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으로서의 진나라는 진시황(진시황은 여불위의 자식으로서 진짜 진나라 황족이 아니었다.) 단 1대만에 멸망했지만 그 전에 왕국에서 시작하여 전국을 통일할 때까지 300년동안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법치주의와 실용정책은 매우 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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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앙 (商鞅 ?∼BC 338)
한비 (韓非 BC 280?∼BC 233)
이사 (李斯 ?∼BC 208)
진 (춘추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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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는 중국의 왕조이다. 주나라, 춘추시대, 전국시대에 걸쳐 존재하였다. 기원전 221년에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지만, 기원전 206년에 멸망 했다. 왕실의 성은 영(嬴), 통일 시의 수도는 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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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주나라 시대
진은 전설에 의하면 은나라의 주왕을 시중든 간신 악래의 후예로 여겨진다. 기원전 900년즈음에 주의 효왕(孝王)을 시중들고 있던 비자(非子)가 말의 생산을 실시해, 공적을 올렸으므로의 영(嬴)이라는 성을 받아, 대부가 되어, 진의 땅에 영지를 받았다고 한다. 전설상에서는 영씨(嬴)는 제순의 신하 백익(伯益)이 받았다고 여겨지고 있다.
진이 최초로 흥한 장소는 현재의 감숙성 례현에서 출현했고, 이 땅에서 진의 선조의 능묘라고 주목받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770년에 주나라가 견융에 쫓겨 동쪽 옮겼을 때에, 양공은 주의 평왕을 호위 한 공으로 주의 구지인 기(岐)에 봉해져서 이후 제후의 반열에 오른다.
[편집] 춘추, 전국시대
춘추시대에 들어가는 동시에 제후가 된 진나라이지만, 풍속적으로 중원 제국과 크게 달라, 당초는 야만스럽다라고 업신여겨지고 있었다. 대대의 진후는 주로 서융과 항쟁하면서 영토를 펼치면서, 법률의 정비등을 실시해 나라의 형태 만들어 갔다. 기원전 677년에는 수도를 옹(雍, 현재의 섬서성 봉상현(陝西省 鳳翔県))에 두었다.
9대 목공는 백리해 등의 타국 출신자를 적극적으로 등용해, 서융을 크게 토벌해 서융의 패자가 되어, 주변의 소국을 합병하고 영토를 펼쳐 근처의 대국 진나라(晋)에도 필적하는 국력을 항상시켰다. 진(晋)이 여희의 난으로 혼란하면서, 혜공을 옹립 하지만, 혜공은 배신을 반복했으므로, 이것을 한원의 땅에서 격파했다. 더욱 혜공이 죽은 후에 혜공의 형 중이를 진(晋)에 입국하여 즉위 시켰다. 중이가 진의 명군 문공이 되어, 그 치세시에는 진(晋)나라가 강격해졌지만, 문공 사후에는 다시 진(晋)을 격파하고, 영토를 강탈했다. 이러한 실적에 의해, 목공는 춘추 오패의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목공이 죽었을 때에 177명의 가신들이 같이 죽었고, 명군과 인재를 한 번에 잃은 진나라은 기세를 잃어, 영토는 축소했다. 그런데도 그만한 힘은 보관 유지하고 있었지만 춘추 중기 이후의 주역은 북쪽의 진(晋)과 남쪽의 초이며, 거기에 서쪽의 진과 동쪽의 제가 겨드랑이를 굳히는 변칙적인 4강시대를 만들고 있었다
전국시대에는 7웅의 하나로 꼽힌다. 이웃나라의 진(晋)은 내부에서의 권력 싸움의 끝에 한·위·조의 삼국에 분열했다. 그 중에 위나라가 전국 초기에는 명군 문후에 의해 강하게 성장이 되어, 진은 위에 의해 압박을 받고 영토를 빼앗긴다.
이 상황에 분개한 25대 군주 효공은 넓게 인재를 구해 대세를 만회할 수 있는 방책을 찾았다. 이에 응한 자가 그 유명한 상앙이다. 상앙은 행정 제도의 개혁·십오제(什伍制)의 채용 등을 실시해, 진을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이 상앙의 변법 운동에 의해 진은 철저한 법치주의 국가로 변모하였고, 국내의 생산력, 군사력을 높여 서서히 다른 육국을 압도하며 갔다. 효공은 기원전 350년에 함양으로 천도했다.
그 후, 효공의 아들 혜문왕이 기원전 324년에 왕을 자칭한다. 기원전 316년에 혜문왕은 촉을 점령해, 이 땅의 개발을 실시하여 한층 더 생산력을 올려 장강의 상류를 차지하게 되었고, 장강의 흐름을 따라 진격할 수 있게 되어 초를 압박할 수 있었고, 초와의 써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섰다. 혜문왕은 모략가인 장의를 등용하고, 초를 질질 끌어 돌려 전쟁으로 격파해, 초의 회왕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혜문왕은 위와 한의 왕들을 각각 마부와 배승으로 삼을 정도로 굴복시켰다. 하지만, 혜문왕의 아들 무왕의 시기에 그가 장의를 내쳐버리자 장의는 위에 망명, 이로 인한 한과의 격전 끝에 많은 군사를 잃었고, 혜문왕 자신은 갑자기 사고사하여,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 전력이 후퇴해 버린다.
