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황까지 무릎꿇리겠다던 몽골제국의 황제. 1200 ~ 1300 2009. 4. 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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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은 야만국가에 가까웠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문명, 그리고 이전에 남아있던 그리스 로마의 문물이 어우러졌이기는 했으나 그것이 부활할 무렵은 아니었고 '지독한' 중세시대였죠. 현대 유럽의 상황을 가지고 당시 유럽을 잣대짓는 것은 참으로 곤란합니다. 오히려 당시는 이슬람 세력이 만개하던 무렵이었고 유럽의 이른바 '대빵'은 비잔틴이었습니다. 만약 몽골이 없었다면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슬람이 유럽을 먹어치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전부터 심심치 않은 소문이 돌죠. 기독교 십지파에서 갈라진 "전설의 기독교 제왕"이 유럽을 구원하기 위해 이슬람을 친다는 소문이 '전설'이 되어서 돌았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셀주크 투르크를 치는 호라즘 제국, 그리고 호라즘 제국을 치는 칭기스칸의 얘기가 윤색되어 전달된 결과인데, 이는 기독교 왕국 내에서 벌어진 일종의 "안보"를 위한 선무공작이라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프레스터 존 설화)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벌인 전세계 정벌과정은 우리는 짧게 느낄지 모르지만 기간을 따지면 몇십년동안이나 벌어졌습니다. 몽골 단합, 탕구트 정벌, 금나라 정벌, 이슬람 제국 멸살 (이집트까지 갔죠), 러시아 정벌, 동유럽 원정, 남송 진군, 인도차이나 정벌, 일본 정벌 등.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던 것은 바로 이슬람 정벌이었습니다. 비잔틴 제국도 꼼짝 못하던 셀주크 투르크가 몽케칸의 형제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박살나버렸으니까요. 훌라구는 여기에 아시다시피 일 칸국을 세웠고, 약 백년간 일칸국은 이슬람 문명을 철저히 유린하며 역사적으로는 기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있다가 티무르의 손아귀에 말려듭니다.
러시아는 그럼 안 중요하냐 ? ... 별로 그 당시로서는 ... 프랑크인들은 러시아 사람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군데군데 존재하던 러시아 공국들이 몽골에 당하여 먹힐 때까지도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칭기스칸의 장남 주치가 낳은 '바투'가 동유럽에 가서 헨리가 이끄는 기사단을 박살내버리고 헝가리까지 먹어치운 후에 "당시 몽골 칸이 사망하여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배경"이 없었다면 유럽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을 겁니다. 이 때 교황청에서는 밀사를 보내는데 '카르피니'라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르코 폴로가 몽골에 간 첫째 인물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몽골에 대해서 잘 기록한 이들은 수도사들이고 카르피니가 첫째 인물입니다. (게다가 마르코 폴로보다도 중요시 되는 몽골 제국 당시의 기록자는 이븐 바투타입니다.) 카르피니는 몽골의 위력을 알고 경악하였습니다. 몽골의 당시 칸은 교황조차 자기 앞에 무릎을 꿇리겠다하는 불세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건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하죠.
어쨌든 당시 유럽은 "현재의 라틴아메리카" 신세였습니다. 다만, 몽골 내부의 사정과 팽창정책이 낳은 일종의 내홍은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을 막았는데 정말 유럽이 강력했더라면 몽골은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를 지배하던 킵차크 칸국, 이슬람 지역을 지배하는 일 칸국끼리는 오히려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이집트의 맘루크에게 이용을 당하였으니까요. (맘루크는 킵차크 칸국의 투르크 용병을 수입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칭기스칸을 천년의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야말로 전세계적인 격변기였지요.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몽골 관련 서적은 유원수씨의 번역 등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엉터리이며 주관적인 감상 및 비평만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몽골 관련 역사책은 주로 칭기스칸의 부흥 내지, 칭기스칸 관련 소설은 있어도, 어찌 하여 몽골제국이 분열하여 멸망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원전은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이전부터 심심치 않은 소문이 돌죠. 기독교 십지파에서 갈라진 "전설의 기독교 제왕"이 유럽을 구원하기 위해 이슬람을 친다는 소문이 '전설'이 되어서 돌았습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셀주크 투르크를 치는 호라즘 제국, 그리고 호라즘 제국을 치는 칭기스칸의 얘기가 윤색되어 전달된 결과인데, 이는 기독교 왕국 내에서 벌어진 일종의 "안보"를 위한 선무공작이라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프레스터 존 설화)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벌인 전세계 정벌과정은 우리는 짧게 느낄지 모르지만 기간을 따지면 몇십년동안이나 벌어졌습니다. 몽골 단합, 탕구트 정벌, 금나라 정벌, 이슬람 제국 멸살 (이집트까지 갔죠), 러시아 정벌, 동유럽 원정, 남송 진군, 인도차이나 정벌, 일본 정벌 등. 그 과정에서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던 것은 바로 이슬람 정벌이었습니다. 비잔틴 제국도 꼼짝 못하던 셀주크 투르크가 몽케칸의 형제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박살나버렸으니까요. 훌라구는 여기에 아시다시피 일 칸국을 세웠고, 약 백년간 일칸국은 이슬람 문명을 철저히 유린하며 역사적으로는 기실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있다가 티무르의 손아귀에 말려듭니다.
러시아는 그럼 안 중요하냐 ? ... 별로 그 당시로서는 ... 프랑크인들은 러시아 사람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군데군데 존재하던 러시아 공국들이 몽골에 당하여 먹힐 때까지도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다만 칭기스칸의 장남 주치가 낳은 '바투'가 동유럽에 가서 헨리가 이끄는 기사단을 박살내버리고 헝가리까지 먹어치운 후에 "당시 몽골 칸이 사망하여 권력다툼이 일어나는 배경"이 없었다면 유럽은 아마 쑥대밭이 되었을 겁니다. 이 때 교황청에서는 밀사를 보내는데 '카르피니'라는 인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르코 폴로가 몽골에 간 첫째 인물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몽골에 대해서 잘 기록한 이들은 수도사들이고 카르피니가 첫째 인물입니다. (게다가 마르코 폴로보다도 중요시 되는 몽골 제국 당시의 기록자는 이븐 바투타입니다.) 카르피니는 몽골의 위력을 알고 경악하였습니다. 몽골의 당시 칸은 교황조차 자기 앞에 무릎을 꿇리겠다하는 불세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건 아직도 보관되어있다 하죠.
어쨌든 당시 유럽은 "현재의 라틴아메리카" 신세였습니다. 다만, 몽골 내부의 사정과 팽창정책이 낳은 일종의 내홍은 유럽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을 막았는데 정말 유럽이 강력했더라면 몽골은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러시아를 지배하던 킵차크 칸국, 이슬람 지역을 지배하는 일 칸국끼리는 오히려 서로 치고받고 하면서 이집트의 맘루크에게 이용을 당하였으니까요. (맘루크는 킵차크 칸국의 투르크 용병을 수입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칭기스칸을 천년의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야말로 전세계적인 격변기였지요.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몽골 관련 서적은 유원수씨의 번역 등을 제외하곤 대다수가 엉터리이며 주관적인 감상 및 비평만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몽골 관련 역사책은 주로 칭기스칸의 부흥 내지, 칭기스칸 관련 소설은 있어도, 어찌 하여 몽골제국이 분열하여 멸망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는 원전은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카르피니 [Giovanni da Pian del Carpi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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