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람을 이란역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짙지만 엘람시대의 언어와 이란의 언어는 다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두 언어가 엘라모-드라비디안(Elamo-dravidian)에 속한다.
BC 4000년대 말부터 3000년대 초까지 이란 고원에는 메소포타미아식의 도시문명이 발전하지 못했지만 저지대인 쿠제스탄에서는 엘람이 도시문명을 발전시켰다. 엘람에는 다양한 지역을 통합시킬 수 있는 일원화된 정치권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기본 권력구조는 1명의 군주가 여러 공국의 통치자들을 지배하는 형태를 취했다. 군주의 바로 아래 동생이 부왕이 되었고, 아들은 수사(Susa) 지역의 통치자가 되어 3명이 함께 권력을 나누어 가졌다
엘람이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던 BC 2000년대에 만들어진 사원 유적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건축과는 공통점이 거의 없는 독자적인 구조의 지구라트가 수사지역에 세워져 있다. 이 시기 엘람의 조각품 가운데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수사의 나피라수 왕후의 실물크기 청동상은 놀랄 만한 걸작품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