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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전쟁과 로마의 확장 (기원전 215 ~ 기원전 168)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215∼기원전 205)에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2∼BC 179)는 로마와 혈투를 거듭하던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일리리아와 동맹을 맺고 로마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승패 없이 끝났다. 일리리아의 대부분은 로마에 정복당했다.(제 2차 일리리아 전쟁)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200∼기원전 197)
반로마파 헬레니즘 제국인 마케도니아와 셀레우코스 제국은 동맹을 맺고 양국이 그리스 반도와 오리엔트를 제패하기로 비밀 협약을 맺는다. 마케도니아는 발칸과 소아시아의 친로마파 헬레니즘 소왕국들(로도스, 페르가몬, 그리스 반도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고 셀레우코스 제국은 친로마파인 헬레니즘 제국인 이집트를 정복하기로 한 것이다.
필리포스 5세가 정복전쟁을 시작하자 공격을 받은 친로마파 나라들은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그 연합군에게 고전하다가 패했으며 자신을 돕지않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 황제에게 분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로써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종료되었다.

제 2차 마케도니아 전쟁 이후
이후 로마의 동진에 위협을 느끼고 아카이아 동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이톨리아 동맹은 팔레스티나와 이집트를 정복한 셀레우코스 제국에게 대로마 항전을 요청했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3세는 이에 동의하여 그리스 반도 접수에 나섰다. 반면 친로마파였던 아카이아 동맹과 페르가몬은 로마편에 서서 싸웠다. 로마는 그마저 격파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에게 소아시아 지배권을 포기하게 하고 셀레우코스 제국 지배하에 있더 트라키아를 친로마 국가였던 페르가몬에게 양도한다. 따라서 소아시아 서부는 페르가몬, 동부는 폰투스가 지배하게 된다. 아이톨리아 동맹은 로마 공화국에게 정복되고 만다. 셀레우코스 제국 휘하에서 해군을 이끌었던 한니발(포에니 전쟁의 장군)은 로마측에서 셀레우코스 제국에 신변을 넘기라는 요구를 하자 소아시아 비티니아로 도망가 거기서 자살하였다.

제 3차 마케도니아 전쟁
제3차 전쟁(BC 171∼BC 168)에서는 필리포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잃은 패권을 되찾으려 일리리아, 에페이로스 등과 동맹을 맺고 로마에 대적하다가 로마의 장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게 파드나에서 크게 패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일리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겐티우스가 BC 168년에 항복했다. 일리리아 멸망. (제 3차 일리리아 전쟁)
에페이로스는 로마와 마케도니아가 대립하는 동안 불안정했으며,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BC 171~168)중에는 분열하여 몰로시족은 마케도니아를 지지하고 카오네스족과 테스프로티족은 로마 편을 들었다. 몰로시는 BC 167년 승전한 로마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15만 명의 주민은 노예가 되었다. 에페이로스 멸망. 

아카이아 연맹 전쟁(기원전 146년)
그리스인들을 무시하는 로마 정부에 태도에 불만을 품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연합인 아카이아 동맹이 봉기를 했다. 로마 정부에서는 봉기의 주동자인 도시국가 코린트를 초토화했으며 아카이아 동맹은 해체되어 로마의 속주로 편입됨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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