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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전쟁: 일본이 명나라를 정벌하는 전쟁

 난학때문이라는 무식한 사람들도 있는데 난학은 한참 뒤인 에도시대에 전해졌다.(고추가 일명전쟁 전에 이미 일본에 있었으니 어쩌면 김치의 원조가 일본일지도... 빵도 일명日明전쟁 이전에 이미 포르투갈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짐.)

 

최초로 교류하게 된 시기는 아마 전국시대이전인 가마쿠라막부 말기 무로마치 막부 시대 초기부터(14C) 명나라와 정부차원의 교역을 하였으니 당연 외국상인들이 들어왔을겁니다. 당시 오사카 밑의 사카이란 도시는 일본 최초의 자유도시로 중세유럽의 도시와 같은 개념으로 정부의 지배를 받지 않는 그런 도시였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역같은 상업교류는 네덜란드와 포르투갈과 교역을 하였습니다.

 

조총이라는 이름은 '날으는 새도 맞힐 정도로 명중률이 뛰어나다'는 뜻에서 붙여졌는데 일본은 1543년 일본 최남단 섬인 타네가시마(種子島: 다네가 섬-가고시마현 남쪽 바다에 있는 섬.)에 표류한 포르투갈인에 의해 조총을 최초로 입수하게 된다.

 

조총은 16세기 초반에 스페인에서 개발된 아퀴버스에서 유래된 소총입니다.1543년경, 포르투칼 상인이 다네가시마의 영주에게 두 정을 팔았고 영주는 하나를 분해하여 조총을 복제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1년만에 600정이 만들어졌으며 그 탁월한 성능때문에 전국시대때 화살 대신 인마살상용으로 보급이 크게 늘었다.

 

조총 수입은 포르투갈에서 했지만 일명 전쟁때 쓴 조총은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죠..
일본이 원래 남의 선진 물건을 보고 창조 를 잘 하죠..
일본의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는 많지 않은 병력이었지만 일본의 대표적 군벌
인 누구더라 다케다 신겐인가 일본 전쟁의 신으로 불리우는 다케다 신겐의
기병 3만을 조총부대 하나로 쓸어버린 인물입니다.

 

일본은 벌써 수입된 조총을 유럽수준을 능가하게 개량하여 세계 최고 성능의 제품을 생산하는 무기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유럽 각국은 일본 조총 수입에 경쟁적이었고, 일본 조총으로 무장하지 않은 군대는 무장한 군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이 보유한 철포의 숫자가 전유럽이 보유하던 양보다 많았음.) 중대한 사실은 당시 일본의 기술수준이 철을 아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일본의 오늘날의 과학기술의 수준의 척도가 됨.

 

게다가 일본은 조총에 대한 전술도 발전하여 3조 전법으로 조총 장전 시간에 대한 문제를 최소화 했다.


일명 전쟁때 일본군은 조총 3만정을 가지고 조선반도에 상륙했는데 위력은 최대 사거리가 500m, 유효사거리가 100~200m에 달했으며 총기 길이도 다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조때 재상을 지낸 유성룡(柳成龍)은 자신의 저서 징비록(徵毖錄)에서 그 막강한 화력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유효사거리나 명중률이 궁시(弓矢·화살)의 배가 된다. 궁시의 사거리는 100보이나 조총은 수백보다."


 

조선에는 자신의 봉건영지 지배지역에서의 종주권을 인정해주지 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앙심을 품은 사가야는 가토 기요마사의 부관으로 조선에 상륙했다가 일본군 3천명을 이끌고 조선에 투항하여 조선에 조총기술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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