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 설명 - 샤트라프        세계사 개관  2009. 8. 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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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트라프는 원래 고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에서 지방 총독을 이르던 말로

왕에게 귀속된 존재라기 보다는 독자적인 지방 제후의 성격이 짙었다.

세수권과 군사권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지방의 지배자와 같았는데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말기에 마우솔로스라는 제후는 페르시아 왕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무덤을 축조하기도 했다.

기원전 4세기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가 알렉산더 대제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제국에게 멸망한 후

헬레니즘 시대가 열리면서

마케도니아계 오리엔트 제국들의 지배자들은 페르시아에서 쓰던 용어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셀레우코스 제국의 경우 확실히 '제국이며' (개독들이 지껄이는데로 시리아 '왕국'이 아니다.)

그 근거는 셀레우코스 제국 황제의 호칭은 '바실레우스'로서 오리엔트 전제군주를 일컷던 말이었다.

따라서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기원전 358 ~ 기원전 281)를 시작으로 그 지위는 황제가 맞다.

또한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방총독 또한 명칭이 샤트라프였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한 마케도니아계 제국이었으므로

토착 야만족들(파르니족(파르티아를 세움), 소아시아 야만족들(페르가몬, 카파도키아, 폰투스  등)

의 지방반란에 시달려야 했다.

워낙 문화도 다양한데다 지방특색도 강해서 피지배 야만족들은 시시때때로 반란을 일으켰다.

또한 조선 세계사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이 메소포타미아는 오픈된 지역이어서 워낙 민족의 이동이 많고 어느 지역에서 공격이 올지 알 수 없는 교통의 요지이자 자원의 보고이다.



셀레우코스 제국은 지방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대거 이끄는 경우가 많았고 그 상황에서는 반대지역 지배 영향력이 덜 미치는 변두리에서는 또 소요사태가 일어나곤 했다.

그 때문에 셀레우코스 제국의 샤트라프들은 그 틈을 이용해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고 독립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인도 북부를 지배한 박트리아 왕국과 아랄해 주변을 중심으로 일어난 북방 야만족 파르니족의 파르티아가 그것이다.

헬레니즘 제국의 으뜸이었던 셀레우코스 제국은 결국 유대교를 신봉한 파르티아 야만족들에게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그 파르티아 왕국도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한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에게 공격받아 멸망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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