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조 신라의 문화        500 ~ 600  2009. 5. 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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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세기부터가 김왕조의 시작입니다.(강조했습니다. 영토가 협소할 시기의 신라는 순수 한반도 토착민족 신라입니다.) 금으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삼국 중에서 김왕조 신라(후기 신라) 뿐입니다. 박씨 신라, 백제, 고구려는 금을 쓸 줄 몰랐습니다. 다만 백제가 말기에 나제 동맹때 김왕조 신라한테서 금기술을 배워가서 그때부터 금을 쓸 수 있게는 됩니다만 한국 사극에서 고구려왕이 금관 쓰는 것은 100% 날조입니다.

터키 국정 교과서에서는 터키의 시조를 hun족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라 김씨 황족도 huns인데

자료의 근원은 1998년에 kbs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신라 김씨는 유럽에서 왔다. 신라 황남대총의 비밀"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유럽에서온 게르만화 된 훈족이 한반도 토착민(박씨, 석씨 등 이전 왕족 포함)를 지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 왕조가 박 -> 석 -> 김으로 넘어가죠. 여기서 김은 이민족 정복왕조가 되는겁니다. 또한 소수의 이민족이 다수의 한반도 원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골품제가 생깁니다. 훈족이 신라를 지배하면서 부터 신라는 급속도로 발전합니다.(역사도 모르는 동양사에 처박힌 조선 환빠들이 허약하고 미개한 박씨 신라를 후기 신라와 혼동하여 신라를 계속 비하하죠.)

▲ 신라 유물에서 나온 로마 유리들
▲ 로마양식의 반지
▲ 로마양식의 황금팔찌
▲ 켈트양식의 황금보검


 


 

 
 
▲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입니다.
▲ 이것은 금제 잔입니다.
▲ 아마 설명이 필요 없는 물건일 것입니다. 신라의 금관입니다. (사르마트 금관과의 유사성)
 
▲ 유리 그릇입니다. (유리는 동양에 제조술이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훈족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말에 싣고 운반하기 위해 사용)
 
 
신라 고분에서 출토
 
 
신라 갑옷과 훈족의 갑옷의 유사성
 


 
훈족 유적에게서 출토된 투구
 
▲ 많이 보신 투구들입니다.
▲ 그리스식 소용돌이 무늬 단 갑입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
 
 

프랑크족과 전투 중인 훈족 병사들 (출처 : Larousse의 데이타베이스안에 프랑스 역사)
 

판노니아에 있던 아틸라 황제의 성을 재현한 모식도
 
1층 한옥밖에 지을 수 없었던 비참한 고구려인의 벽화
 
 
 
그 밖에
 
신라 박씨 왕조의 무덤은 옆의 백제나 고구려와 양식이 동일하지만,
 
신라 김왕조 때의 초기 무덤양식은 동북아시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고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는데
 
바로 흑해에서 발견됩니다.
 
동유럽의 도나우 강이 흘러들어가는 흑해말입니다.
 
그리고 김왕조 신라 초기에 쓰던 도기들이나 그릇 양식도 훈족과 동일합니다.
 
 
결정적으로 김왕조 신라가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을 비롯한 극동아시아 어디에서도 금을 제조할 줄 몰랐습니다.
 
 
 
동로마 제국에게 조공을 받았던 위대한 훈 제국





김왕조 시대에 100만 인구를 자랑한 경주



김왕조 신라 건축술의 절정인 황룡사 9층탑


김왕조 시대 신라 수학, 석조 건축의 절정 석굴암 

중국문화만 받았던 극동의 미개한 백제, 고구려는

1층 한옥밖에 지을 수 없었던

 <- 비참한 고구려인들의 벽화


이밖에 미개한 조선따위에서는 만들지 못 한 에밀레종, 첨성대, 불국사 등 놀라운 건축물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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