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화 사상(작은 중화) 1400 ~ 1500 2009. 5. 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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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잘 난 것도 발달도 된 것도 없는 나라였다.
조선은 동시대 아시아 국가들(미개한 동양유교권을 제외한 비유교권의 동남아, 일본 등과 비교해)과 비교했을 때 문화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나라였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의 성리학을 믿으며 명나라에 빌붙어 자신들이 문화민족인냥 착각하고 중국에 빌붙은 대가로 주변 나라들을 무시하고 명나라에 매년 막대한 공물을 바쳤다. 중국은 조선 조정을 기특하게 여기고 작은 중국이라는 소중화라는 명칭을 주고(사실 당시 명나라에 공물 바친 나라는 조선이 유일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참 빛깔좋은 껍데기 칭호도 붙여주었다.
성리학적 유교사상에 빠져 조선은 중국에 이어 자신들은 제 2의 중국이라 여기며 유교를 믿지 않는 주변 나라들을 무시했다. 주변 나라들의 정세는 알지도 못 한 채.. 비유교권인 일본과 동남아를 무시한 사상이 이때부터 나타났다 할 수 있다.(조선은 심지어 더 나은 문화를 가졌던 고려까지 깔봤으니 말 안 해도..)
우리는 유교를 믿고 중국에 조공하니까 문명국이고 너희들은 유교를 믿지 않고 중국을 섬기지 않으니 오랑캐라는 식이다.
참고로 중화사상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 이외의 변방 국가들은 오랑캐라는 말인데. 이것은 공자가 지껄인 유교적 관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유교를 믿지 않은 일본, 태국 등은 중국과 조선의 미개함을 알고 재빨리 시야를 넓혀 세계와 교류하였으나 명나라와 조선만 그것을 알지 못 했던 것이다.(베트남 또한 동양유교권 국가이니 중국, 조선과 상황이 같았다.)
결국 자신들이 잘난 줄로 착각만 하던 중국과 조선은 20세기 초에 세계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의 장소가 된다.
조선 또한 벨기에, 영국, 미국, 독일 등에게 삼림과 광산을 아무 대가도 받지 못 하고 경영권을 내주었는데 사실상 식민지화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일본에게 지배 받기 전에 이미.
중화민국의 대문호(중화민국의 민주정권은 모택동이 일으킨 공산괴뢰 정부에 쫓겨나 대만으로 이주했다.)
노신(루쉰)은 유교를 비판하면서 중국인의 정신적 승리라며 비하했다. 자신들이 물질적으로 졌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지지 않았다고 오히려 주변 나라들을 깔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이것은 소종국이었던 조선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자신들의 미개함이나 열등함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을 비하하면서 위안을 삼았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유교사상에 물들어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과 태국, 대만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받은 전쟁 배상금을 모두 7,80년대에 산업투자에 모두 썼다. 세계에서 식민지에 배상금을 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과연 한국이 포르투갈 따위에게 가혹한 식민지배를 받고 10원 한푼 배상금을 못 받았다면 이렇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스페인도, 독일도, 포르투갈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식민지에 10원 한푼 배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해서 산업적 피해가 없었고(독일은 더구나 미국의 마셜플랜에 의해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반공위해. 한국도 반공을 위해 미국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배상금도 식민지에게 주지 않아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음에도 별로 못 산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잔인무도한 핵폭탄 공격으로 대도시 2개가 파괴된 상황에서(한국의 경우 부산, 울산이 원자폭탄을 1방씩 맞았다고 생각해보라.) 식민지에게 보상금을 내어주어 재정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한국은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을 산업투자에 사용했는데 과연 스페인 등에게 지배를 받고 십원 한푼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
대만도 산업 투자에 썼지만 대만의 인구는 한국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며 영토의 크기는 한국의 경상남북도 크기 밖에 안 되는 광산자원도 없는 섬나라이다. 한국이 7,80년대에 광산업으로 일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불리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만의 GDP 수준은 이탈리아와 맞먹는다. 산업을 일으킨 후 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을 산정하여 국고에서 나누어 주었다.
태국의 경우를 보자. 태국은 상당히 민주적인 나라이다. 태국은 일본에게 받은 전쟁 배상금을 받자마자 국민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이런 점때문에 태국은 중공업을 발전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태국과 대만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 없고 오히려 친일적이다. 물론 비유교 국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친일이라는게 한국처럼 나쁜의미의 친일이 아니라 친영국, 친캐나다처럼 호의적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매우 대조된다. 받은 배상금을 국민에게 밝히지도 않고 비밀리에 사용했다. 이때문에 한국 국민들은 일본에게 여전히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루투갈, 스페인의 제국주의이든 일본의 제국주의이든 현재의 윤리에서든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일본이 행했다고 욕하는 것은 나는 불합리하다고 본다. 외냐하면 당시 세계의 윤리는 지금과 달라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중국,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반드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주변국들을 침략했을 것이다. 지금의 중공의 제국주의를 봐도 알 수 있다.
