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로마사 연대표 세계사 개관 2009. 4. 2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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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753년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
제2대 왕 누마(715∼673).
제3대 왕 툴루스(673∼641).
제4대 왕 마르티우스(641∼616).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615∼579). 에트루리아, 전성기.
제6대 왕 세르비우스(579∼534).
제7대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534∼509). 에트루리아, 쇠퇴기.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도시들 번영.
509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
500년
귀족과 평민의 투쟁 시작, 호민관 설치(494).
로마, 그리스에 시찰단 파견(453년 전후).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 채택(449).
400년
독재관 카밀루스, 에트루리아의 도시 베이 공략(396).
켈트족 침입, 로마 점령(390).
리키니우스 법 성립(367)-로마의 과두정치를 결정,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에게 개방
라틴 동맹 경신(358).
이탈리아 중남부로 진출 개시. 라틴 동맹 해체. 로마 연합 성립(338).
아피아 가도 건설(312).
300년
호르텐시우스 법 성립(287). 타렌툼 전쟁.
250년
제1차 포에니 전쟁(264∼242).
제2차 포에니 전쟁(218∼202).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침공(218).
한니발,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 공략(213).
하스드루발(한니발의 동생) 에스파냐를 출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208).
스키피오, 집정관으로 선출됨(205).
자마 회전. 스키피오, 한니발 격파(202).
200년
한니발 자살(183).
마케도니아 전쟁(171∼168).
마케도니아 왕조 멸망(168).
150년
제3차 포에니 전쟁 발발(149).
카르타고 멸망(146), 로마의 속주가 되어 속주 아프리카로 불림.
140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 농지개혁에 착수, 반대파에게 암살당함(133).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에스파냐 원주민의 반란 거점인 누만티아 제압(133).
130년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하여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에 착수(123)
반대파에 몰려 자살(121).
120년
마리우스, 호민관에 취임(119).
110년
마리우스, 집정관이 되어 군제개혁에 착수(107).
10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수부라 지구에서 태어남.
91년
호민관 드루수스,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 제출, 반대파에 암살당함. 동맹시 전쟁 발발.
89년
동맹시 전쟁 종결.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88년
술라, 집정관에 취임.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으로 로마는 내란에 빠짐.
87년
킨나와 마리우스, 로마 장악.
술라와의 투쟁 격화.
86년
마리우스 사망. 킨나 독재 시작.
81년
술라,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하여 국정개혁 착수.
78년
술라가 죽고 폼페이우스 대두.
73년
스파르타쿠스 반란.
71년
크라수스, 스파르타쿠스 반란군 진압.
70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집정관에 취임.
카이사르, 회계감사관에 취임.먼 에스파냐에 부임.
69년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딸로 태어남.
67년
폼페이우스, 지중해 해적을 소탕하여 지중해 전역에 팍스 로마나 확립.
63년
폼페이우스, 오리엔트 평정.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패권하에 들어옴.
카이사르, 호민관 라비에누스의 협력으로 최고제사장에 취임.
키케로, 집정관에 취임.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남.
61년
카이사르, 먼 에스파냐 총독으로 부임.
60년
카이사르, 귀국하여 이듬해 집정관에 출마.
폼페이우스·크라수스와 손잡고 삼두정치 결성.
국가 개조의 첫걸음을 내딛다.
59년
카이사르, 집정관에 취임.
율리우스 농지법을 민회에서 가결하여 원로원파에 타격을 가함.
북이탈리아·일리리아·남프랑스 속주 총독이 됨.
총독으로 나가 있는 동안 로마에서 수족처럼 움직여줄 사람으로, 장인인 피소와 폼페이우스의 오른팔인 가비니우스를 이듬해 집정관에, 클로디우스를 호민관에 포진시킴.
카이사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복위시킴.
58년
카이사르, 갈리아 총독에 부임.
부사령관은 라비에누스.
갈리아 전쟁 1년째. 브장송에 월동 숙영지 설치.
키케로, 그리스로 망명.
57년
갈리아 전쟁 2년째. 오를레앙에 월동 숙영지 설치.
삼두정치에 대한 원로원파의 반격.
56년
갈리아 전쟁 3년째.
카이사르·크라수스·폼페이우스의 루카 회담.
노르망디 지방에 월동 숙영지 설치.
55년
갈리아 전쟁 4년째. 아미앵에 월동 숙영지 설치.
카이사르, 제1차 브리타니아 원정 감행.
루카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집정관에 취임.
마르스 광장에 폼페이우스 극장 완성.
크라수스, 임지인 시리아로 떠남.
54년
갈리아 전쟁 5년째.
아미앵에서 월동.
카이사르,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측근인 발부스와 오피우스를 통해 포로 로마노 확장사업에 착수.
원로원파와 삼두정치파의 대치로 정국이 혼란에 빠짐.
