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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람왕국 [Elamite Dynasty]
요약

엘람왕국은 BC 2700년경에 생성되어 BC539년까지 존재했다. 지금 이란의 남서부 지역과 극 서부 지역인 이람(Ilam)주와 쿠제스탄주(Khuzestan)아래에 해당한다.

본문

엘람을 이란역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짙지만 엘람시대의 언어와 이란의 언어는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두 언어가 엘라모-드라비디안(Elamo-dravidian)에 속한다.

BC 4000년대 말부터 3000년대 초까지 이란 고원에는 메소포타미아식의 도시문명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저지대인 쿠제스탄에서는 엘람이 도시문명을 발전시켰다. 엘람에는 다양한 지역을 통합시킬 수 있는 일원화된 정치권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기본 권력구조는 1명의 군주가 여러 공국의 통치자들을 지배하는 형태를 취했다. 군주의 바로 아래 동생이 부왕이 되었고, 아들은 수사(Susa) 지역의 통치자가 되어 3명이 함께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엘람이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던 BC 2000년대에 만들어진 사원 유적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건축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독자적인 구조의 지구라트가 수사지역에 세워져 있다. 이 시기 엘람의 조각품 가운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수사의 나피라수 왕후의 실물크기 청동상은 놀랄 만한 걸작품으로 여겨진다.


수사 [Susa]
요약
선사시대에서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란문명의 정치적·경제적 중심이었던 도시유적.
소재지 이란
시대 선사시대~페르시아 제국 시대
본문

현재는 '슈슈(Shush)'라고 불린다. 19세기 중엽부터 W.로프투스, J.모르간이, 1946년 이후에는 R.기르슈망이 발굴을 주도하였다. BC 4000년 무렵부터 엘람 민족이 거주, 신석기문화를 이룩하여 예술적인 가지무늬토기[] 등을 남겼다. BC 3000년대 초기 원()엘람문자와 십진법이 발명되었고 도시도 성립하였다.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에 연속되어 있어 문화적인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설형문자()나 십이진법 등이 채용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제()왕조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 군사적으로 일진일퇴를 되풀이하였다. BC 12세기 초 쿠티르나훈테가 바빌론을 공략하여 함무라비 법전비()와 나람신 전승비() 등을 가지고 왔다.

아시리아 시대 아슈르반아플리왕에게 멸망당하였으나, 페르시아제국 시대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다리우스가 이 곳에 도읍하여 장대한 궁전을 조영하고, 도시 전체를 성새()로 두른 이후 크게 번영하였다. 상업도시로서 사산왕조 페르시아 시대까지 존속하였고, 알렉산드로스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벌한 후에도 서방과의 밀접한 교섭을 나타내는 화폐 등이 발굴되었다. 또한 4세기에는 국왕의 탄압에 대항하는 그리스도교도의 반란으로 코끼리군()에게 짓밟혔으나, 중국의 도기(), 투르크의 화폐가 발견되어 8∼10세기에는 동서문화 교류에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몽골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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