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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은 속주에서 들여오는 수확물과 노예로서 번영하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상공업도 발달했지만.

 하지만 군인황제 시대에 들어서며 군사 싸움을 하기 위해 무리하게 화폐를 발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가중되고 각지에 제반 자원들이 부족하게 되었다. 또한 식민지에 대한 오랜 지배가 계속되면서 더 이상 노예나 수확물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노예는 고갈되었으며 수확물은 오랜기간 플랜테이션(대농장)이 지속되면서 토지가 척박해져 더 이상 생산 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복지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로마제국이었지만 이러한 경제적 상황의 변화는 복지 정책에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이때문에 빈민층과 부랑자들 사이에서 그리스도교가 유행하게 되고(당시 그들에게 있어 공산주의와 비슷한 사상이었다.) 사회에 대한 반감을 가진 그들은 제국의 시청, 행정국, 공공시설, 신전들에 사보타지, 테러 등을 자행하며 사회의 큰 불안요소로 등장한다. 게다가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콘스탄티누스가 지지층 확보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허용함으로써 더욱 급속도로 제국 내에 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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