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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마케도니아에 정복된 사건. 마케도니아는 고대 그리스를 정복한 후 페르시아를 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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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38년 마케도니아가 폴리스적() 그리스 세계의 정치적 독립에 종말을 지은 역사적 회전().
본문

BC 339년 봄 중부 그리스델포이에서 개최된 인보동맹회의()는 이웃 나라 안피사에 대해서 이른바 제3차 신성전쟁()을 선언하고 마케도니아왕 필리포스 2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리스 문제에 공공연하게 개입할 기회를 잡은 필리포스는 즉각 군대를 일으켜 포키스령()에 침입하였고, 이에 대처해서 테베가 이끄는 보이오티아 연맹과 아테네는 동맹을 맺고 적의 침공에 대비했다. 이듬해 여름 필리포스가 안피사를 돌파하고 전격적으로 남하()를 개시하자 그리스연합군은 방위선을 카이로네이아에 후퇴시켰다. 양군은 케피소스강() 지류인 하이몬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동쪽에 포진한 그리스 연합군의 병력은 약 3만 5,000, 이에 대해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3만과 기병() 2,000의 병력이었다.

연합군 우익의 아테네 중장보병군() 1만이 상대측의 계략에 빠져 깊이 진격하자 청년 알렉산드로스(뒤의 )가 이끈 마케도니아 좌익군은 정면의 테베 신성대()를 격파해서 연합군의 배후를 공격하였다. 이와 같은 사선진전술()을 응용한 전법에 의해서 그리스 연합군은 괴멸적 타격을 받고,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2세와 그리스연합군의 싸움. 그리스의 패권 장악을 목표로 하는 필립포스의 중부 그리스 진출에 따라 BC 339년 아테네는 웅변가 데모스테네스의 주도로 숙적 테베와 동맹을 맺었다. 이듬해 그리스도시국가 연합군은 남하하는 적과 중부 그리스의 요충 카이로네이아에서 격전을 벌였다. 그리스군은 약 3만 5000,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3만·기병 2000으로 병력은 비슷하였지만 사선진(斜線陣)의 좌익기병 부대를 지휘한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그리스군 주력부대인 테베의 신성대(神聖隊)가 격파되고 아테네군도 포위당하여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승리한 필립포스는 BC 337년 <헬라스연맹>을 결성, 고대 그리스를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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