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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2세: 동로마 제 2대 왕. 테오도시우스 1세의 손자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을 때 제국을 두 아들에게 절단내어 상속했으므로 이때부터 서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이 생긴 것이다. 서로마, 동로마는 기독교 아래 전제왕정을 행했으므로 이것이 중세 왕권신수설의 기초가 되었다. 기독교의 아래, 이제 고대의 공화정은 절멸한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신실하고 광신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 따라서 그는 동로마의 영토에 속해 있던 그리스에서 고대 그리스 신앙을 몰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에 따른 수순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는 고대 그리스 신앙의 가장 신성한 성지인 올림피아를 더럽혔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올림피아의 제우스 대신전(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적 중심)을 파괴하라고 명령 내렸다. 대도시 올림피아는 쑥대밭이 되었고 지금도 한적한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물론 지금의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와 관계 없는 비잔틴(동로마)의 후손이긴 하지만 말이다.

훈족의 아틸라 황제는 '마르스(정통 로마제국의 군신)의 검'을 움켜쥐고 스스로를 신(마르스)의 징벌이라 선언했다. 마르스는 로마인들의 선조이기도 하다. 즉 조상이자 신인 그를 버린 로마인들을 벌할 기회를 아틸라에게 주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훈족의 군대가 그리스반도를 비롯한 동로마 영토를 휩쓸자(테르모필레, 소피아, 마르키아노플 함락, 콘스탄티누스의 고향 나이서스 지도상에서 사라짐.) 테오도시우스 2세는 보호세라는 명목으로 훈족에게 막대한 공물을 매년 바쳐야만 했다.

딸인 에우도키아를 황후로 들였으며(자신이 낳은 딸과 결혼하였다는 뜻임.) 에우도키아의 편을 들기 위해 에우도키아와 반목관계였던 누이 풀케리아를 내쫓았다. 풀케리아 또한 에우도키아를 끌어내리기 위한 음모를 꾸몄으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에우도키아가 그와 내통하였다며 테오도시우스에게 내치게 하였다.

동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는 해마다 훈 제국에 보호금 명목으로 막대한 금을 바쳤고 아틸라 암살 음모를 꾸몄으나 들통나 아틸라 살해음모를 꾸민 환관 크리사피우스를 원치 않지만 죽여야 했다.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사망한 뒤 그 누이 풀케리아가 돌아와 전권을 휘둘렀으며, 테오도시안 왕조는 끊어져 동로마는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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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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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 2세
Flavius Theodosius
동로마황제
재위 408년 - 450년
황후 아일리아 에우도키아
이전 황제 아르카디우스
다음 황제 마르키아누스(비잔틴 왕조 시작)

테오도시우스 2세(Flavius Theodosius, 401년 ~ 450년 7월 28일)는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408년부터 450년 죽을 때까지 동로마제국의 황제였다.

 생애

전임황제 아르카디우스와 그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408년 아버지가 죽자 불과 7살의 나이로 로마 제국 동부의 황제가 되었다. 어린 황제인 그를 보필하기 위해 당시 민정 총독인 안테미우스가 초기에 섭정을 맡았다. 안테미우스는 탁월한 행정가이자 외교가로 황제를 대신했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난공불락의 육지성벽인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건설한 것도 바로 안테미우스이다. 414년 안테미우스가 죽자 섭정의 자리는 테오도시우스의 2살 차이 나는 누나인 풀케리아에게 돌아갔다. 단호하고 강인한 성격의 풀케리아는 '황후'(Augusta)가 되어 권력을 독점했다.

450년 테오도시우스는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사고로 죽었다.

 네스토리우스파와의 관계

42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대주교로 임명된 네스토리우스는 열성적으로 아리우스파을 배척했고 그리스도 예수가 니케아 신경에서처럼 단일한 위격(位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격과 신의 위격, 서로 다른 두개의 위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교했다. 그의 설교는 급격히 대중의 호응을 얻어 세력을 확대해 갔는데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주교인 성 키릴루스의 반대를 받았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에 찬동했으나 키릴루스는 풀케리아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는 파문 당했다. 테오도시우스는 435년 네스토리우스를 아라비아의 페트라로 유배보냈다.


전 임
아르카디우스
(재위 395 - 408)
동로마제국 황제
408년 - 450년
후 임
 
마르키아누스(비잔틴 황제
재위 450 - 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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