53년
갈리아 전쟁 6년째.
독일 서부와 디종 부근 및 상스에 월동 숙영지 설치.
크라수스, 파르티아 원정 개시.
52년
갈리아 전쟁 7년째. 아르베르니 족장인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 맞서 궐기. 알레시아 공방전.
베르킨게토릭스, 항복하고 포로가 되다.
51년
갈리아 전쟁 8년째. '갈리아의 로마화'에 착수.
클레오파트라,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됨.
50년
카이사르, 북이탈리아 속주로 돌아오다.
원로원파, 카이사르의 오른팔 라비에누스에게 접근.
카이사르는 호민관 쿠리오를 앞세워 원로원파에 대항.
카이사르 군단에 대한 해산 명령을 둘러싼
카이사르파의 신임 호민관 안토니우스와 원로원파의 정치투쟁이 계속.
49년
1월 7일 원로원,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 권고' 결의.
1월 12일 카이사르, 1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주사위는 던져졌다!") 리미니에 입성.
호민관 안토니우스 및 카시우스가 합류.
1월 17일 폼페이우스, 로마를 탈출.
키케로에 이어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렌툴루스도 탈출.
로마는 대혼란에 빠짐.
카이사르와 결별한 라비에누스, 카푸아에서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
2월 25일 폼페이우스, 브린디시까지 후퇴한 후, 3월 17일에는 그리스로 탈출.
카이사르, 이탈리아 반도를 사실상 제패하고 19일 로마로 떠남.
3월 30일 로마로 강행군하던 카이사르, 포르미아의 별장으로 키케로를 찾아가 회담을 함.
12월 2일 카이사르, 로마에 들어가다. 독재관에 지명됨.
반술라파의 자손에 대한 공직추방령을 해제, 각 속주 총독에 카이사르파를 임명.
새 화폐 발행을 비롯한 경제정책을 실시.
이듬해인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선출됨.
12월 13일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기 위해 로마를 떠남.
48년
8월 9일 파르살로스 회전. 폼페이우스군 완패, 이집트로 건너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추격,
안토니우스를 부독재관인 기사단장에 임명하여 로마 본국의 통치를 맡김.
10월 4일 카이사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
47년
카이사르, 『내전기』 전3권 완성.
6월 카이사르, 소아시아에 상륙, 카파도키아 지방의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9월 카이사르, 로마에 개선하여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됨.
46년
카이사르, 탑수스 회전에서 스키피오군을 대파.
스키피오와 아프라니우스는 살해됨.
카토도 자살하다.
7월에 로마에 귀환하다.
8월 5일부터 네 차례의 개선식 거행.
율리우스력(태양력) 채택.
국립 조폐소를 창설하다.
45년
카이사르, 에스파냐 속주에서 반카이사르파가 봉기하자 에스파냐로 떠나 3월 17일 문다 회전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
팍스 로마나를 확립하고 민생을 풍족하게 하고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기 위한 전면 개혁에 착수.
44년
1월 카이사르의 동료 집정관에 안토니우스 취임.
2월 원로원과 민회, 카이사르를 종신 독재관에 임명.
3월 15일 카이사르, 원로원 회의장인 폼페이우스 회랑에서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
3월 16일 옥타비아누스(당시 18세)를 제1상속인·양자·성명 계승자로 지명한 카이사르 유언장이 개봉되다.
로마에 체류중이던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카이사리온과 함께 이집트로 떠나다.
3월 17일 안토니우스가 소집한 원로원 회의에서 암살자들의 형사 책임은 추궁하지 않고, 요직 인사를 비롯한 카이사르의 정책을 계승하기로 결정.
3월 18일 카이사르의 유해가 화장되다.
암살자들을 규탄하는 민중의 분노가 고조되다.
43년
8월 옥타비아누스, 집정관에 선출되다.
또한 카이사르의 양자 입적을 공인받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다.
페디우스 법이 성립되다.
11월 볼로냐에서 안토니우스·레피두스·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다.
27일에 열린 민회가 5년 기한으로 이를 승인하여, 원로원 주도의 과두정 체제는 완전히 소멸하다.
11월 28일 제1차 '살생부'가 발표되고 숙청의 태풍이 몰아치다.
12월 7일 키케로가 살해되다.
42년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결의하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그리스로 출동하여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격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둘 다 자결하다.
필리피 회전 후, 옥타비아누스는 서부,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분담하기로 합의하고,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지다.
41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초대를 받고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클레오파트라와 애인관계가 되다.
40년
옥타비아누스, 외교담당으로 마이케나스를 기용하다.
36년
옥타비아누스, 아그리파와 함께 일리리아 제압에 전념하다.
34년
제2차 삼두정치의 종결.
안토니우스,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 거행.
