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리아 왕국 (Illyrian kingdom) 기원전200 ~ 기원전100 2009. 4. 3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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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 반도의 북서부지역.
BC 10세기경부터 인도유럽인에 속하는 일리리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그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도나우 강에서부터 아드리아 해에 있는 암브라시아 및 아드리아 해 건너 샤르 산맥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할슈타트 문명(→ 할슈타트)의 일리리아인들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졌으며, 각 부족들은 원로들과 지도자 1명을 선발하여 그들로 구성된 의회를 갖춘 자치지역을 이루었다. 그러나 족장의 세력이 강할 경우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하나의 왕국을 만들기도 했다. 최후의 왕국이자 가장 유명한 왕국인 일리리아 왕국은 스코드라(지금의 알바니아 슈코더르)를 수도로 삼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통치자는 BC 3세기 후반의 아그론 왕으로 BC 231년 그는 마케도니아의 디미트리오스 2세와 연합하여 아이톨리아인들을 물리쳤다. 그가 갑자기 죽고, 그의 아들은 어려서 미망인 테우타가 섭정을 하게 되었다. 테우타 여왕은 일리리아 해군 병력 가운데 일부를 동원하여 시칠리아와 그리스의 여러 해안 식민지를 침략했는데, 이러한 행위에 화난 로마는 결국 대규모 함대를 아드리해 동쪽 해안지대에 파견했다. BC 228년 테우타가 항복했으나 왕국의 내륙지대는 건재했다. 그후 BC 219년에 로마는 제2차 해군 원정대를 파견했다. 이웃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가 일리리아 왕국을 도와 전쟁에 가세하여 전쟁이 오래갔으나 결국 발칸 반도 전체를 로마에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일리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겐티우스가 BC 168년에 항복했다. 로마의 속주 일리리쿰은 그 영토가 남쪽의 드릴론 강(지금의 알바니아 드린 강)에서부터 북쪽의 이스트리아(지금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영토)와 동쪽의 사부스(사바) 강까지 이르렀으며, 행정중심지는 달마치야 살로나이(지금의 스플리트 근처)였다. 도나우 강 유역을 따라 로마 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일리리쿰은 달마치야 속주와 판노니아 속주로 나누어졌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일리리아는 번영을 누렸다. 로마 가도가 이 지역을 가로질렀으며, 이곳 항구들은 로마와 오늘날 동유럽 여러 지역 사이의 주요교역 및 교통의 연결지점이 되었다. 이 지역의 여러 곳에서 구리·아스팔트·은 등이 채굴되었으며, 일리리아 포도주 및 기름·치즈·물고기 등을 이탈리아로 수출했다. 반자치를 누리던 일리리아 고지대의 사람들이 용감하여 황제들은 이들을 징집하여 로마 군단이나 심지어는 근위대에서 복역하게 했다. BC 3세기에 로마 제국이 오늘날 유럽 동부 및 중부 지역에 거주하던 미개인들로부터 위협받기 시작하자 일리리아는 고대 로마의 영토와 문화의 중요한 보루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 2세 고티쿠스,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포함하여 로마 제국 말기의 유명한 황제들 가운데 여러 명이 일리리아인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격전지의 군단 자체 내에서 선발되어 나중에 원로원(세나투스)의 승인을 받았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서부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정착하였던 일리리아인의 영토. 일리리아라고도 한다. 일리리아인이 아드리아해의 선박을 공격했기 때문에 일어난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일리리아전쟁(BC 229∼BC 228, BC 219) 결과, 영토의 대부분은 로마의 보호령이 되었다. BC 168년 마케도니아전쟁에서 마케도니아를 도왔으므로 남은 영토마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 뒤 오랜 기간에 걸친 속주화(屬州化) 과정에서 일리리쿰이라 하게 되었다. L.C. 술라 이후, 갈리아키살피나(치살피나) 또는 마케도니아와 함께 통치되었으나, 카이사르 때에 와서 비로소 하나의 속주가 되었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서부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정착하였던 일리리아인의 영토. 일리리아라고도 한다. 일리리아인이 아드리아해의 선박을 공격했기 때문에 일어난 로마와의 두 번에 걸친 일리리아전쟁(BC 229∼BC 228, BC 219) 결과, 영토의 대부분은 로마의 보호령이 되었다. BC 168년 마케도니아전쟁에서 마케도니아를 도왔으므로 남은 영토마저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 뒤 오랜 기간에 걸친 속주화(屬州化) 과정에서 일리리쿰이라 하게 되었다. L.C. 술라 이후, 갈리아키살피나(치살피나) 또는 마케도니아와 함께 통치되었으나, 카이사르 때에 와서 비로소 하나의 속주가 되었다.
일리리아족 (-族 Illyrians)
- 요약
- 이탈리아 북서부에서 남쪽은 알바니아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다는 인도유럽어족의 일파.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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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서부에서 남쪽은 알바니아에 이르는 지역에 살았다는 인도유럽어족의 일파. 문자자료가 적기 때문에 언어계통에 관해서는 확실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알바니아인의 조상이라고 하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책 등에서 드물게 보이는 단편적 기술이나 고고학 발굴자료에 의하여 그 문화의 개요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BC 7세기 무렵부터 고대 그리스인이 이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일리리아족이 문신을 하고 인신공양을 하는 전투적인 야만인으로 보였다. 이 밖에 문헌에는 구매혼(購買婚)과 여왕의 존재에 관한 것이 쓰여 있다. 슬라보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달마티아 각 지방 유적발굴에서는 신석기시대 이래의 문화에 대한 개략을 알 수 있는데, 일리리아족이 BC 8세기부터 BC 5세기에 걸쳐 할슈타트철기문화를 동방으로 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각종 철제무기, 청동 꾸미개[裝身具(장신구)]나 제기(祭器) 등으로부터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계층으로 분리되었던 것을 볼 수 있고, 소왕국 사이의 대립항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장이 행해졌고, 특징적인 납골(納骨)항아리가 만들어졌다. BC 4세기 무렵부터 스키타이족이나 켈트족의 압박을 받았고, 또 로마의 침공을 받았다. BC 168년에는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6세기 이후에는 남하하는 슬라브족에게 흡수되어 민족으로서의 실체를 잃어갔다.
루키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 기원전 229-228년 벌어진 일리리아 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일리리아 왕국을 로마의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정무관(프라이토르)이던 기원전 179년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스페인, 포르투갈)로 원정하여 야만족인 스페인족과 포르투갈족을 정벌하였다. 아이밀리우스를 도와 마케도니아를 멸망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173년 집정관에도 올랐으나 카토 가문의 괴롭힘을 받았다.
테우타: 일리리아의 여왕. 일리리아 왕국의 창건자 아그론(250 BC-231 BC 재위)의 아내이다. 그리스와 시칠리아, 이탈리아 동부 해안을 일시 점령했고 이로써 제 1차 일리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일리리아 지방 총독 중 한명이었던 데메트리우스가 반역하여 로마에 붙어 일리리아의 길 등을 일러바쳤다. 이로써 일리리아 왕국은 너무나 어이없이 패배하고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테우타는 현재의 몬테네그로로 도망쳤다. 이후 데메트리우스가 나머지 일리리아 지역을 지배하고 로마와의 우호로 많은 지원을 받아 강성해졌을 때 제 1차 마케도니아 전쟁(BC 214)때 필리포스 5세를 도와 로마에 대항해 제 2차 일리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시칠리아 메세나를 공략하다 전사했다. 재위 bc231~bc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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