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재판        1900  2009. 7. 1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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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패퇴한 근본주의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수면 밑에서 살아남은 채로 호시탐탐 사회적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이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계기가 된 것은 70년대 말인 카터 정권때였읍니다. 그러나 카터가 독실한 신자이기는 했지만, 미국의 온건파 진보 정당인 민주당 정권과 근본주의는 서로 맞지 않는 요소가 많았읍니다. 1979년 근본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 제리 팔웰은 모랄 머조리티(Moral Majority)라는 단체를 창설하고 "미국 사랑하기(I love America)"의 구호를 앞세우며, 1980년의 레이건 대통령의 대통령 선거를 돕게 됩니다. 주정뱅이 아버지와 근본주의자인 어머니를 두었고 B급영화의 카우보이배우 출신의 전형적인 비디오형 대통령 후보인 레이건은 결국 카터의 재선을 막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모랄 머조리티 운동은 그에게 약 3-4백만표를 가져다 준 것으로 여겨지고 있읍니다.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극단적인 보수주의,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TV 전도사의 활성화와 그들이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의 당선으로 말미암아 부활에 성공한 근본주의가 급작스런 확장을 계속하게 됩니다.

제리 팔웰은 동성연애를 혐오하는 극우적 성향의 근본주의자로서 남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t)를 지지하고, 공산주의를 악마로 규정하여 전세계의 공산정권의 반대세력의 투쟁을 지지하게 됩니다. 미국이 하늘이 축복한 국가라는 신념아래, 죄악을 단죄하고 징벌하려는 근본주의의 성향은 레이건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게 됩니다.

레이건이 미국의 국가 의료 기관(Natioanl Institute of Health와 Center for Desease Control)의 에이즈 연구를 중단시키는 반인륜적 정책을 서슴지 않았던 것도 바로 그것때문입니다.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를 벌하기 위해 하느님이 내려준 형벌로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심지어 레이건은 3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그 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에이즈"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린 적이 없었읍니다. 만일 전에 교회에서 에이즈는 천벌이라는 얘기를 목사로부터들었다며는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뿐아니라, 레이건은 영화 "람보"스타일의 공산주의에 대한 무력 진압을 꿈꾸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SF영화에나 나오는 스타워즈계획, 스텔스기 개발에 착수하며, 소련과의 무제한 군비경쟁을 선언하였습니다.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극우주의자이자 근본주의자 미국의 대통령의 이러한 시도는 다행스럽게도 고르바초프라는 한 인물을 역사에 등장시키는 산파역을 맡음으로서 결론적으로는 극우주의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평화적인 역사적 혁명이 동구권을 강타하도록 만들게 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읍니다.

이렇게 광적인 미국 패권주의, 극우 보수주의, TV 전도사를 앞세운 세확장 위주의 근본주의가 팽배한 미국사회 전체의 이성의 마비가 창조론을 부활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성경책만을 이용한 단순하고 순진한 이론이 아니라 일반인의 눈을 현혹시키는 전문용어와 함께,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재등장한 것입니다. 비단 창조론 뿐이 아닙니다. 창조론에 관한 글들이 실리는 회지에는 갈릴레이 시대에 멸종한 줄 알았던 "평평한 지구론"까지도 버젓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세를 펼치고 있읍니다. 이성의 마비란 그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에게는 아폴로 호가 찍은 지구의 둥근모습도 결코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사람과 고래가 자궁으로부터 아이를 출산하고 젓을 먹여 키우는 것이 창조론자들에게는 결코 동일한 선조로부터 진화된 증거가 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정희 대통령은 불교신자로서 장기간 한국의 정권을 쥐고 있다가 1979년에 저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한 정치적 혼란기를 틈타 공산주의와 결탁한 불순분자로 몰아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 장군은 다름아닌 개신교 신자였읍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99% 미국의 근본주의가 들어온 것입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는 모토만이 우리나라에는 없을 뿐입니다.

각 교단의 지도자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신도가 정권을 잡은 것이 기쁘기 그지 없었으며, 너도나도 새로 탄생할 하느님의 정권을 찬양하기에 바빴읍니다.

다음은 "장신원보"에 실린 <5.18과 한국교회>라는 기사의 발췌입니다.



-- 인용시작 --

1980년 8월 6일 이른 아침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서 이전까지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우리나라 개신교 지도자들이 함께 드리는 예배가 진행되었다. 신학적인 많은 대화와 노력에도 쉽게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이들을 기꺼이 하나로 묶을수 있었던 이날 예배는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 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물론 모임 기획자는 얼마전 대법원 공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 받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었다. 5월 광주의 한스러움이 이야기조차 되지 못하던 때다.