33년
옥타비아누스, 일리리아 전쟁 개선 기념으로 율리아 수도와 옥타비아 회랑을 건설하고, 공공 건축물을 보수하다.
31년
3월 옥타비아누스, 모든 전력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가다.
9월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다.
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치다.
30년
7월 31일 안토니우스, 자살을 기도. 이튿날 사망하다.
8월 1일 옥타비아누스,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다.
카이사리온은 살해되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다.
29년
8월 옥타비아누스의 웅장하고 화려한 개선식에 로마 시민 열광하다.
9월 옥타비아누스, 신격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신전을 포로 로마노에 짓겠다고 공표하다.
28년
옥타비아누스, '황제묘' 건설에 착수.
원로원을 재편성하여 1천 명이 넘었던 의원수를 다시 600명으로 줄이다.
27년
1월 13일 옥타비아누스, 공화정 체제 복귀를 선언.
1월 16일 원로원,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부여하기로 결의.
26년
아우구스투스,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 제패에 착수.
24년
아우구스투스, 로마 세계의 서부 재편성을 끝내고 3년 반 만에 로마로 귀환.
23년
아우구스투스, '호민관 특권'을 요구하여 원로원의 승인을 받다. 화폐제도 개혁에 착수.
22년
아우구스투스, 밀 확보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빠진 수도 로마에 사재를 털어 밀을 공급하다.
19년
로마의 국민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사망하다.
18년
아우구스투스, '간통 및 혼외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 및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을 제정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레피두스의 후임으로 최고제사장에 선출되다.
12년
아그리파, 사망하다.
9년
'평화의 제단' 완공되다.
엘베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방어선이 성립되다.
8년
마이케나스, 사망하다.
4년
로마속국인 유대왕 헤롯이 사망하다.
2년
아우구스투스, 딸 율리아를 '간통죄'로 종신 유배형에 처하다.
1년
원로원, 아우구스투스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수여하다.
서기4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결정하다.
또한 티베리우스의 후계자로 게르마니쿠스를 지명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에게 '최고사령권'을 수여하다.
그후 게르마니아 전선은 게르마니쿠스가 담당하다.
14년
아우구스투스와 공동 통치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으로 국세조사를 실시하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을 마무리하다.
나폴리에 머물고 있던 8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다.
9월 17일 티베리우스, '제일인자'가 되어 제2대 황제에 즉위하다.
17년
5월 26일 게르마니쿠스, 개선식을 거행하다. 다음 임지가 오리엔트로 결정되어 떠나다.
티베리우스, 통틀어 28년에 걸친 게르마니아 전쟁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고 라인 강 방위체제를 정비하다.
19년
10월 10일 게르마니쿠스, 사망하다.
20년
시리아 속주 총독 피소가 게르마니쿠스에게 불복종한 죄로 재판을 받고 자살하다.
21년
타쿠팔리나스가 이끄는 북아프리카의 반란이 기세를 더하다.
갈리아 동부에서 고금리에 반발한 반란이 일어나다.
로마의 라인 강 방위 군단이 즉시 진압에 나서다.
시리아 속주 총독 퀴리누스가 사망하다.
29년
게르마니쿠스의 미망인인 아그리피나와 맏아들 네로 카이사르의 유죄가 확정되어 각각 벤토테네 섬과 폰차 섬에 유배하기로 결정하다.
30년
중동에서 유태인 예수가 그리스도교를 만들고 전파하다가 혹세무민죄로 잡혀 처형되다. 집행은 유대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31년
1월 1일, 아그리피나파 소탕작전의 핵심인물인 근위대장 세야누스가 티베리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취임하다.
10월 18일 티베리우스, 원로원에 보낸 서한에서 세야누스를 국가반역죄로 고발하다. 원로원은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날로 집행하다.
33년
속주에서 고리대금을 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이 고발당한 것을 발단으로 한 금융 불안과 땅값 하락으로 로마에 일대 금융위기가 발생하다.
티베리우스, '공공자금 투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아 위기를 진정시키다.
37년
3월 16일 티베리우스, 나폴리 만 서쪽 끝의 미세노 곶에 있는 별장에서 사망하다. 향년 77세.
3월 18일, 게르마니쿠스의 셋째아들 칼리굴라, 제3대 황제에 즉위하다.
9월 27일, 칼리굴라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존칭이 주어지다.
40년
칼리굴라,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민 혐의로 누이동생 아그리피나와 율리아 리비아를 유배하다.
이 무렵부터 원로원 계급과도 대결 상태에 들어가다.
41년
1월 24일 칼리굴라,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살해되다. 향년 28세.
아내 카이소니아와 딸도 동시에 살해되다.
같은 날,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에게 칼리굴라가 갖고 있던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클라우디우스, 제4대 황제에 즉위하다.
클라우디우스, 알렉산드리아를 정상화하다.
