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요 제국 (Kara Khitai)        1000 ~ 1100  2009. 4. 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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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원에 주르첸족(한역: 여진족)이 금제국을 일으키면서 원래 지배자인 요제국의 키타이족(한역: 거란족)이 쫓겨나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다시 세운 제국이다. 징기스칸 시대에 동쪽의 금제국과 더불어 동양에서 가장 부흥한 제국을 형성했다. 셀주크 투르크와의 싸움에서 이겼으며 서쪽에 이슬람 제국인 호라즘과 접전을 벌였다. 피지배민족은 이슬람을 믿었으나 황실은 불교를 봉존하였다. 기독교를 믿는 몽골 부족의 하나인 나이만의 왕자 크출루크가 간계로 왕위를 찬탈하였으며 본래의 황제는 징기스칸에 부탁해 크출루크를 죽이고 서요는 몽골제국에 정복되었다. 서요 황실은 징기스칸의 제국에서 높은 직위을 하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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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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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초의 지도

서요(중국어 간체: 西辽, 정체: 西遼, 병음: Xī Liaó, Kara Kitai)는 의 일족인 야율대석(西遼의 德宗)이 요가 멸망한 후 중앙아시아에 세운 나라이다. 중국의 기록으로는 서요라 하고, 이슬람 교도는 카라 키타이(검은 거란이란 뜻)라 부르고 있다. 1132년 건국되고 도읍은 발라사군(지금의 토크마크 부근). 동서 투르키스탄을 영유(領有)하고 1211년 나이만의 왕자 쿠츨루크에게 멸망되었다.

소수의 거란인으로 지배한 정복 왕조로서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 교도였다. 재정은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로부터 공납(貢納)과 위구르 상인이나 이슬람 상인 등의 동서 무역에 의한 수입에 의존했다. 또한 동서 교류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방의 이슬람 세계와 동방의 중국 세계의 문화 교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서요에 대신한 쿠치루크의 지배는 칭기즈 칸 군대에 곧 무너졌다.

 역대 군주

  1. 덕종 야율대석(德宗 耶律大石, 천우제(天祐帝), 재위 1132년 - 1143년) - 요 태조 야율아보기의 8세손.
  2. 감천소태후 소탑불연(感天蕭太后 蕭塔不煙, 재위 1143년-1150년)- 야율대석의 후처.
  3. 인종 야율이열(仁宗 耶律夷列, 소흥제(紹興帝), 재위 1150년 - 1163년)- 야율대석의 막내아들.
  4. 승천태후 보속완(承天太后 普速完, 재위 1163년 - 1177년)- 야율이열의 누나.
  5. 말제 야율직노고(末帝 耶律直魯古, 재위 1177년 - 1211년) - 야율이열의 차남.
  6. 결제 크출르크(缺帝, 재위 1211년 - 1218년)- 야율직노고의 사위.

 연호

  • 연경(延慶) 1132년 - 1134년
  • 강국(康國) 1134년 - 1143년
  • 함청(咸清)
  • 소흥(紹興)
  • 숭복(崇福)
  • 천희(天禧)

카라 키타이

요나라 박살이후, 야율대석이 이끄는 거란인들은 일리강 인근으로 가서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카라한조의 이브라힘을 두들겨 박살내버린 뒤 발라사군을 점령합니다. 이에 야율대석은 스스로를 구르칸, 즉 사해의 군주로 칭하고 동카라한조를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이게 바로 카라 키타이제국. 즉 검은 거란이죠.

카라 키타이인들은 유목민과 달리 일족들에게 식읍이나 영지를 떼어내서 다스리게 하는 대신 중국식대로 호구에 기초하여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야율대석은 끝없이 확장, 서카라한조를 박살낸뒤 트란스속시아나를 장악하고, 셀주크의 왕자 산자르가 이끄는 이란의 셀주크 투르크도 공격합니다. 호젠트에서 카라한조의 군주 루큰 웃 딘 마흐무드를 처부수고 그를 구원하러 온(당시 카라한조는 명목상 셀주크의 가신) 산자르도 카트완에서 관광보냅니다.

이렇게 주위 나라들을 차례로 방법한 카라 키타이는 사마르칸트의 서카라한조를 그들의 속국으로 만들고 콰레즘의 샤 아트시즈를 공격, 콰레즘을 조공국으로 만듭니다. 아트시즈의 아들 아르슬란이 개기나 두들겨 맞고 박살나죠. 이렇게 카라 키타이 제국은 엄청난 성장을 이룹니다.

야율대석 사후, 그의 아내 탑불인이 섭정을 하고 야율이열이 계승합니다. 야율이열의 13년 치세가 끝난후 야율씨가 섭정을 하고 야율이열의 아들 야율직로고가 뒤를 잇습니다. 이 시기에 속국인 콰레즘과 사이가 틀어지게 됩니다. 이둘이 싸우다가 서로 약해지죠.

카라 키타이는 야율직로극때 쇠락해집니다. 펑펑 놀다가 나라다 다 찢겨나가죠. 일단 위구르의 군주 바르추크가 칭기스칸에게 붙고, 일리강 유역의 카를룩의 왕인 아르슬란도 칭기스칸에게 붙고, 칭기스칸에게 쫓겨간 쿠츨룩이 야율직로극을 상대로 콰레즘의 샤 무함마드가 반란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카라 키타이를 장악해버립니다. 야율직로극은 명목상의 군주가 되어버리죠.
쿠츨룩은 네스토리우스 교도였습니다. 설명하자면 길지만 아무튼 기독교도입니다. 쿠츨룩은 카쉬가르의 무슬림에게 이슬람을 버릴것을 명하고 이게 반감을 사버리는등 인기없는 짓을 하다가, 칭기스칸의 부하 신전장군 제베에게 망합니다. 이로써 카라 키타이 제국은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의 일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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