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Batu, 1207 ?~1255]        1200 ~ 1300  2009. 4. 2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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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Batu, 1207 ?~1255]
요약
킵차크한국의 제1대 군주. 칭기즈칸의 손자. 1236년 유럽 원정의 총지휘관으로 루시의 공국을 공략하고, 폴란드에 침입하였다. 1241년 슐레지엔서 유럽 연합군을 격파했다. 사라이를 도읍으로 킵차크한국을 세웠다.
국적 킵차크한국
활동분야 정치
본문

칭기즈칸의 손자. 1227년 아버지인 주치[]의 영지를 계승한 뒤, 1236년에 유럽 원정의 총지휘관이 되어 루시의 여러 공국()을 공략하고, 이어 폴란드에 침입하였다. 1241년 슐레지엔의 리그니트에서 슐레지엔공() 하인리히가 이끈 유럽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그해 오고타이칸의 사망으로 회군하였으나, 사라이에 머물면서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킵차크칸국을 세웠다.


킵차크한국[金帳汗國(금장한국)]의 사실상 창시자. 칭기즈 칸의 큰아들 U. 주치의 아들. 오고타이 칸의 명령으로 1236년부터 1242년에 걸쳐 유럽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킵차크초원·러시아·폴란드·헝가리를 공략하여 서구 그리스도교세계를 위협했다. 오고타이 칸의 죽음으로 원정군의 주력이 몽골리아에 귀환한 뒤에도 바투는 군대와 함께 아버지 주치의 소유지인 볼가강 하류지역에 머물러 신왕국 건설에 착수했다. 사라이시를 수도로 하고 몽골군의 군사력을 배경으로 러시아제후를 복속하였으며, 그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지를 지배하도록 하는 간접통치정책을 펴 200여 년에 걸친 몽골 지배의 기초를 다졌다.

1240년 까지 러시아 전역을 정복했다. 중부 유럽 원정 때인 1241년 4월 9일 몽골군의 한 부대가 슐레지엔(지금의 폴란드 일부) 대공(大公)인 하인리히 2세를 무찔렀다. 그가 직접 이끄는 또다른 부대는 2일 뒤에 헝가리군을 무찔렀다. 폴란드, 보헤미아, 헝가리, 도나우 강 유역을 지배하게 된 바투가 서부 유럽을 정복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1241년 12월 몽골 제국의 황제인 오고타이 칸이 죽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바투는 후계자 선정에 참여하기 위해 군대를 철수했고, 그 덕분에 서유럽은 몽골군의 진출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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