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왕국 [Lydia]        기원전700~기원전600  2009. 4. 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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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왕국 [Lydia]
요약
소()아시아의 서부지방에서 BC 7∼BC 6세기에 번영한 왕국. 아리안계 나라로서 아리안계 대이동이 있던 시절 같은 아리안계 국가인 히타이트, 미탄니 등과 함께 이주했으며 히타이트 시대에는 아르자와로 불렸다.
본문

이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토지는 비옥하며 광산물도 풍부하였다. 고대부터 동서교통의 요지로서 남쪽은 마이안도로스강()을 거슬러 올라가 북()시리아로 통하고, 북쪽은 소아시아 중부에서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수사에 이르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도()’가 통하였다. 주민은 소아시아 원주민과 인도유럽 어족()의 혼혈로 이루어졌다.

예로부터 왕국이 있었으며, 히타이트 시대에는 아카이아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지금도 카라벨이나 시필로스산()에는 히타이트 시대의 몸돌이 남아 있다. 히타이트 멸망 후에는 프리지아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호메로스의 시()에서는 이 지방을 마이오니아라 불렀다. 프리지아인에 대항하여 일어난 헤라클레스 왕조가 한때 이 지역을 지배하였으나, 메름나다이 왕조의 기게스(재위 BC 687∼BC 660?) 왕이 헤라클레스 왕조를 쓰러뜨리고 세력을 떨치면서 이때 리디아 왕국은 크게 발전하였다. 그는 아시리아와 결탁하여 키메리아인을 격퇴하고 교역을 활발히 하면서 은채광()에도 힘써 국력을 신장시켰다. 또, 그리스와도 활발한 교섭을 전개하여 델포이에 많은 헌금()을 하기도 하였다.

알리아테스(재위 BC 605∼BC 560) 때에는 메디아인의 침입으로 싸움이 벌어졌으나, 그때 일어난 일식()을 보고 두려워한 나머지 양국은 하류스강을 국경으로 화약을 맺었다. 이 일식은 탈레스가 예언한 BC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나 유명해졌으며, 사건의 절대연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다음의 크로이수스(재위 BC 560∼BC 546) 때에는 리디아의 전성기로, 소아시아 서해안까지 국토를 넓혀 그곳의 그리스인을 복속시켰고 프리지아도 속국으로 만들었다. 또, 크로이수스는 그리스 문화에 심취하여 탈레스, 아이소포스 등 그리스 문인을 보호하기도 하였다. 그 후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번영하였던 수도 사르디스는 불타버리고, 리디아는 페르시아의 한 주()가 되었다. 페르시아 멸망 후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영토가 되었다가 후에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동방과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BC 700년 무렵에는 세계 최초로 각인화폐()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20세기 초 미국의 프린스턴대학 조사단이 사르디스 신전(殿)과 400기()의 무덤을 발굴한 결과 당시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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