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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Plutarchos 46?∼120?)

로마시대 문인. 그리스 이오티아 카이로네이아 출생. 젊은 시절 아테네에서 플라톤주의자 암모니우스에게 수학·수사학 등을 배웠다. 이집트·로마 등지를 여행하였고, 로마의 명사·황실과도 친근하게 되었으나 거의 고향에 머무르면서 시정(市政)에 힘썼다. 아테네의 명예시민, 아카이아주(州)의 지사(知事)가 되었으며, 만년에는 델포이의 신관과 가깝게 지내면서 신탁의 부흥에도 힘썼다. 광범위한 저작활동으로 227종의 저서가 있었다고 한다. 《모랄리아》는 약 70편의 수필집이며, 《영웅전》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사한 생애를 보낸 사람들을 대비하여 연구한 23쌍에 다른 4명의 단독전기를 합친 것으로 문학면에서는 물론 고대사의 사료로서도 중요한 전기 저작이다. 인간미가 풍부했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남김없이 작품 속에 담았고, 사소한 부분도 표현하여 인물의 면목을 잘 드러냈다. 이리하여 《모랄리아》는 옛 수필의 원조가 되었고, 유명한 노드의 영역 《플루타르크의 생애(1579)》가 나와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플루타르코스 [Plutarchos, 46?~120?]
요약
고대 로마의 그리스인 철학자·저술가.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작활동은 매우 광범위하여 전기·속윤리()·철학·고대 그리스로마 신학·종교·자연과학·문학·수사학에 걸쳐 그 저술이 무려 250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별칭 플루타크
국적 고대 로마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그리스 카이로네이아
주요저서 《전기》,《영웅전(플루타크 영웅전)》
본문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 출생. 영어식 이름은 플루타크(Plutarch).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의 명문가 출신으로 일찍이 아테네로 가서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고, 다시 자연과학변론술을 배웠다. 그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 로마에서는 황제를 비롯한 많은 명사들과 깊은 친교를 맺어 아카이아주(그리스 본토) 지사에 임명되었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얻었다. 만년에는 델포이의 최고신관()으로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그리스인으로서 대지의 중심인 델포이의 아폴론 신역의 황폐화를 염려하여 그 부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하며, 저작활동은 매우 광범위하여 전기·속윤리()·철학·신학·종교·자연과학·문학·수사학에 걸쳐 그 저술이 무려 250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작품은 《전기》 《영웅전(플루타크영웅전)》 《윤리론집》(모두 그리스어로 씌었다) 등이다.

전기 중에서 현존하는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유사한 영웅 23쌍의 대비열전()과 4편의 단독전기인데, 개인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기술하여 만인의 귀감으로 삼으려 하였다. 그의 역사에 대한 기술은 사료비판이 결여되어 있어 제1급 역사기술로는 평가되지 않으나 근대 서유럽에서 널리 애독되었다. 《윤리론집》은 표제와는 달리 인사일반에 걸친 수필집으로서, 그 가운데는 대화 형식으로 된 것도 있고, 처세훈()을 중심으로 한 중용()을 취하는 인생관이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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