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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최고신들께 바친 신전인 판테온(Pantheon)을 건립한 황제이며 로마제국 최전성기를 발현한 5현제 중 한 황제이다. 팽창 일로에 있던 로마제국을 더 이상 팽창하지 않도록 하는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정책을 펼쳤다. 그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로마제국은 끝없이 팽창하였을 것이다. 영토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제국 변방에 장성(wall)을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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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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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로마 제국 14대 황제
재위 기간 117년 8월 7일 - 138년 7월 10일
타고난 이름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이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전임 황제 트라야누스
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로마 황제 연대표

하드리아누스(라틴어: Hadrianus)는 로마 제국의 제14대 황제(76년 1월 24일~138년 7월 10일)이다.

생애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와 도미티아 파울리나 사이에서 76년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히스파니아(현재의 에스파냐)의 이탈리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85년 먼 친척인 트라야누스 황제가 후견인이 됨으로써 로마로 거주지를 옮긴다. 이미 18살에 로마 제국 제2군단의 부관에 임명되면서 지휘관의 발판을 놓게 되었다. 96년에 제5마케도니아 군단의 지휘관, 97년 제12프리미게니아 군단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공적을 세운다. 101년에 트라야누스 황제의 측근으로 발탁되어 개인 재무관을 역임한 후, 105년 법무관으로 선출됨과 동시에 제1미네르바 군단의 사절로 활약하였다. 108년 명목상 황제 다음 가는 로마 제국의 관직인 제 2 집정관(Sufflectus)에 선출되었다.

그가 황제로 취임할 때, 선제 트라야누스의 적극적인 정책에 의해 제국의 판도는 최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하드리아누스는 20년간 3차례에 걸친 제국 전역을 시찰하여 제국 영토의 방위나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란에 대한 대처, 통치 기구 정비 등 제국 내부를 튼실하게 만드는 데 충실하게 노력하여 제국을 재구축한 황제로 불린다. 특히 통치 기구 정비가 매우 철저하여 그가 구축한 관료 기구는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이로 인해 트리아이누스로 인해 사상 최대 크기로 넓어진 제국의 영토는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단단히 굳히게 된다. 구체적 업적으로는 하드리아누스 방벽게르마니아 방벽 등의 구축이 있다.

하드리아누스는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이룩했지만, 군사면에서도 우수하였다. 군대의 규율 개정에 의한 군 내부를 개혁시켰으며, 용병술에 뛰어난 하드리아누스 덕분에 로마군은 연전 연승이었다. 또 전투 상황일 때는 앞장서서 지휘를 하였기 때문에, 군대의 사기를 크게 높였다.

135년 바르 코크바의 반란을 진압하여,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때에 파괴되어 방치되어 있던 예루살렘을 자신의 씨족명 아일리우스와 연관된 식민도시 아일리나 카피트리나로서 재건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곳에서의 야훼 숭배가 금지되었다.

말년에 그는 병상에 누워서 안토니누스를 양아들로 삼아 자신의 후계자로 결정했다.



로마제국의 10대 기독교 박해사건                                

연도

황제

박해의 유형 및 범위

대표적인 순교자

64

네로
로마와 근교 부근에서 박해를 가했다.  
바울
베드로

90년경
-96년

도미티아누스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시적이고도 산발적인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황제숭배 거부로 비롯되었다.
로마의 클레멘트
사도요한(밧모섬에 유배)

98-117

트라야누스
점차 박해가 강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비애국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발견 즉시 처형되었다.
이그나티우스
시므온
조시므스
루프스

117-138

하드리아누스
황제 숭배는 계속되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하는 자는 처벌되었다.
텔레스포루스

16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배격한 스토아주의자인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연재해의 장본인으로 규정하였다.
순교자 저스틴
포티누스
블란디나

202-211

셉티무스
세베루스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시켰다.
레오니다스
이레니우스
페르페투아

235-236

트라키아의
막시미누스
기독교 성직자를 처단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황제가 암살한 전임황제를지지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우르술라
히폴리투스

249-251

데키우스
최초로 제국전체에 박해의 손길을 펼친 그는 황제숭배의 향기로운 제물을 요구하였고 기독교의 완전한 파멸과 더불어 이교신앙으로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파비아누스
예루살렘의 알렉산더

257-260

발레리아누스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며 그들의 공민권(公民權)을 박탈하였다.
오리겐
씨프리아
식스투스 2세

303-311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가장 혹독한 박해로서 교회는 파괴되었고 성서는 불태워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박탈위기에 처했으며 로마신들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었다.
마우리티우스
알바누스


로마신들에 대한 신앙심이 높았던 것으로 유명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세운 만신전(萬神殿) 판테온
File:PantheonRomeModel.jpg
판테온(그리스어: Πάνθειον)은 그리스어의 "모든 신들"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로, 한국어로는 범신전(汎神殿), 만신전(萬神殿)으로도 번역되며, 모든 신들들을 모시는 신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판테온은 주로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가 등장하면서  판테온은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려 중시시대부터 기독교 교회로 쓰이고 있다.

