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프러시아)        1000 ~ 1100  2009. 4. 22. 21:37

반응형
 

프로이센 [Preussen]
요약
유럽 동북부와 중부에 있었던 지방 및 그 지방에 있었던 나라.
본문

프러시아라고도 한다. 프로이센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서 중세 초부터 살기 시작한 발트어계() 프로이센인에서 유래했다. 좁은 뜻으로는 발트해 남쪽 연안에서 비슬라강과 니멘강에 이르는 지방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이 지방에서 세워지고 발전하여 독일제국의 중심을 이룬 프로이센 공국() 및 왕국을 의미한다.

 
[프로이센의 발전]

프로이센 공국

프로이센
원주민인 원() 프로이센인(프루시)은 언어적으로 특수한 발트어족의 하나이며, 11세기에 폴란드의 지배를 받게 되자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폴란드의 영주 마조비아공()은 1226년 독일 기사단()을 초치하였는데, 기사단은 이 지방을 정복하고 쿨름 등의 도시를 건설, 이곳에 이주시켜 독일화하였다.

기사단의 프로이센 지배는 14세기가 최성기였으며, 1410년 폴란드와의 결전에 패하고부터는 쇠퇴하기 시작하여, 1525년 최후의 기사단장 알브레히트가 신교로 개종하고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절연함으로써 이 영토는 세속화()하여 프로이센공국이 되었다. 그 뒤 1618년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프로이센공을 겸하게 되어,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은 호앤촐레른가()의 통치하에서 동군연합국()이 되었다.

프로이센왕국
본문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은 1701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즉위함으로써 프로이센왕국으로 승격하였다. 브란덴부르크가 중심이 되는 이 나라가 굳이 프로이센을 국호로 한 것은 프로이센이 신성로마제국의 영역 안에 있었으므로, 호앤촐레른가()가 자국()의 독립성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프로이센왕국은 여러 곳으로 떨어져 있는 영토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은 개별의 법률과 신분제 의회를 갖고 있었으나, 대선제후 이래 그 중앙집권화가 진척되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시대에는 절대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국왕 지배의 근간이 된 것은 국력에 걸맞지 않는 상비대군()과 이를 지탱하기 위한 징세()의 관료기구였으며, 따라서 양자를 직속기관으로서 장악하고 있는 왕권은 확고부동하였다. 이 군사 관료기구를 기반으로 프로이센은 대외정책을 펴나가 프리드리히 2세 때에는 슐레지엔과 서(西)프로이센(폴란드 분할)을 합병하고, 또 제2·3회의 폴란드 분할로 영지를 더욱 넓혀, 강대국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나폴레옹 시대에는 틸지트조약(1807)으로 사실상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나, 대()나폴레옹 해방전쟁에서는 주역을 담당하여 승리자가 되어 빈회의에서 베스트팔렌·라인란트 등의 새 영토를 얻고, 안으로는 프로이센 개혁으로 여러 제도의 근대화에 힘써, 19세기의 국제 정세에 임하였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전근대적 요소들이 여전히 남아 1848년 3월혁명이 일어났고, 또 자유주의적인 독일통일운동도 억압하였으며, 국왕은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의 황제(입헌군주제)추대를 사퇴하였다(1849).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나타나 보수주의적 입장에서 독일통일을 추진하였으며, 더욱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의 승리로 통일을 가로막던 많은 장애가 제거됨에 따라,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되어 통일이 이루어졌다.

독일제국은 연방제를 채택하였는데, 프로이센왕국은 그 한 지방()이면서도 제국 전체의 2/3를 점하는 대세력으로서 실질적으로 제국을 지배하였다. 이와 같은 독일·프로이센의 이중 구조바이마르공화국에도 존속하였고, 나치스시대에 이르러 연방제는 폐지되었으나 프로이센정부는 존속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로이센은 완전 해체되어, 오데르강·나이세강 동쪽은 폴란드령()으로, 북쪽 반은 소련령이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 왕국으로 성장하여 합스부르크家인 신성로마제국과 경쟁하였다. 이후 독일지역이 2등분되었고

 

이후 독일 통일기때 합스부르크는 폴란드 북부에 있던 프로이센에게 독일의 대부분을 잃고 오스트리아로 쪼그라들었다.(오스트리아 왕국)

 

 이 지역은 발트해안, 즉 북유럽 해안지역으로 세계 2차 대전 독일 패배 이후에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러시아 등 극동유럽국가들에게 분할 할양되었다. 폴란드는 이 지역이 합병되기 전에는 해안지역이 전혀 없는 내륙국가였으며 영토도 현재보다 훨씬 작았다.