조선은 동시대 아시아 국가들(미개한 동양유교권을 제외한 비유교권의 동남아, 일본 등과 비교해)과 비교했을 때 문화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나라였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의 성리학을 믿으며 명나라에 빌붙어 자신들이 문화민족인냥 착각하고 중국에 빌붙은 대가로 주변 나라들을 무시하고 명나라에 매년 막대한 공물을 바쳤다. 중국은 조선 조정을 기특하게 여기고 작은 중국이라는 소중화라는 명칭을 주고(사실 당시 명나라에 공물 바친 나라는 조선이 유일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참 빛깔좋은 껍데기 칭호도 붙여주었다.
성리학적 유교사상에 빠져 조선은 중국에 이어 자신들은 제 2의 중국이라 여기며 유교를 믿지 않는 주변 나라들을 무시했다. 주변 나라들의 정세는 알지도 못 한 채.. 비유교권인 일본과 동남아를 무시한 사상이 이때부터 나타났다 할 수 있다.(조선은 심지어 더 나은 문화를 가졌던 고려까지 깔봤으니 말 안 해도..)
우리는 유교를 믿고 중국에 조공하니까 문명국이고 너희들은 유교를 믿지 않고 중국을 섬기지 않으니 오랑캐라는 식이다.
참고로 중화사상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 이외의 변방 국가들은 오랑캐라는 말인데. 이것은 공자가 지껄인 유교적 관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유교를 믿지 않은 일본, 태국 등은 중국과 조선의 미개함을 알고 재빨리 시야를 넓혀 세계와 교류하였으나 명나라와 조선만 그것을 알지 못 했던 것이다.(베트남 또한 동양유교권 국가이니 중국, 조선과 상황이 같았다.)
결국 자신들이 잘난 줄로 착각만 하던 중국과 조선은 20세기 초에 세계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의 장소가 된다.
조선 또한 벨기에, 영국, 미국, 독일 등에게 삼림과 광산을 아무 대가도 받지 못 하고 경영권을 내주었는데 사실상 식민지화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일본에게 지배 받기 전에 이미.
중화민국의 대문호(중화민국의 민주정권은 모택동이 일으킨 공산괴뢰 정부에 쫓겨나 대만으로 이주했다.)
노신(루쉰)은 유교를 비판하면서 중국인의 정신적 승리라며 비하했다. 자신들이 물질적으로 졌으면서도 정신적으로 지지 않았다고 오히려 주변 나라들을 깔보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이것은 소종국이었던 조선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자신들의 미개함이나 열등함은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을 비하하면서 위안을 삼았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유교사상에 물들어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과 태국, 대만의 차이를 설명한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받은 전쟁 배상금을 모두 7,80년대에 산업투자에 모두 썼다. 세계에서 식민지에 배상금을 준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과연 한국이 포르투갈 따위에게 가혹한 식민지배를 받고 10원 한푼 배상금을 못 받았다면 이렇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스페인도, 독일도, 포르투갈도 아프리카, 아메리카 식민지에 10원 한푼 배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해서 산업적 피해가 없었고(독일은 더구나 미국의 마셜플랜에 의해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반공위해. 한국도 반공을 위해 미국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 배상금도 식민지에게 주지 않아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음에도 별로 못 산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의 잔인무도한 핵폭탄 공격으로 대도시 2개가 파괴된 상황에서(한국의 경우 부산, 울산이 원자폭탄을 1방씩 맞았다고 생각해보라.) 식민지에게 보상금을 내어주어 재정적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한국은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을 산업투자에 사용했는데 과연 스페인 등에게 지배를 받고 십원 한푼 없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을까?
대만도 산업 투자에 썼지만 대만의 인구는 한국인구의 3분의 1 수준이며 영토의 크기는 한국의 경상남북도 크기 밖에 안 되는 광산자원도 없는 섬나라이다. 한국이 7,80년대에 광산업으로 일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불리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만의 GDP 수준은 이탈리아와 맞먹는다. 산업을 일으킨 후 대만 정부는 국민들에게 일본에게 받은 배상금을 산정하여 국고에서 나누어 주었다.
태국의 경우를 보자. 태국은 상당히 민주적인 나라이다. 태국은 일본에게 받은 전쟁 배상금을 받자마자 국민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이런 점때문에 태국은 중공업을 발전 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태국과 대만은 일본에 대한 반감이 없고 오히려 친일적이다. 물론 비유교 국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친일이라는게 한국처럼 나쁜의미의 친일이 아니라 친영국, 친캐나다처럼 호의적이라는 뜻이다.
한국은 매우 대조된다. 받은 배상금을 국민에게 밝히지도 않고 비밀리에 사용했다. 이때문에 한국 국민들은 일본에게 여전히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포루투갈, 스페인의 제국주의이든 일본의 제국주의이든 현재의 윤리에서든 지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일본이 행했다고 욕하는 것은 나는 불합리하다고 본다. 외냐하면 당시 세계의 윤리는 지금과 달라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중국,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반드시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주변국들을 침략했을 것이다. 지금의 중공의 제국주의를 봐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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