샤 대왕 등의 우대를 받았는데, 641년 많은 경전과 불상을 가지고 귀국길에 올라, 힌두쿠시와 파미르의 두 험로를 넘어 호탄을 거쳐서 645년 정월에 조야의 대환영을 받으며 장안으로 돌아왔다. 태종()의 후원을 받아 74부 1,335권의 경전을 한역한 이외에도, 인도 여행기인 《대당서역기(西)》 (12권)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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