전두환 상임 워원장이 국보위에 들어선 이후 나라를 위한(?) 조찬 기도회는 실상 5월 1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각 교회의 중진급 목사들이 돌아가며 이 기도회에 참석하여 설교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8월 조찬 에배는 특별히 신경을 써서 사전부터 준비되어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교파를 초월하여 인지도 있는 교계인사들이 총망라 된 것은 이번이 처음 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조찬 예배는 당시 성결교 ??? 증경 총회장이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 기도드리면서 그 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주간지 ??신문에서는 짧게나마 이처럼 기도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수 있도록 해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전 위원장이 남북 통일 그리고 국가의 번영, 민주화 실현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도와 주십시오.. "

이날 70분간 진행되었던 조찬 기도회는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을 통해 현장중계되었고 점심과 저녁, 두차례에 걸쳐 녹화 중계되었다. 기도회이후 같은달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하고 21일 전군지휘관회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추대, 27일 통일주체 국민회의 체육관 선거가 진행되는 등 국정 모든 일정이 급박하게 이루어 지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행사는 9월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으로 최종 마무리가 된다. 광주 항쟁을 진압하고 난후 열려진 이날 조찬 기도회는 실제적으로 신군부 집권의 서막을 연 셈이 되었다. 이들 신군부들에게는 하나님 이름이라는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했던 '80년 8월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참석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별 교단의 총회장급으로 모두 23명. 이중에서도 그 인지도를 고려해서인지 앞에서 언급하였던 ???목사를 비롯한 기도, 설교, 축도를 맡은 6명의 교계 지도자들이 특히 눈에 띈다.

이들은 사회 ???보안사 군목,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에 ?기장 총회장,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기도에 ???당시 감리교 감독 회장, 전두환 보안사 사령관을 위한 기도에 당시 장로교 총무였던 ???목사, 설교에 ???예장 통합 증경 총회장등 그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교계 지도자급들이다.

특히 ???목사의 경우에는 전두환씨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열린 축하 조찬 기도회에서도 축도를 맡았으며 4,13 호언 조치가 발표되고 6월 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87년 5월에 마련된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도 참여해 설교를 하였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정신적인 지도자 답게 중요한 행사때 마다 5,6공 무대에 종종 섰던 셈이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찬송으로 시작된 대통령 취임 축하 조찬기도회가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 되자 전두환씨는 기도회가 끝나고 즉석 인사말을 통해 '오늘의 기도회는 당면한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민주복지 국가를 건설하여 모든 사람이 명랑한 가운데 잘살수 있는 나라를 건설하는 막중한 임무를 성원해 주기 위한 것으로 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였다.

취임 한달전에 이루어진 8월 조찬 기도회에는 그밖에도 당시 ???새문안 교회 담임목사, ???성결교 총무, ???성민교회 목사, ???충현교회 목사, ???한국 대학생 선교회 회장, ???감리교 증경 감독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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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협에서는 작년 초, 과거 청산 정국과 관련하여 시국성명을 발표 하였다. 이 성명에서 교회협은 "한국교회의 한편에는 지난 시절 국보위라는 초법적 기구에 일조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만든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있었다."고 밝히면서 이들의 회개와 공식 입장을 촉구한바 있었다. 그러나 지난 80년 조찬 기도회의 주역 23명중 단지 2명만이 교회협에서 주도한 참회 성명에 동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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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끝 --



이렇게 군부독재 정권의 비호를 받은 한국 기독교, 정확히 말하면 미국계 근본주의 개신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세확장을 거듭했고 창조론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직수입된 것입니다. 유독 창조론과 평평한 지구론중 창조론만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은 평평한 지구론은 미국의 근본주의자가

아닌 한국의 근본주의자가 보기에는 명백한 사이비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사이비 이론은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조류가 극우 보수화 되고 종교적 으로는 근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이성이 숨쉴틈 없는 틈바구니를 타고 들어와 정착한 것이라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 같은 패턴이라고 하겠읍니다.

유독 이런 사이비이론이 미국과 한국에서만 활개치는 것도 스타워즈 계획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금강산댐 수공 대응책이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레이건 정부와 전두환 정권이 동시대에 양국을 장악하고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읍니다. <제리 팔웰-레이건-전두환-근본주의-창조론-평평한 지구론>의 사슬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PS: 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폭발적으로 확장 된 시대가 바로 전두환의 8년 독재기간..(전두환이 국비로 개척교회 지원을 하고 교회에 부과하던 세금을 폐지하였음.)

그리고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미국이 나쁜 것이 아니라 미국 공화당이 나쁘다는 것. 미국에 사는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미국의 그리스도인구는 천주교, 개신교 모두 합해서 단 60%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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