43년
클라우디우스,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로마군과 합류하여 콜체스터에 입성하다.
브리타니아 속주화에 대한 기본정책을 결정하다.
48년
클라우디우스의 처 메살리나, 중혼죄를 짓고 클라우디우스의 비서관 나르키소스의 명령으로 살해되다.
49년
클라우디우스, 질녀인 아그리피나(칼리굴라의 누이동생)와 네번째로 결혼하다.
아그리피나, 간통죄로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어 있던 철학자 세네카를 아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나중에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로 삼기 위해 로마로 부르다.
또한 아들의 무술교사로는 나중에 근위대장이 되는 부루스를 임명하다.
50년
아그리피나, 아들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삼다.
그후 도미티우스의 이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되다.
54년
10월 13일,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하다. 향년 63세.
같은 날, 네로가 근위병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받다.
원로원, 네로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네로, 16세의 나이로 제5대 황제에 즉위하다.
파르티아,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점령하고 볼로가세스의 동생 티리다테스를 왕위에 앉히다.
로마,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를 총사령관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다.
60년
5년마다 열리는 '네로 제전'이 처음으로 거행되어 성황리에 끝나다.
62년
근위대장 부루스가 사망하다.
세네카가 은퇴하다.
63년
코르불로와 파르티아 왕제인 티리다테스가 직접 만나 회담하다.
티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을 승낙, 파르티아·아르메니아 문제 사실상 종결.
64년
네로, 나폴리의 야외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하다.
7월 18일 밤, 대경기장 관람석 밑에 있는 가게에서 난 불이 번져, 아흐레 동안 로마의 대부분을 태우는 대화재가 되다.
네로는 화재 진압, 이재민 구제, 화재 후의 재건대책을 진두지휘하다.
네로, 화재 후의 재건과 도심 개조를 위한 재원 확보를 겸하여 87년 만에 화폐개혁을 실시하다.
네로, '도무스 아우레아' 건설로 시민들의 반감을 사다.
네로, 방화죄 및 '인류 전체를 증오한 죄' 등으로 기독교도를 체포하여 처형하다.
65년
연말에 20∼30명이 가담하여 네로 암살을 획책한 '피소 음모'가 발각되다. 가담자로 의심받은 세네카도 자살하다.
티리다테스,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포로 로마노에서 네로에게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다. 그후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는 반세기 동안 평화가 계속되다.
66년
청년 장교들이 네로를 죽이고 코르불로를 제위에 앉히려 한 '베네벤토의 음모'가 발각되다.
네로, 가수로서의 기량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리스 여행을 떠나다.
68년
원로원, 에스파냐에서 궐기한 갈바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
로마 시민들이 '식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을 계기로 네로에 반대하여 궐기하다.
원로원,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다.
6월 9일, 네로 로마 교외의 은신처에서 자살하다.
내란 발발, 베스파시아누스가 평정하고, 제9대 황제 즉위하다.
98년
트라야누스, 제13대 황제에 즉위하다.
101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1차 다키아(오늘날 루마니아) 원정 개시(∼102).
105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2차 다키아 원정 개시(∼106).
117년
하드리아누스, 제14대 황제에 즉위하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쌓아 국경 방위에 힘쓰다.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공동 통치 시작.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즉위하다.
194년
세베루스 황제, 제1차 페르시아 원정.
197년
세베루스 황제, 제2차 페르시아 원정.
211년
카라칼라, 황제에 즉위하다.
212년
카라칼라 황제, 로마 제국 영토 안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칙령을 내리다.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 중 하나)
216년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욕장 건설.
28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즉위하다.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제국을 넷으로 분할하여 두 정제(正帝)와 두 부제(副帝)가 각각 분할 통치하게 함.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그리스도교 박멸(∼304).
312년
콘스탄티누스, 서방 황제에 즉위하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밀라노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 사상 최초로 허용하다. (정통 로마시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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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753년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
제2대 왕 누마(715∼673).
제3대 왕 툴루스(673∼641).
제4대 왕 마르티우스(641∼616).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615∼579). 에트루리아, 전성기.
제6대 왕 세르비우스(579∼534).
제7대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534∼509). 에트루리아, 쇠퇴기.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도시들 번영.
509년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전환.
500년
귀족과 평민의 투쟁 시작, 호민관 설치(494).
로마, 그리스에 시찰단 파견(453년 전후).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 채택(449).
400년
독재관 카밀루스, 에트루리아의 도시 베이 공략(396).
켈트족 침입, 로마 점령(390).
리키니우스 법 성립(367)-로마의 과두정치를 결정,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에게 개방
라틴 동맹 경신(358).
이탈리아 중남부로 진출 개시. 라틴 동맹 해체. 로마 연합 성립(338).
아피아 가도 건설(312).