이 시기 동쪽에서는 제나라가 신장하고 있어, 은나라의 후예인 송을 병합하는 등 주변 제국을 압박하고 있었다. 기원전 288년에는 제를 동제, 진을 서제라고 자칭한다고 했다. 제나라가 곧바로 제호를 취소했으므로, 진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 시기는 서쪽의 진나라, 동쪽의 제나라의 2강국 시대를 만들고 있었다.그러나 제나라는 연나라의 악의가 지휘하는 5개국 연합군에 의해 수도 임치가 함락. 망국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겪게 되었고,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진나라는 강국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혜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이복동생인 소양왕의 시대에 재상 위염(魏冄)과 백기 장군의 활약으로 몇 번이나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소양왕을 즉위시킨 재상 위염의 권력이 너무 커진 것을 우려한 소양왕은 재상 위염을 갈아 치우고, 대신에 범저(范雎)를 등용한다. 범저가 진언 한 것이 유명한 원교근공책이다. 가까이에 있는 한·위를 거느리고, 먼 제나라와의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이것으로는 승리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먼 토지가 되어, 지키는 것이 어려워져 버린다. 이것에 대해서 먼 제나라나 연나라와 동맹해 가까이의 한·위·조를 공격하면 가까이의 토지가 손에 들어 오게 되었고, 이는 곧바로 진의 영토로 집어 넣는 것이 용이해진다. 이 진언에 감동한 소양왕은 범저를 재상으로 삼았다. 기원전 260년에 백기가 조나라로 진격, 장평 전투를 통하여 조군을 격파, 조의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하여 조나라의 예기를 꺾어버린다. 기원전 255년에 주나라를 멸해 그 영지를 접수했다.
[편집] 진나라 통일 이후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 제31대 왕인 영정이 모든 나라를 멸망하고 통일하여 황제(皇帝)의 위에 오르면서 중국 최초로 제국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오래 가지 못했다.
[편집] 같이 보기
- 통일제국 진
[편집] 역대 군주
- 양공(襄公, 재위 : 기원전 777년 ~ 기원전 766년)
- 문공(文公, 재위 : 기원전 765년 ~ 기원전 716년)
- 영공(寧公, 재위 : 기원전 716년 ~ 기원전 704년)
- 출자(出子, 재위 : 기원전 703년 ~ 기원전 698년)
- 무공(武公, 재위 : 기원전 697년 ~ 기원전 678년)
- 덕공(德公, 재위 : 기원전 677년 ~ 기원전 676년)
- 선공(宣公, 재위 : 기원전 675년 ~ 기원전 664년)
- 성공(成公, 재위 : 기원전 663년 ~ 기원전 660년)
- 목공(穆公, 재위 : 기원전 659년 ~ 기원전 621년)
- 강공(康公, 재위 : 기원전 620년 ~ 기원전 609년)
- 공공(共公, 재위 : 기원전 608년 ~ 기원전 604년)
- 환공(桓公, 재위 : 기원전 603년 ~ 기원전 577년)
- 경공(景公, 재위 : 기원전 576년 ~ 기원전 537년)
- 애공(哀公, 재위 : 기원전 536년 ~ 기원전 501년)
- 혜공(惠公, 재위 : 기원전 500년 ~ 기원전 491년)
- 도공(悼公, 재위 : 기원전 490년 ~ 기원전 477년)
- 여공(厲公, 재위 : 기원전 477년 ~ 기원전 443년)
- 조공(躁公, 재위 : 기원전 443년 ~ 기원전 429년)
- 회공(懷公, 재위 : 기원전 428년 ~ 기원전 425년)
- 영공(靈公, 재위 : 기원전 425년 ~ 기원전 415년)
- 간공(簡公, 재위 : 기원전 414년 ~ 기원전 400년)
- 혜공(惠公, 재위 : 기원전 399년 ~ 기원전 387년)
- 출공(出公, 재위 : 기원전 386년 ~ 기원전 385년)
- 헌공(獻公, 재위 : 기원전 385년 ~ 기원전 362년)
- 효공(孝公, 재위 : 기원전 361년 ~ 기원전 338년)
- 혜문왕(惠文王, 재위 : 기원전 337년 ~ 기원전 311년)
- 무왕(武王, 재위 : 기원전 311년 ~ 기원전 307년)
- 소양왕(昭襄王, 재위 : 기원전 306년 ~ 기원전 251년)
- 효문왕(孝文王, 재위 : 기원전 250년 ~ 기원전 250년)
- 장양왕(莊襄王, 재위 : 기원전 249년 ~ 기원전 247년)
- 진 시황제(始皇帝, 재위 : 기원전 246년 ~ 기원전 2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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