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요(Pelayo,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시조, ?~737) 700 ~ 900 2009. 4. 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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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시조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인 카를로스의 경우 서고트 이름인 카를(칼)을 형태만 라틴식으로 바꾼 '오스'를 붙여 카를로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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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경.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인 카를로스의 경우 서고트 이름인 카를(칼)을 형태만 라틴식으로 바꾼 '오스'를 붙여 카를로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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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경.
스페인 북부에 있는 그리스도교 왕국 아스투리아스를 세운 인물.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던 무어인들에 대항해 중세 말엽에 일어난 레콩키스타 운동(국토회복운동)의 씨를 뿌렸다.
실제로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는 윤색된 듯한 전설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서고트 왕 로데리크의 수행원 또는 호위병이었고 서고트 왕가 출신인 듯하다. 메디나 시도니아 근처에서 벌어진 과달레테 전투에서 무어인에게 서고트가 패배했을 때 간신히 살아나 고향 아스투리아스로 가서 서고트 난민들과 아스투리아인들이 무어인 총독 무누사에 대항해 일으킨 반란을 주도했다. 적에게 붙잡혀 코르도바에 인질로 끌려갔으나 도망나와(717)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들은 피코스데에우로파 고원지대까지 몰리기는 했으나 무어군의 거센 공격, 특히 몬테아우세바 전투에도 버티어낼 수 있었다. 마침내 펠라요는 아스투리아스인들의 통치자로 인정되어 캉가스데오니스를 수도로 하는 조그만 왕국을 세웠다. 수도 근처에 있는 코바동가 성당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와 유물들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깝다. 그의 행적이 전설로 꾸며짐으로써 그는 중세 스페인 역사와 문화에 나오는 그리스도교 저항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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