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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제우스의 땅이라 일컬어졌다. 가장 신성한 아폴로 신앙의 도시는 델포이(델피)였으며 이 두 도시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聖地였다. 기독교가 득세하는 서기 5세기 전까지 그 번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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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경내인 알티스, 즉 '신성한 제우스의 숲'은 한 변이 182.9m 이상 되는 사다리꼴로 크로노스 구릉이 북쪽 경계선을 이루었고 3면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내부에는 제우스 및 헤라의 신전과 더불어 제단과 봉헌물, 보물고, 관리실 등이 있었다. 바깥에는 체육시설과 숙박소, 목욕탕 등 방문객들을 위한 설비가 있었다. 제우스 신전은 올림피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그리스 최대의 도리아식 신전이었다. BC 460년경에 건축가 엘리스의 리본이 지었으며 이 지방에서 나는 거친 역암을 재료로 썼고 드러난 표면에는 흰색의 고운 치장벽토를 입혔다. 신전은 정면에 6개의 기둥과 양옆에 13개의 기둥이 있었다. 프로나오스(현관)와 오피스토도모스(뒷면 현관)가 있었고 나오스(감실[龕室], 벽으로 둘러싸인 부분)는 2줄의 가는 기둥들에 의해 3개의 통로로 나뉘어 있었다. 지붕의 기와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신전은 많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대부분은 오늘날까지 남아 올림피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정면 박공벽에는 펠롭스와 오이노마오스가 전차경주를 준비하는 장면을 새겼다. 뒷면 박공벽에는 라피타이족과 켄타우로스족이 페리투스의 결혼식에서 싸우는 장면이 새겨졌다. 이 조각들은 초기 고전시대 양식의 걸작들이지만 작가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들이 파이오니오스와 알카메네스의 작품이라고 보는 파우사니아스의 견해는 그들이 5세기말에 활동한 인물들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정면과 후면 현관 위쪽에 있는 소벽(frieze)에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노고를 조각한 판벽이 앞뒤로 각각 6개씩 배치되어 있었다. 박공 꼭대기에는 도금한 승리의 여신상이 있었고 4면 모퉁이에도 도금한 큰 솥이 놓여 있었으나 이것들은 남아 있지 않다.
신전 내부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제우스 상이 있었는데 이는 아테네의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작품으로 고대의 모든 조각상 중에서 가장 유명하며 세계의 7개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보는 사람마다 이 조각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일반적으로 페이디아스가 호메로스의 작품에 나오는 제우스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는 평을 듣는다. 제우스 신은 정교하게 만든 보좌에 앉아서 오른손에 승리의 여신(니케)상과 왼손에 왕홀(王笏)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서기 5세기 무렵에 파괴된 이 조각상은 페이디아스와 그 조수들이 알티스 바깥에 있는 신전 서쪽의 건물에서 부분으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만든 것이었다. 뒤이어 교회로 바뀐 이 건물은 파우사니아스 시대에도 여전히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1954~58년의 발굴에서 이 작업장은 극적으로 실체가 확인되었다. 건물 안쪽과 주변, 특히 남쪽 방향의 깊은 지층에서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버린 것이 분명한 물품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 물품 가운데는 조각도구와 은, 세공된 상아와 뼈조각, 유리 장식품, 주형 등이 있었다. 매우 무거운 자재로 만든 진흙 주형은 어떤 것은 쇠막대로 보강한 대형의 것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이례적으로 형상을 알아볼 수 있게 보존되어 있었다. 이 주형은 금으로 된 얇은 판을 두드려 만든 의복의 원형임이 분명하다. 이 파편더미들과 함께 발견된 도기들로 미루어볼 때 이 작업장은 BC 430년경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실은 페이디아스가 BC 438년에 완성한 금과 상아로 된 그의 또다른 대형 조각품인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을 만들기 전에 제우스 상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후에 만들었는지를 둘러싸고 빚어진 해묵은 논쟁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즉 새로운 증거에 따르면 아테네 여신상을 만든 후에 제우스 상을 만들었다는 견해가 거의 확실하다. 도기 중에 이랑무늬가 있는 원통형 찻잔 하나는 그 바닥에 '페이디아스의 것'이라는 글씨가 단정하고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의 대제단은 흔히 생각하듯이 신전 정면에 있지 않고 옆쪽으로 헤라 신전 가까이에 있었다. 그 모양은 타원형이며 계단으로 올라가게 만든 높이 세운 받침대가 있었고 받침대 위로는 제우스에게 희생물로 바친 짐승의 넓적다리를 태운 재가 커다란 봉분을 이루고 있었다. 제단 전체의 높이는 6.7m에 달했다.