원형 본당()의 안지름과 천장의 높이 43.2m, 벽의 두께 6.2m. 북측 입구에 코린트식 8주 전주식()의 돌출랑()이 있으며, 기둥 높이는 12.5m이다. 당 내부에는 7개의 벽감(:을 안치한 작은 방)이 설치되어, 제우스·아폴론·아르테미스·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 등 다신교였던 로마에서 중요 신들이 모셔졌다. 돔의 내측은 원개 천창() 부분을 제외하고는 28열의 방사상 격간()으로 덮여 있고, 각각의 격간은 5단으로 되어 있다. 채광은 돔 정상에 설치된 지름 9m의 천창뿐이며, 벽면에는 창문이 없고, 거대한 본당의 외형에는 전혀 장식이 없다. 그 수적 비례의 미와 강대한 내부 공감의 창조라는 당시의 경이적인 토목기술로서 서양건축사상 불후의 명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로마의 공학이 합쳐진 최고의 건축물.
15층 높이에 벽의 두께만 해도 6.2m나 됩니다.
건물 내부에는 기둥은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가벼워지는 부재가 건물을 지탱할 수 있게 했답니다.
천장에 뚫린 구멍을 로마인들은 ' 눈 '이라고 불렀답니다.
또한 한쪽 끝 벽면에서 속삭이면 반대편 끝에서 그 말이 크게 들린다는 로마의 놀라운 건축술을 보여주는 건축물
 
구조
콘크리트에 쓰인 소란 반자는 거푸집에 부어졌으며, 이는 굳기 전까지 아래에 가구 구조를 만들어 지탱했다. 그리고 원형 구멍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판테온은 원형 건물로, 그 현관인 주랑 현관 세 열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된 코린트식 기둥들(첫 번째 열에는 여덟 개가 있고, 각각 네 기둥이 있는 두 열은 뒤쪽에 있음)이 있으며, 그 위에는 박공벽이 있다. 주랑 현관은 원형 홀을 향해 열려 있는데, 이 원형 홀 위에는 소란 반자들로 장식된 콘크리트 돔이 있다. 이 콘크리트 돔 가운데의 개구부는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판테온은 독립된 건물로 생각되기 쉬우나, 판테온 뒤에는 원래 붙어 있는 건물이 있었다. 이 건물은 현재 고고학 유물이 되어버렸다.

주랑 현관 뒤에 있는 벽 안에는 벽감들이 있는데, 이 안에는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아그리파 혹은 유피테르·유노·미네르바의 세 신 혹은 다른 신들의 조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상 안치소로 통하는 커다란 청동 문은 황금으로 도금되어 있는데, 문은 현존해 있으나 금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라져갔다. 박공벽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조각들을 붙잡아주는 고정기구가 있었던 자리의 구멍들은 지금도 볼 수 있다.

4,535톤 중량의 콘크리트 돔은 9.1m 지름의 홍예돌이 모인 테두리에 집중되어 개구부를 형성한다. 돔 아래를 향한 추력은 6.4m 두께의 원통형 벽 안에 있는 여덟 개의 원통형 둥근 천장들로 분산되어 기둥들까지 전해진다. 돔 두께는 기초 부분에서 6.4m이고 개구부 주변에서는 1.2m이다. 개구부까지의 높이와 실내 원의 지름은 43.3m로 일치하며, 따라서 이 건물의 실내 전체는 정육면체 안에 정확히 들어갈 수 있다(다시 말하자면 실내는 지름이 43.3m인 구를 감쌀 수도 있음).[4] 판테온은 철근이 들어 있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다. 지붕 내부는 하늘나라의 둥근 궁륭을 상징하도록 의도되었을 것이다.[4] 돔의 거대한 눈(개구부)으로 모든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개구부는 또한 냉각과 통풍의 기능이 있다. 폭풍이 불 때는 바닥 아래의 배수 체계가 개구부를 통해 쏟아지는 빗물을 조절한다.

내부는 쑥 들어간 판들(소란 반자)이 특징인데 옛날에는 청동 별이나 둥근 꽃 모양 장식, 혹은 다른 장식물 등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이 소란 반자들은 장식적 기능을 하면서 이 건물의 개구부와 마찬가지로 천장의 무게를 줄여 주는 기능을 한다. 원형 홀 벽의 꼭대기는 벽돌로 된 경감 아치(건물의 무게 부담을 덜어주는 아치)들이 있는데, 밖에서 볼 수 있으며 벽돌 쌓기로 만들어졌다. 판테온은 이러한 장치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예로 움푹 들어간 안쪽에 있는 경감 아치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아치들은 내부장식에서는 대리석으로 치장된 면 아래에 숨겨져 있으며, 외부에서는 회칠한 외벽이나 석재 벽으로 숨겨져 있다. 건물을 건설한 이후에 내부 장식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판테온의 내부.

소석회 반죽과 포촐라나(pulvis puteolanum)와 인근 화산에서 가져온 가벼운 부석(浮石), 주먹 크기의 돌들로 만들어진 콘크리트가 이 로마 건물의 주 재료로 알려졌다. 이 콘크리트는 현재 쓰이는 콘크리트와 매우 흡사하다.[4] 판테온에 사용된 콘크리트의 인장시험 결과는 없다. 그러나 코완(H. W. Cowan)은 리비아의 로마 유적에서 나온 고대의 콘크리트가 20MPa의 압축력을 견딜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 실험에서 이 표본은 1.5Mpa의 인장력을 견딜 수 있다고 한다.[5] 마크와 허친슨이 행한 이 건물의 제한된 성분 분석[6]에서는 돔과 도드라진 외벽 사이의 연결부에서의 최대 인장 응력이 0.13Mpa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7] 밀도가 낮은 콘크리트를 돔의 높은 층들에 사용함으로써 돔에 가해지는 응력은 충분히 덜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마크와 허친슨은 만약 일반적인 무게의 콘크리트가 전체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아치에 가해지는 응력이 80%는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파일:Pantheon rome 2005ma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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