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룰리우마스 1세 (히타이트 왕) [Suppiluliumas I, BC 1380경~46경 재위] 기원전1500~기원전1300 2009. 4. 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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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ppiluliumash, Subbiluliuma라고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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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4세기에 활동한 히타이트의 왕(BC 1380경~46경 재위).
40년 가까이 근동의 역사를 지배하면서 히타이트 왕국을 제국 정도의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투달리야스 3세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왕위에 오른 다음 옛 수도인 하투사스(지금의 터키 보아즈쾨이)를 재건하고 히타이트의 심장지역을 강화시켰다.
그는 동쪽에 있는 미탄니 왕국을 정벌하고 시리아에 히타이트의 굳건한 발판을 다시 세우는 데 군사력을 집중했다. 탐색전을 벌였으나 실패로 끝나자 훨씬 북쪽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뒤편으로 수도 와수카니에 접근하는 방법을 써 북시리아에 있는 미탄니의 방위선을 뚫는 작전을 세웠다. 이 새로운 전술은 성공을 거두어 와수카니를 함락시키고 유프라테스 강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가 시리아의 소제후(小諸侯)들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그후 아들인 텔리피누스에게 시리아 상황을 감시하도록 맡겨두고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하투사스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그 사이 약해진 미탄니 왕국은 오랫동안 미탄니의 속국으로 있으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아시리아 왕국이 부추긴 소요들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일로 아시리아는 독립을 했으며, 미탄니에 침투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수필룰리우마스는 즉각 시리아로 돌아와 카르케미시를 포위 공격했다. 이렇게 해서 히타이트 왕국의 세력을 시리아 북부 전지역에서 튼튼하게 다졌다. 아들인 텔리피누스와 피야실리스를 알레포와 카르케미시의 왕으로 삼고, 살해당한 미탄니 왕 투슈라타의 아들인 마티와자와 상호원조 협정을 맺었다. 점점 커가는 아시리아의 위협에서 히타이트의 시리아 통치영역을 지키기 위해 미탄니를 완충국으로 만든 것이다. 카르케미시를 포위했던 동안에 있었던 한 사건은 그가 국제적으로 명망이 높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집트 왕 아크나톤의 딸이자 그의 후계자 투탕카멘의 부인으로 자식이 없던 과부 앙케세나멘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의 아들 중 한 사람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집트에서는 모계상속을 하고 있었으므로 새 남편은 파라오가 되는 셈이었다. 수필룰리우마스는 이에 동의하고 아들 1명을 보냈지만 이집트로 가는 도중 여왕의 계획에 반대하는 무리들에게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 무도한 행위에 대해 제대로 보복하지 못한 채 수필룰리우마스는 이집트인 포로들이 중부 아나톨리아에 옮겨온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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