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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 말기와 제정 초기에 활동한 역사가이자 문인, 정치가. 제정은 민주주의의 큰 적이라 여겨 반대하였으며 로마제국에 퍼지기 시작한 그리스도교를 맹렬히 비판하였다. 필자도 로마가 제정으로 변한 것은 큰 비극이라 생각한다. 로마가 제정이 되지 않고 공화정이 이어졌다면 분명 군인황제시대라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고, 그리스도교가 제국(여기서 제국이라 함은 제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 공화국이 매우 광할한 영토를 자랑한 나라였기 때문에 사용.) 내에 퍼지는 것도 분명 막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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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투스 [Publius Cornelius Tacitus, 55 ?~117 ?]
요약
로마 제정시대의 역사가. 호민관·재무관·법무관을 거쳐 콘술을 지냈고 아시아주의 총독을 맡았다. 제정()을 비판한 사서()를 저술하였고 주요저서에 《역사》, 《게르마니아》 등이 있다.
국적 로마제국
활동분야 정치, 역사저술
주요저서 《역사》,《게르마니아》, 《연대기》
본문

호민관·재무관·법무관을 거쳐, 97년에 콘술[]이 되었다. 112∼113년 속주()인 아시아주의 총독이 되었으며, 그 밖의 일생에 관한 일은 거의 밝혀진 것이 없다. 이미 젊은 시절에 로마 제정의 암흑상을 체험했던 그는 제정()을 비판한 사서()를 저술하였다.

그의 저술에는 시세()에 맞지 않아 불우한 일생을 보낸 위인() G.J.아그리콜라(그의 장인)의 생애를 서술한 《아그리콜라전()》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공화제 시대와 비교하여 제정시대에는 웅변술이 쇠퇴하였음을 비판한 《웅변론에 대한 대화()》 등 소품 3편을 남겼다.

그 밖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등극에서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연대기식으로 서술한 《연대기》와 《역사》가 있다. 모두가 불완전한 형태로서 현존하고 있다.



Tacitus

Born ca. 56 CE
Died ca. 117
Occupation Senator, consul, governor, historian
Genres History
Subjects History, biography, oratory
Literary movement Silver Age of Latin

타키투스
(P. Cornelius Tacitus) : 서기 55/56-120년경. 로마 원로원 귀족, 평범한 관직생활을 했으나 로마 황제권에 대해 비판적인 ‘역사’와 ‘연대기’를 써서 유명해졌다.

그는 연대기 13-16장에서 네로의 전기를 기술하면서 64년 일어난 로마의 대화재와 함께 예수를 언급하고 있다. 연대기는 서기 115-117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On July, 19th, 64 CE, a fire started in Rome and burned for nine days, finally destroying or damaging almost three-quarters of the city, including numerous public buildings. Rumors spread that the fire had been planned by Nero. And according to Tacitus, to put an end to such rumors, Nero blaimed the disastor on the Christians.


ergo abolendo rumori Nero subdidit reos. et quaesitissimis poenis adfecit quos per flagitia invisos vulgus christianos appellabat. Auctor nominis eius christus. Tyberio imperitante per procuratorem pontium pilatum supplicio adfectus erat. repressaque in praesens exitiabilis superstitio rursum erumpebat. non modo per iudaeam originem eius mali. sed per urbem etiam quo cuncta undique atrocia aut pudenda confluunt celebranturque .,. Igitur primum correpti qui fatebantur. deinde indicio eorum multitudo ingens. haud proinde in crimine incendii. quam odio humani generis coniuncti sunt .,.

"Therefore, to put an end to the rumor Nero created a diversion and subjected to the most extra-ordinary tortures those hated for their abominations by the common people called Christians. The originator of this name (was) Christ, who, during the reign of Tiberius had been executed by sentence of the procurator Pontinus Pilate. Repressed for the time being, the deadly superstition broke out again not only in Judea, the original source of the evil, but also in the city (Rome), where all things horrible or shameful in the world collect and become popular. So an arrest was made of all who confessed; then on the basis of their information, an immense multitude was convicted, not so much of the crime of arson as for hatred of the human race." (Tacitus, Annales, 15, 44)

Tacitus continues:

"Mockery of every sort was added to their deaths. Covered with the skins of beasts, they were torn by dogs and perished, or were nailed to crosses, or were doomed to the flames. These served to illuminate the night when daylight failed. Nero had thrown open the gardens for the spectacle, and was exhibiting a show in the circus, while he mingled with the people in the dress of a charioteer or drove about in a chariot. Hence, even for crimnals who deserved extreme and examplary punishment there arose a feeling of compassion; for it was not, as it seemed, for the public good, but glut one man's cruelty, that they were being punished."

번역 
그리스도교라는 명칭은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유대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의해 처형당한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다.  가장 유해한 미신은 그렇게 하여 잠시 제지되었으나 다시 악의 제일차 근원지인 유대(Judaea)에서는 물론 심지어 로마에서도, 두렵고 수치스러운 모든 것이 있는 그들의 근거지가 세상 도처에서 발견되고 대중적이 되었다. 이에 고발된 자들이 제일 먼저 체포되고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 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중동에서 들어온 새로운 미신인 그리스도교를 비판한 대문호 타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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