 

합스부르크는 대공위 시대 때 힘이 약했기 때문에 대공위 제후들이 밀어줘서(자기들이 부리기 쉬우니까) 크게 된 집안이다.


 

프로이센 (Preussen)

요약

 
프로이센 공국 및 왕국 및 프로이센 지방.

설명

넓은 뜻으로는 프로이센 지방에 성립, 발전하여 1871년부터 독일제국의 중심을 이룬 프로이센 공국(公國) 및 왕국을 말하며 좁은 뜻으로는 발트해 남쪽 연안에서 비슬라강과 니멘강에 이르는 프로이센 지방을 말한다. 중세 초 이 지역에 정주하기 시작한 발트어계(語系) 프로이센인으로부터 지명이 유래하였다. 프러시아라고도 한다.

프로이센공국
11세기 폴란드 지배 하에 있던 원주민 프로이센인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키자 1226년 폴란드 영주 마조비아공은 독일기사단(騎士團)을 영입하여 이 지방을 정복하고 콜롬 등의 도시를 건설, 독일화하였다. 독일기사단의 프로이센 지배는 1410년 폴란드와의 결전에서 패한 뒤 쇠퇴하기 시작, 1525년 마지막 기사단장 알브레히트가 신교로 개종하고 가톨릭교회와 관계를 끊음으로써 영토는 세속화하였고, 폴란드국왕이 알브레히트에게 봉토로 하사하여 프로이센공국이 성립되었다. 알브레히트는 행정·재정을 개혁하고 교회질서를 정비하였으며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을 설립하는 등 모범적인 영방(領邦) 군주였다. 그 뒤 1618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選帝侯)가 프로이센공을 겸하게 되어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가(家)의 통치 하에 통합,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이 되었다.

프로이센왕국
1701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초대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1세로 즉위함으로써 프로이센왕국이 되었다. 영토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어 각 지역마다 개별적인 법률과 신분제 의회를 갖고 있었으나 대선제후 이래 풍부한 자원과 중앙집권화를 통해 관료제를 정비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켰으며 프리드리히빌헬름 1세 때 강대국으로 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절대주의 국가체제가 확립되었다. 18세기 프리드리히 2세는 국내 절대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7년전쟁 등을 통하여 슐레지엔과 서프로이센(폴란드 분할)을 합병하여 영토통일을 진전시켰다. 그러나 경직된 신분제로 인하여 국민은 국정에서 완전히 격리된 채 프랑스혁명의 시대를 맞았다. 18세기 말부터는 프랑스혁명에 대항하여 대프랑스동맹에 참가하였으며 3회에 걸친 폴란드 분할에도 참여하였다. 나폴레옹시대에는 예나·아우어슈테트싸움에서 나폴레옹 1세에게 패한 뒤 1807년 체결된 틸지트조약으로 영토의 반을 잃고 많은 배상금을 지불하였으며, 대륙봉쇄에 따른 대영무역금지와 프랑스군 주둔 등의 경제적 압박으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등 사실상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H.F.K. 슈타인·K.A. 하르덴베르크 등은 국가·사회의 근대화를 위한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대나폴레옹 해방전쟁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여 빈회의에서 베스트팔렌·라인란트 등의 새 영토를 획득, 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빈체제 하의 반동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 개혁이 정체되고 관료절대주의로 인하여 자유주의적 독일 통일운동은 억압되었다. 1848년 3월혁명으로 한때 L. 캄프하우젠·D. 한제만 등 라인란트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내각이 성립되었으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지주 지배체제가 다시 강화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프로이센이 주도한 관세동맹은 독일 여러 나라를 경제적으로 규합하였으나 이 무렵부터 독일통일에 관한 오스트리아와의 분쟁이 시작되었고, 1849년 국왕은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 황제(입헌군주제) 추대를 사퇴하였다. 그러나 O.E.L.F. 비스마르크가 나타나면서 군비를 강화하고 보수주의 입장에서 독일통일을 추진하여 1864년 덴마크,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쟁에서 승리하여 독일연방을 해산시키고 북독일연방을 건설하였다. 또한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로 독일 통일의 장애요인들이 해결됨에 따라 1871년 독일제국이 성립되었다. 연방제를 채택한 독일제국 내에서 프로이센 왕국은 제국영토의 2/3를 차지하여 실질적인 지배세력이 되었다. 제국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빌헬름 1세가 황제를 겸하였고 서남독일의 반프로이센주의를 억압하여 프로이센주의를 추진시켜 나갔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독일제국이 무너지자 프로이센은 바이마르공화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제2차세계대전 후 완전히 소멸되었다. 따라서 오데르·나이세의 2개 강을 포함, 동쪽은 폴란드령, 북쪽 반은 소련령이 되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