올림피아의 가장 오래된 신전이며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경배받는 신전의 하나는 헤라 신전이다. 이 신전은 원래 제우스 신전이 별도로 세워지기 전까지는 헤라와 제우스의 공동신전이었다. 간혹 헤라 신전이 BC 11세기나 BC 10세기에 세워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타당치 않은 견해로 지적된다. 지금 남아 있는 신전은 아마도 BC 600년경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주랑(柱廊)이 없는 전단계의 신전은 BC 8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다. 헤라 신전은 길고 좁은 모양에 양끝을 가로질러 6개의 기둥과 양옆을 따라 16개의 기둥이 있다. 기둥은 도리아식인데 원래 나무로 만들었다가 점차 석재로 바꾸었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2세기에도 오피스토도모스(뒷면 현관)에는 아직 나무 기둥 하나가 남아 있었다. 엔타블레이처(平枋)로 만들었고 벽의 윗부분은 진흙벽돌을 사용했다. 감실에는 실내기둥이 두 줄로 늘어서 있고 기둥이 하나 걸러씩 버팀벽으로 감실에 부착되어 격리된 구획을 이루었다. 파우사니아스의 견해에 따르면 신전에는 보좌에 앉아 있는 헤라의 상이 제우스의 입상 옆에 있었다고 한다. 헤라의 것으로 보이는 고대양식의 석회석 두상이 발견되었다. 파우사니아스는 또한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고가는 헤르메스의 석상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작품은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것으로 1877년에 신전의 감실에서 발견되었으며 올림피아 박물관이 가장 자랑하는 소장품의 하나이다.
크로노스 언덕의 가장 아래쪽 능선에는 1줄로 지은 12개의 보물고가 알티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리아식 신전 모양으로 지은 이 소형 건축물들은 BC 6세기 이래의 것들이다. 이것은 여러 도리아인 국가들이 세운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 시키온과 메가라, 겔라의 세 보물고만이 지면에 형상을 그림으로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의 자재들이 남아 있다. 이것들은 여러 나라에서 자기 시민들이 올림픽 경기에 승리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 또는 올림피아의 제우스에 대한 일반적인 경의 표시로 지은 것이며 신전의 재산이 되는 봉헌된 예물들을 보관하는 데 쓰였다. 제우스와 헤라의 신전 사이에 엘리아의 영웅 페롭스의 성소가 알티스 내에 있었다. 이곳은 지붕이 없고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내부에 나무와 조상들이 있었다. 메트룸, 즉 '대모신(大母神) 신전'은 BC 4세기의 작은 도리아식 건물로 보물고 바로 아래쪽에 있었다. 로마 시대에는 대모신 숭배의 풍습이 사라졌기 때문에 발굴했을 때 이 신전에는 로마 황제들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내부에 코린트식의 반면(半面) 기둥이 있는 이오니아 양식의 둥근 건물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가 BC 338년 카이로네아에서 그리스인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다. 필리페움이라고 부르는 이 건물은 금과 상아로 된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그리고 그밖의 일족들의 조각상을 비치하고 있었다.
알티스 북서쪽 모퉁이에 자리잡은 프리타네움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피우는 화로와 올림픽 승리자들이 잔치를 벌이는 연회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헤로데스 아티코스의 엑세드라'는 호화로운 장식에 반원형으로 설계된 대형의 분수대였다. 이것은 헤로데스 아티코스가 자기 부인 레길라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분수대 위에는 20여 개에 달하는 헤로데스와 그 가족, 그리고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조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메아리 주랑은 그 벽에 그림들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스토아 포이킬레, 즉 그림 주랑이라고 했지만 그 내부에서 한 마디 하면 7차례 이상 메아리가 울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메아리 주랑이라고 불렀다. 이 주랑은 알티스의 동쪽 끝에 있었으며 경기장 제방을 떠받치고 있는 알티스의 동쪽 벽과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이 주랑은 BC 4세기 중엽 직후에 건립한 것으로 그 바닥 아래쪽 깊은 지층에서 초기 고전시대 경기장의 출발선이 발견되었다. 자네스는 이유없이 경기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부과한 벌금으로 비용을 조달해 세운 제우스의 청동상들이었다. 그 가운데 16개의 받침대가 운동선수들이 출입하던 경기장의 입구 바로 바깥에서 발견되었다. 불레우테리온, 즉 회의장은 알티스 바로 바깥에 남쪽으로 있었다. 여기 있는 2채의 도리아식 건물은 건축한 연도는 다르지만 반원형의 끝부분이 서쪽을 향해 있는 동일한 타원형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의 공간에는 직4각형의 뜰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제우스 호르키오스(맹세의식을 주재하는 제우스)의 상이 서 있었다. 이 상 옆에서 운동선수들은 경기중에 반칙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 알티스 바깥에 남서쪽으로 레오니다이움이 있었는데 이는 특별한 방문객들을 수용하기 위한 숙박시설로 BC 4세기에 건축된 것이며 로마 시대에 개축되었다. 북서쪽으로는 레슬링 선수와 권투선수들의 훈련장인 팔라이스트라와 공들여 지은 현관 문 및 경주로가 있는 체육관이 있었다.
