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링컨의 진실        1800  2011. 3. 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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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링컨.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자, 노예해방자로 알려진 숭구한 대통령이다.

국내에서 출판되는 위인전 중, 그가 나오지않는 책도 없고, 많은 이들이 노예해방하면 그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노예해방론'은 오로지 정치적인 목적때문이었고, 심지어 그는 상황에 따라 '노예해방론'을 부정하기까지 했을정도였다.

 당시에, 미국은

 농업을 중심으로 육성되, 노예가 필수적인 남부와 공업을 중심으로 육성되, 노예가 필요하지 않는 북부와의 남-북 갈등이 심화됬던 시기였고, 이런 남부가 살길을 도모하기위해, 북부와의 연방탈퇴의 조짐까지 보였었던 시기였다.

 링컨은 선거전때 당시 상대였던 '더글라스'의 임시방편적인 '노예문제'에 비난을 했었었고, 그의 아랫말에서 그의 가치관을 확인할수 있었다.

 "Adivided house can not stand!!"

(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수가 없다!!!)

 

바로 이것이 링컨이 주장했던 바이다. 분열된 국가는 살아남을수가 없다.

노예문제로 한 국가가 두개로 분열된다면 미국의 앞날은 보장될수 없다.

 더불어 그의 말에서 그의 노예문제 대한 생각이 나온다.

 "연방을 지키기위해 노예제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겠다.

연방을 지키기위해 노예제를 페지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

연방을 지키기위해 두 가지 방법이 모두 필요하다면 그 역시 그렇게 하겠다!"

 결국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미국의 단합이 노예해방이고 자시고 그런 문제로의 갈등으로 미국의 분열은 용납못한다"

 1861년, 남부의 무력적인 연방탈퇴가 시작되자, 링컨은 이를 막기위해 전쟁을 시작하니 그것이 바로 '미국 남북전쟁'이다.

 전쟁이 한창임에도, 주변 인들은 링컨에게 노예해방을 권하지만 링컨은

"그것이 곧 남부에 자극이니, 그런 자극을 줄 필요도 없고, 남부가 연방으로 돌아온다면

노예제를 인정해주려고 한다."

  이 말에서 그가 노예해방에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인물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졌던 북부에게 한가지 대 승전보가 날아왔으니, 그것이 바로 '앤티텀 전투'였다. 북부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자, 링컨 역시, 어디까지나 이 전쟁의 명분은 '노예해방'인 만큼, 지금 이 시기에 노예해방을 해야만 세계의 비웃음을 안 받을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1862년 9월 22일 링컨은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하지만 말이 해방이지, 링컨이 죽을때까지 노예들의 생활은 변치못했다.

전쟁이 끝나, 남부가 연방으로 복귀했다해도, 그 동안 가지고있던 노예들을 완전히 해방시켜주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뿐더러, 1970년대까지만 해도, KKK단이니, 흑-백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기였는데, 당시 노예해방이 된 후, 노예들의 생활은 어땠었겠는가...해방후나, 전이나 차별은 똑같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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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위인전에 나온 내용을 보면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의 대의에 동참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남북전쟁은 남부와 서부의 경제적 격차, 산업구조의 차이에 의한 필연적인 전쟁이었지 노예해방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부군이 이겨서 남군이 항복한 뒤에 노예해방이 선포되어도 링컨은 자신이 소유했던 노예는 단 한명도 해방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A people's History of United STates by Howard Zinn
Harper Perennial press.

 

 노예해방을 처음부터 주장한 것이 아니라, 북부지역에서의 노예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남부보다 덜 했고 이후에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그것을 선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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