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민족 (Canaanite)        기원전1500~기원전1300  2009. 4. 21. 22:13

반응형
가나안 민족은 메소포타미아계 민족으로, 아랍계 민족인 유태인이 이동을 하여 정착하기 위하여 야훼의 명령으로 아무 죄없는 선주민인 가나안 민족을 무차별적으로 대학살을 일으킨 만행의 피해를 당한 민족이다. 유대경(기독교 구약)에서는 이것을 유태인의 영광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치가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대교의 후예인 이슬람이 행하는 걸 보면 이상할 것이 없다.

가나안 민족은 지금의 시리아, 팔레스티나에 정주하던 민족으로 농경을 행하고 성품이 선하고 농경신 바알을 숭배했다. 사악한 유목신 야훼를 섬기는 유태인 무리가 멋대로 야훼의 계시를 받은 정신병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야훼가 이곳을 유태인땅으로 계시했다고 하며 원래 땅의 주인인 가나안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침략, 약탈, 살육을 행하였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신인 야훼가 세상의 창조주가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방신 중에 하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원전 15세기에 세워진 도시 우가리트의 잔해

가나안족
요약
유태인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할 무렵, 이미 거주하고 있던 민족들
본문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일컫는다. 헷족속, 기르가스족속, 아모리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여부스족속 등이다. 가나안의 일곱 족속 외에도 알가족속, 신족속, 아르왓족속, 스말족속, 하맛족속, 겐족속, 그니스족속, 갓몬 족속, 르바족속, 아말렉족속 등이 있었다. 가나안이라는 말은 평지 또는 자색염료의 산지였기 때문에 ‘자주의 땅’이라는 뜻으로 불리다가 팔레스타인 전역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들의 선조는 BC 25세기경 정착한 농경 민족인데,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에 이주할 때 이미 상당히 고도의 문화수준에 달해 있었고 농경생활, 도시생활, 상업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큰 곤란에 직면했는데, 군사적으로는 성공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문화적으로 오히려 가나안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종교적으로도 바알 예배의 영향을 받았다.

가나안 [Canaan]
요약

기원전 18세기 설형문자로 기록된 마리문서에 처음 등장하며 팔레스타인 서쪽 해안지역을 가리킨다.

본문

구약에서는 요르단 서쪽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언어는 셈어족의 북서쪽 방언에 속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수메르어아카드어에 속한다는 견해도 있다. 가나안의 그리스 명칭은 페니키아이며 자주빛의 색을 의미한다. 그리스 사람들이 페니키아로 부른 것은 가나안지역에서 자주빛 염료의 생산지로 인식되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한 가나안은 상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아마르나 문서(이집트고문서)에 따르면, BC 3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인이 가나안에 거주했고, BC 2200∼BC 2000년 이집트인이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였으며, BC 15세기에는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어 그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가 혼란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BC 11세기에는 이집트 세력이 가나안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곧 이스라엘 민족이 들어와 지배하였다. 이 지역은 문명의 교차로로 자리잡고 있어 이집트 ·미케네 ·크레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주신 옐을 비롯하여 비와 풍요의 신 바알, 옐의 아내 아세라, 풍요를 주관하는 아스타르테 등이 있다.

창세기에 언급된 가나안은 노아의 네번째 아들인 함의 아들로 등장하는데 포도주에 취한 노아를 함이 조롱하자 노아는 함에게 저주를 내려 함의 아들이 종이되리라고 하였다. (신화이긴하지만 술에 취한거 조롱했다고 저주를 퍼붓다니 과연)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