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력이 중앙아시아를 침략하면서 원래 그지역을 지배하던 당제국과 전쟁이 나게 되었다. 당제국은 현종황제에 의해 이미 기울고 있었고 더구나 군대를 이끌던 자가 허접한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여서 패하고 말았다. 이 전쟁으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었으며, 더 나아가 인도, 동남아쪽으로 이슬람이 침략하게 되는 교두보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비극적인 역사의 한 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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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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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스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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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아바스 왕조 | 당제국 | ||
지휘관 | |||
지야드 이븐 사리프 | 고선지 | ||
병력 | |||
정확한 숫자는 알려져 있지않음 중국쪽 기록에는 15만명이라 주장함 |
30,000명(이중 20,000명이 당나라군, 나머지는 주변 동맹군) | ||
피해 상황 | |||
피해상황을 알수 없음 | 일부만 후퇴할수 있었음 |
탈라스 전투 (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8월사이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티베트가 압바스 왕조, 카르룩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영토인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배경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로써 서역(동 투르키스탄)에 주둔한 당나라 장군 고선지가 서쪽의 소그디아나(서 투르키스탄)에 압력을 가하자 샤슈(현재의 타슈켄트)의 왕은 시르강 서쪽을 지배하던 이슬람 세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 요청에 응해 747년 우마이야 왕조 세력을 메르부에서 몰아낸 아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이 된 아브 무슬림은 부하인 지야드 이븐 사리프을 파견시켜 시야드가 이끄는 아바스 왕조군과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텐산산맥 서북쪽 기슭의 탈라스강에서 격돌했다.
전투 중 당나라군에 속해있던 텐산 북쪽에 유목생활을 하는 유목민 카르르크가 아바스 왕조로 돌아섰기 때문에 당나라군은 괴멸하고 전투는 패배했다. 고선지를 비롯한 지휘관 및 소수의 병사만이 탈출했다.
결과
이슬람의 승리로 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쇠퇴하고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당측의 포로중에 종이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자가 포함되어 있기에 제지술이 이슬람세계에 퍼지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나라는 이후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면서 국력이 쇠퇴해 더이상의 서역경영은 어렵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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