300년
호르텐시우스 법 성립(287). 타렌툼 전쟁.
250년
제1차 포에니 전쟁(264∼242).
제2차 포에니 전쟁(218∼202).
한니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침공(218).
한니발, 이탈리아 남부 도시들 공략(213).
하스드루발(한니발의 동생) 에스파냐를 출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208).
스키피오, 집정관으로 선출됨(205).
자마 회전. 스키피오, 한니발 격파(202).
200년
한니발 자살(183).
마케도니아 전쟁(171∼168).
마케도니아 왕조 멸망(168).
150년
제3차 포에니 전쟁 발발(149).
카르타고 멸망(146), 로마의 속주가 되어 속주 아프리카로 불림.
140년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 농지개혁에 착수, 반대파에게 암살당함(133).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 에스파냐 원주민의 반란 거점인 누만티아 제압(133).
130년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하여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개혁에 착수(123)
반대파에 몰려 자살(121).
120년
마리우스, 호민관에 취임(119).
110년
마리우스, 집정관이 되어 군제개혁에 착수(107).
10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수부라 지구에서 태어남.
91년
호민관 드루수스,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 제출, 반대파에 암살당함. 동맹시 전쟁 발발.
89년
동맹시 전쟁 종결.
모든 이탈리아인에게 로마 시민권 부여.
88년
술라, 집정관에 취임. 술라와 마리우스의 대립으로 로마는 내란에 빠짐.
87년
킨나와 마리우스, 로마 장악.
술라와의 투쟁 격화.
86년
마리우스 사망. 킨나 독재 시작.
81년
술라, 무기한 독재관에 취임하여 국정개혁 착수.
78년
술라가 죽고 폼페이우스 대두.
73년
스파르타쿠스 반란.
71년
크라수스, 스파르타쿠스 반란군 진압.
70년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집정관에 취임.
카이사르, 회계감사관에 취임.먼 에스파냐에 부임.
69년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둘째딸로 태어남.
67년
폼페이우스, 지중해 해적을 소탕하여 지중해 전역에 팍스 로마나 확립.
63년
폼페이우스, 오리엔트 평정.
지중해 전역이 로마의 패권하에 들어옴.
카이사르, 호민관 라비에누스의 협력으로 최고제사장에 취임.
키케로, 집정관에 취임.
옥타비아누스가 태어남.
61년
카이사르, 먼 에스파냐 총독으로 부임.
60년
카이사르, 귀국하여 이듬해 집정관에 출마.
폼페이우스·크라수스와 손잡고 삼두정치 결성.
국가 개조의 첫걸음을 내딛다.
59년
카이사르, 집정관에 취임.
율리우스 농지법을 민회에서 가결하여 원로원파에 타격을 가함.
북이탈리아·일리리아·남프랑스 속주 총독이 됨.
총독으로 나가 있는 동안 로마에서 수족처럼 움직여줄 사람으로, 장인인 피소와 폼페이우스의 오른팔인 가비니우스를 이듬해 집정관에, 클로디우스를 호민관에 포진시킴.
카이사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를 복위시킴.
58년
카이사르, 갈리아 총독에 부임.
부사령관은 라비에누스.
갈리아 전쟁 1년째. 브장송에 월동 숙영지 설치.
키케로, 그리스로 망명.
57년
갈리아 전쟁 2년째. 오를레앙에 월동 숙영지 설치.
삼두정치에 대한 원로원파의 반격.
56년
갈리아 전쟁 3년째.
카이사르·크라수스·폼페이우스의 루카 회담.
노르망디 지방에 월동 숙영지 설치.
55년
갈리아 전쟁 4년째. 아미앵에 월동 숙영지 설치.
카이사르, 제1차 브리타니아 원정 감행.
루카 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집정관에 취임.
마르스 광장에 폼페이우스 극장 완성.
크라수스, 임지인 시리아로 떠남.
54년
갈리아 전쟁 5년째.
아미앵에서 월동.
카이사르, 제2차 브리타니아 원정.
측근인 발부스와 오피우스를 통해 포로 로마노 확장사업에 착수.
원로원파와 삼두정치파의 대치로 정국이 혼란에 빠짐.
53년
갈리아 전쟁 6년째.
독일 서부와 디종 부근 및 상스에 월동 숙영지 설치.
크라수스, 파르티아 원정 개시.
52년
갈리아 전쟁 7년째. 아르베르니 족장인 베르킨게토릭스가 로마에 맞서 궐기. 알레시아 공방전.
베르킨게토릭스, 항복하고 포로가 되다.
51년
갈리아 전쟁 8년째. '갈리아의 로마화'에 착수.
클레오파트라,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함께 이집트의 공동 통치자가 됨.
50년
카이사르, 북이탈리아 속주로 돌아오다.
