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디아스포라(대이주,유랑, 서기 136년) 100 ~ 200 2009. 4. 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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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이 아랍인의 일종이지만 그들이 원래 고향인 아랍에서 쫓겨나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2000년간 서양인과 혼혈되고 서양문화화 되는 것에서 그들은 다른 아랍인들과 달라지고 부유하게 되었다. 또한 서구화되고 근대화 되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유태인의 50% 정도가 무신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태인이 야훼의 신실한 종인 이슬람과 싸워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서구화 되지 않은 순수 아랍계 유태인들은 여전히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궁핍한 빈곤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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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136년 로마 제국이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부분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이 쓰이면서, 이 말이 지금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디아스포라(유랑생활)'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민족 집단이 해외로 흩어진 역사적 현성과 그들의 문화적 발전 혹은 그들 집단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 Kantor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예루살렘에 쥬피터 대신전을 건립하려는 웅장한 계획을 세웠고 이것은 131년 유대인 바르 코크바의 반란을 야기시켜 유태인의 반란은 진압되고 예루살렘에 쥬피터 대신전은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건립되었다. 하드리아누스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이후 유대인은 자신의 땅과 국가가 없이 디아스포라를 해야했으며 유대인은 1948년이우에야 자신들의 국가 이스라엘을 세워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도 역시 소탕했다.
로마제국 전성기를 일으킨 황제 중 한 분으로 칭송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지칠줄 모르는 일꾼' 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제국 전역을 순행하여 제위기간 21년 중 근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이탈리아 본국 밖으로 순행을 하며 군단순회, 속주의 공공사업등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브리타니아(영국)에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축조하여 라인강의 게르마니아 방벽 못지 않은 튼튼한 방위체제를 완성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재위기간 있었던 많은 일 중 유대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서기 131년에 발생한 유대교도의 반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4만 병력의 군단병과 보조병을 동원해 융단폭격 방식으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나가며 토벌해 서기 134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136년 9월 26일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세력을 베틸이라는 곳에서 전멸하면서 유대의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이 끝났다. 이렇게 유대전쟁을 끝낸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교도의 예루살렘에서 강제추방하는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명령한다.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공식발효한 '디아스포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1800년이 넘도록 계속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서기 138년부터 161년까지 23년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특기할만한 새로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채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만 하며 내치에 힘을 쓴다. 그 결과 동시대의 로마인들에게 '질서있는 평온'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시기의 황제가 된다.
- 시오노 나나미著 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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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136년 로마 제국이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부분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이 쓰이면서, 이 말이 지금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디아스포라(유랑생활)'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민족 집단이 해외로 흩어진 역사적 현성과 그들의 문화적 발전 혹은 그들 집단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 Kantor
로마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예루살렘에 쥬피터 대신전을 건립하려는 웅장한 계획을 세웠고 이것은 131년 유대인 바르 코크바의 반란을 야기시켜 유태인의 반란은 진압되고 예루살렘에 쥬피터 대신전은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건립되었다. 하드리아누스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이후 유대인은 자신의 땅과 국가가 없이 디아스포라를 해야했으며 유대인은 1948년이우에야 자신들의 국가 이스라엘을 세워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도 역시 소탕했다.
로마제국 전성기를 일으킨 황제 중 한 분으로 칭송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지칠줄 모르는 일꾼' 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제국 전역을 순행하여 제위기간 21년 중 근 10년이라는 기간동안 이탈리아 본국 밖으로 순행을 하며 군단순회, 속주의 공공사업등을 재정비하였다. 특히 브리타니아(영국)에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축조하여 라인강의 게르마니아 방벽 못지 않은 튼튼한 방위체제를 완성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재위기간 있었던 많은 일 중 유대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서기 131년에 발생한 유대교도의 반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4만 병력의 군단병과 보조병을 동원해 융단폭격 방식으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나가며 토벌해 서기 134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136년 9월 26일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세력을 베틸이라는 곳에서 전멸하면서 유대의 반란으로 시작된 유대전쟁이 끝났다. 이렇게 유대전쟁을 끝낸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교도의 예루살렘에서 강제추방하는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명령한다.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공식발효한 '디아스포라'는 2차대전 종전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1800년이 넘도록 계속된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어 서기 138년부터 161년까지 23년동안 재위에 있으면서 특기할만한 새로운 일은 하나도 하지 않은채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만 하며 내치에 힘을 쓴다. 그 결과 동시대의 로마인들에게 '질서있는 평온'이라는 수식어를 듣는 시기의 황제가 된다.
- 시오노 나나미著 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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