경기장은 알티스의 동쪽편에 있었는데, 초기 고전시대에는 경기장이 성역과 분리되지 않았고 경주로의 한쪽 끝이 제우스의 신전과 대제단 바로 정면 지점(이후에 생긴 메아리 주랑 아래쪽)에 있었다. BC 4세기 중엽에 경기장이 약 82m가량 동쪽으로 가서 약간 북쪽편의 위치로 옮겨졌다(→ 스타디움). 경주 주위에는 관람객 수용을 위해 비탈진 거대한 제방을 만들었다. 메아리 주랑이 있는 곳과 나란히 붙어 있는 서쪽 제방은 경기장과 알티스를 효과적으로 구획짓는 역할을 했다. 두 곳 사이의 연결은 크립테라고 부르는 지붕을 씌운 입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제방을 뚫고 나 있었으며 로마 시대에는 돌로 지은 둥근 지붕이 그 위에 씌워져 있었다. 이 입구는 운동선수와 심판들이 이용했다. 경기장에는 알티스에 가장 가까운 출발선에서 1/3가량 나아간 지점에 남쪽으로 자리잡은 칸막이 관람석에만 유일하게 돌로 만든 좌석이 놓여 있었다. 이곳은 올림픽 경기의 주심들인 '헬라노디카이'가 앉는 자리였다. 칸막이 좌석 정반대쪽에는 데메테르 카미네스 여신의 제단이 있었고 이곳에서 그 여신의 여사제들이 경기를 관람하는 특권을 누렸다(결혼한 여자는 올림픽 제전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미혼인 여자들은 허용되었음). 경주로는 길이가 약 210m에 폭이 32m였고 돌로 된 낮은 난간으로 비탈진 제방과 분리되어 있었고 난간 옆으로는 중간중간에 세면대가 있는 돌로 된 수로가 뻗어 있었다. 경주로의 실제 코스는 양쪽 끝에 돌로 만든 출발선으로 표시해놓았다. 그 거리는 약 192.28m에 달했고 한 번에 20명의 경주자가 동시에 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전형적인 경주는 한 코스 달리기였으며 또한 두 코스 거리의 '디아울로스'와 장거리 경주인 '돌리코스'가 있었다. 장거리 경주는 여러 가지였는데 24 코스 또는 거의 4.6㎞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다른 체육경기도 경기장에서 열렸다. 4세기에 지은 이 경기장은 충분하게 발굴되어 경주로와 제방이 복원되었다. 경기장 제방을 발굴할 때 많은 봉헌물들이 출토되었다. 그중에는 작은 청동상과 부조, 테라코타 조상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예술품들도 있었다. BC 47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군의 반실물 크기의 제우스 및 가니메데스 상들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밖의 것들은 신전에 봉헌된 무기나 갑옷들이었다. 올림피아 박물관에는 세계 최대의 고대 그리스 무기 소장품이 갖추어져 있으며 그중 일부에는 흥미로운 사료로 쓸 수 있는 명문들이 새겨져 있다. 예컨대 어떤 페르시아 투구에는 "아테네인들이 메디아인에게서 빼앗아 제우스에게 바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경마장은 이 경기장 남쪽으로 알피오스 강의 트여진 계곡에 있었다고 하는데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파우사니아스는 경마장과 거기 설치된 정교한 출발장치에 관해 길게 설명하고 있다.
E. Vanderpool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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