원로원파, 카이사르의 오른팔 라비에누스에게 접근.
카이사르는 호민관 쿠리오를 앞세워 원로원파에 대항.
카이사르 군단에 대한 해산 명령을 둘러싼
카이사르파의 신임 호민관 안토니우스와 원로원파의 정치투쟁이 계속.
49년
1월 7일 원로원, 카이사르에게 '원로원 최종 권고' 결의.
1월 12일 카이사르, 1개 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주사위는 던져졌다!") 리미니에 입성.
호민관 안토니우스 및 카시우스가 합류.
1월 17일 폼페이우스, 로마를 탈출.
키케로에 이어 집정관 마르켈루스와 렌툴루스도 탈출.
로마는 대혼란에 빠짐.
카이사르와 결별한 라비에누스, 카푸아에서 폼페이우스 진영에 가담.
2월 25일 폼페이우스, 브린디시까지 후퇴한 후, 3월 17일에는 그리스로 탈출.
카이사르, 이탈리아 반도를 사실상 제패하고 19일 로마로 떠남.
3월 30일 로마로 강행군하던 카이사르, 포르미아의 별장으로 키케로를 찾아가 회담을 함.
12월 2일 카이사르, 로마에 들어가다. 독재관에 지명됨.
반술라파의 자손에 대한 공직추방령을 해제, 각 속주 총독에 카이사르파를 임명.
새 화폐 발행을 비롯한 경제정책을 실시.
이듬해인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선출됨.
12월 13일 폼페이우스를 추격하기 위해 로마를 떠남.
48년
8월 9일 파르살로스 회전. 폼페이우스군 완패, 이집트로 건너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를 추격,
안토니우스를 부독재관인 기사단장에 임명하여 로마 본국의 통치를 맡김.
10월 4일 카이사르, 알렉산드리아에 상륙.
47년
카이사르, 『내전기』 전3권 완성.
6월 카이사르, 소아시아에 상륙, 카파도키아 지방의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9월 카이사르, 로마에 개선하여 5년 임기의 독재관에 임명됨.
46년
카이사르, 탑수스 회전에서 스키피오군을 대파.
스키피오와 아프라니우스는 살해됨.
카토도 자살하다.
7월에 로마에 귀환하다.
8월 5일부터 네 차례의 개선식 거행.
율리우스력(태양력) 채택.
국립 조폐소를 창설하다.
45년
카이사르, 에스파냐 속주에서 반카이사르파가 봉기하자 에스파냐로 떠나 3월 17일 문다 회전에서 폼페이우스를 격파.
팍스 로마나를 확립하고 민생을 풍족하게 하고 공화정을 제정으로 바꾸기 위한 전면 개혁에 착수.
44년
1월 카이사르의 동료 집정관에 안토니우스 취임.
2월 원로원과 민회, 카이사르를 종신 독재관에 임명.
3월 15일 카이사르, 원로원 회의장인 폼페이우스 회랑에서 브루투스 일당에게 암살.
3월 16일 옥타비아누스(당시 18세)를 제1상속인·양자·성명 계승자로 지명한 카이사르 유언장이 개봉되다.
로마에 체류중이던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의 아들이라는 카이사리온과 함께 이집트로 떠나다.
3월 17일 안토니우스가 소집한 원로원 회의에서 암살자들의 형사 책임은 추궁하지 않고, 요직 인사를 비롯한 카이사르의 정책을 계승하기로 결정.
3월 18일 카이사르의 유해가 화장되다.
암살자들을 규탄하는 민중의 분노가 고조되다.
43년
8월 옥타비아누스, 집정관에 선출되다.
또한 카이사르의 양자 입적을 공인받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가 되다.
페디우스 법이 성립되다.
11월 볼로냐에서 안토니우스·레피두스·옥타비아누스의 제2차 삼두정치가 성립되다.
27일에 열린 민회가 5년 기한으로 이를 승인하여, 원로원 주도의 과두정 체제는 완전히 소멸하다.
11월 28일 제1차 '살생부'가 발표되고 숙청의 태풍이 몰아치다.
12월 7일 키케로가 살해되다.
42년
원로원에서 카이사르의 신격화를 결의하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은 그리스로 출동하여 필리피에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연합군을 격파,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둘 다 자결하다.
필리피 회전 후, 옥타비아누스는 서부,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분담하기로 합의하고, 서쪽과 동쪽으로 갈라지다.
41년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의 초대를 받고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여 클레오파트라와 애인관계가 되다.
40년
옥타비아누스, 외교담당으로 마이케나스를 기용하다.
36년
옥타비아누스, 아그리파와 함께 일리리아 제압에 전념하다.
34년
제2차 삼두정치의 종결.
안토니우스,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선식 거행.
33년
옥타비아누스, 일리리아 전쟁 개선 기념으로 율리아 수도와 옥타비아 회랑을 건설하고, 공공 건축물을 보수하다.
31년
3월 옥타비아누스, 모든 전력을 이끌고 그리스로 건너가다.
9월 악티움 해전이 벌어지다.
패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알렉산드리아로 도망치다.
30년
7월 31일 안토니우스, 자살을 기도. 이튿날 사망하다.
8월 1일 옥타비아누스, 알렉산드리아에 입성하다.
카이사리온은 살해되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다.
29년
8월 옥타비아누스의 웅장하고 화려한 개선식에 로마 시민 열광하다.
9월 옥타비아누스, 신격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신전을 포로 로마노에 짓겠다고 공표하다.
28년
옥타비아누스, '황제묘' 건설에 착수.
원로원을 재편성하여 1천 명이 넘었던 의원수를 다시 600명으로 줄이다.
27년
1월 13일 옥타비아누스, 공화정 체제 복귀를 선언.
1월 16일 원로원,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존칭을 부여하기로 결의.
26년
아우구스투스,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 제패에 착수.
24년
아우구스투스, 로마 세계의 서부 재편성을 끝내고 3년 반 만에 로마로 귀환.
23년
아우구스투스, '호민관 특권'을 요구하여 원로원의 승인을 받다. 화폐제도 개혁에 착수.
22년
아우구스투스, 밀 확보량이 부족하여 위기에 빠진 수도 로마에 사재를 털어 밀을 공급하다.
19년
로마의 국민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사망하다.
18년
아우구스투스, '간통 및 혼외정사에 관한 율리우스 법' 및 '정식 혼인에 관한 율리우스 법'을 제정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레피두스의 후임으로 최고제사장에 선출되다.
12년
아그리파, 사망하다.
9년
'평화의 제단' 완공되다.
엘베 강과 도나우 강을 잇는 방어선이 성립되다.
8년
마이케나스, 사망하다.
4년
로마속국인 유대왕 헤롯이 사망하다.
2년
아우구스투스, 딸 율리아를 '간통죄'로 종신 유배형에 처하다.
1년
원로원, 아우구스투스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수여하다.
서기4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결정하다.
또한 티베리우스의 후계자로 게르마니쿠스를 지명하다.
13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에게 '최고사령권'을 수여하다.
그후 게르마니아 전선은 게르마니쿠스가 담당하다.
14년
아우구스투스와 공동 통치자 티베리우스의 이름으로 국세조사를 실시하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을 마무리하다.
나폴리에 머물고 있던 8월 19일에 세상을 떠나다.
9월 17일 티베리우스, '제일인자'가 되어 제2대 황제에 즉위하다.
17년
5월 26일 게르마니쿠스, 개선식을 거행하다. 다음 임지가 오리엔트로 결정되어 떠나다.
티베리우스, 통틀어 28년에 걸친 게르마니아 전쟁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고 라인 강 방위체제를 정비하다.
19년
10월 10일 게르마니쿠스, 사망하다.
20년
시리아 속주 총독 피소가 게르마니쿠스에게 불복종한 죄로 재판을 받고 자살하다.
21년
타쿠팔리나스가 이끄는 북아프리카의 반란이 기세를 더하다.
갈리아 동부에서 고금리에 반발한 반란이 일어나다.
로마의 라인 강 방위 군단이 즉시 진압에 나서다.
시리아 속주 총독 퀴리누스가 사망하다.
29년
게르마니쿠스의 미망인인 아그리피나와 맏아들 네로 카이사르의 유죄가 확정되어 각각 벤토테네 섬과 폰차 섬에 유배하기로 결정하다.
30년
중동에서 유태인 예수가 그리스도교를 만들고 전파하다가 혹세무민죄로 잡혀 처형되다. 집행은 유대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31년
1월 1일, 아그리피나파 소탕작전의 핵심인물인 근위대장 세야누스가 티베리우스와 함께 집정관에 취임하다.
10월 18일 티베리우스, 원로원에 보낸 서한에서 세야누스를 국가반역죄로 고발하다. 원로원은 사형판결을 내리고 그날로 집행하다.
33년
속주에서 고리대금을 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이 고발당한 것을 발단으로 한 금융 불안과 땅값 하락으로 로마에 일대 금융위기가 발생하다.
티베리우스, '공공자금 투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아 위기를 진정시키다.
37년
3월 16일 티베리우스, 나폴리 만 서쪽 끝의 미세노 곶에 있는 별장에서 사망하다. 향년 77세.
3월 18일, 게르마니쿠스의 셋째아들 칼리굴라, 제3대 황제에 즉위하다.
9월 27일, 칼리굴라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존칭이 주어지다.
40년
칼리굴라,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민 혐의로 누이동생 아그리피나와 율리아 리비아를 유배하다.
이 무렵부터 원로원 계급과도 대결 상태에 들어가다.
41년
1월 24일 칼리굴라, 근위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와 코르넬리우스 사비누스에게 살해되다. 향년 28세.
아내 카이소니아와 딸도 동시에 살해되다.
같은 날,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에게 칼리굴라가 갖고 있던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클라우디우스, 제4대 황제에 즉위하다.
클라우디우스, 알렉산드리아를 정상화하다.
43년
클라우디우스,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로마군과 합류하여 콜체스터에 입성하다.
브리타니아 속주화에 대한 기본정책을 결정하다.
48년
클라우디우스의 처 메살리나, 중혼죄를 짓고 클라우디우스의 비서관 나르키소스의 명령으로 살해되다.
49년
클라우디우스, 질녀인 아그리피나(칼리굴라의 누이동생)와 네번째로 결혼하다.
아그리피나, 간통죄로 코르시카 섬에 유배되어 있던 철학자 세네카를 아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 (나중에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로 삼기 위해 로마로 부르다.
또한 아들의 무술교사로는 나중에 근위대장이 되는 부루스를 임명하다.
50년
아그리피나, 아들 도미티우스를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삼다.
그후 도미티우스의 이름은 네로 클라우디우스가 되다.
54년
10월 13일,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하다. 향년 63세.
같은 날, 네로가 근위병들에게 '황제'의 칭호를 받다.
원로원, 네로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로 결의하다.
네로, 16세의 나이로 제5대 황제에 즉위하다.
파르티아, 아르메니아로 쳐들어가 점령하고 볼로가세스의 동생 티리다테스를 왕위에 앉히다.
로마,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코르불로를 총사령관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다.
60년
5년마다 열리는 '네로 제전'이 처음으로 거행되어 성황리에 끝나다.
62년
근위대장 부루스가 사망하다.
세네카가 은퇴하다.
63년
코르불로와 파르티아 왕제인 티리다테스가 직접 만나 회담하다.
티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갈 것을 승낙, 파르티아·아르메니아 문제 사실상 종결.
64년
네로, 나폴리의 야외극장에서 가수로 데뷔하다.
7월 18일 밤, 대경기장 관람석 밑에 있는 가게에서 난 불이 번져, 아흐레 동안 로마의 대부분을 태우는 대화재가 되다.
네로는 화재 진압, 이재민 구제, 화재 후의 재건대책을 진두지휘하다.
네로, 화재 후의 재건과 도심 개조를 위한 재원 확보를 겸하여 87년 만에 화폐개혁을 실시하다.
네로, '도무스 아우레아' 건설로 시민들의 반감을 사다.
네로, 방화죄 및 '인류 전체를 증오한 죄' 등으로 기독교도를 체포하여 처형하다.
65년
연말에 20∼30명이 가담하여 네로 암살을 획책한 '피소 음모'가 발각되다. 가담자로 의심받은 세네카도 자살하다.
티리다테스, 이탈리아에 도착하여 포로 로마노에서 네로에게 아르메니아 왕관을 받다. 그후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는 반세기 동안 평화가 계속되다.
66년
청년 장교들이 네로를 죽이고 코르불로를 제위에 앉히려 한 '베네벤토의 음모'가 발각되다.
네로, 가수로서의 기량을 시험해보기 위해 그리스 여행을 떠나다.
68년
원로원, 에스파냐에서 궐기한 갈바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다.
로마 시민들이 '식량'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을 계기로 네로에 반대하여 궐기하다.
원로원,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선언하다.
6월 9일, 네로 로마 교외의 은신처에서 자살하다.
내란 발발, 베스파시아누스가 평정하고, 제9대 황제 즉위하다.
98년
트라야누스, 제13대 황제에 즉위하다.
101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1차 다키아(오늘날 루마니아) 원정 개시(∼102).
105년
트라야누스 황제, 제2차 다키아 원정 개시(∼106).
117년
하드리아누스, 제14대 황제에 즉위하다.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쌓아 국경 방위에 힘쓰다.
161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공동 통치 시작.
193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에 즉위하다.
194년
세베루스 황제, 제1차 페르시아 원정.
197년
세베루스 황제, 제2차 페르시아 원정.
211년
카라칼라, 황제에 즉위하다.
212년
카라칼라 황제, 로마 제국 영토 안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는 칙령을 내리다. (로마제국 멸망의 원인 중 하나)
216년
카라칼라 황제, 카라칼라 욕장 건설.
28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즉위하다.
28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제국을 넷으로 분할하여 두 정제(正帝)와 두 부제(副帝)가 각각 분할 통치하게 함.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그리스도교 박멸(∼304).
312년
콘스탄티누스, 서방 황제에 즉위하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밀라노 칙령을 내려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 사상 최초로 허용하다. (정통 로마시대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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