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의 변은 몽골황제 알탄 칸이 명나라의 수도 북경을 포위한 사건이다.
중국인이 명나라를 일으켜 중원에서 몽골인들을 몰아내기는 했으나 몽골인들이 멸족한 것은 아니었다.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다시 세를 키워 재기에 성공한다.
만두하이는 오이라트부족을 몽골초원에서 몰아내었으며 그 아들 바투몽케(다얀 칸이 되기전 이름: 징기스칸이 대칸이 되기 전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쓴 것과 같다.)가 즉위하여 오이라트부를 몰아내고 보르지긴씨(징기스칸의 혈통)를 다시 몽골 황위에 복귀 시켰다.
카르친(하르친,지금의 내몽고 지역에 있던 부족)의 이브라힘 타이시가 그의 지위를 대체하기위해 보내어진 바투몽케의 아들 울루스볼트를 죽이자 바투몽케는 보복으로 카르친을 공격하였지만 우랑카이족이 이브라힘 타이시에게 가세하여 실패하였다.
바투몽케는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였다. 그가 교역 개방을 위해 보낸 사절은 중국 황제에의해 피살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명나라로 원정군을 출발시켰다. 이때부터 몽골군과 명군은 오랜기간 전쟁을 하게 된다.
수년 후 바투몽케는 카르친족과 우랑카이족을 쳐부셨다. 그리고 그 귀족들을 살해하였다. 몽골부족을 통일한 후 그는 스스로를 타얀 칸(재위:1470 – 1517) 또는 대칸으로 선언하였다.
다얀 칸의 지배하에 뭉친 몽골족은 좌익: 할하족, 차하르족, 우랑카이, 우익: 오르도스족, 투마드족 기타: 옹기라트, 카르친.
몽골문헌에 따르면 그와 만두하이의 치세는 평화로웠다.
다얀 칸은 1497년에서 1505년 사이에는 가정제가 다스리는 명나라의 요동과 감숙성을 정복하였으며 1510년에는 함부로 설치는 명나라군을 응징하기 위해 화북지방을 점령하고 은을 빼앗는 쾌거를 올렸다.
다얀 칸의 손자 알탄 칸은 1542년 명나라의 맹장 장세충을 죽이고 산서성을 중심으로 한 18주현에서 20만 명을 잡아갔으며 1550년에는 명나라 수도 북경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1552년 몽골인의 원래 수도인 카라코룸에서 오이라트부를 몰아내고 카라코룸을 수복하였다. 1566년에는 청해(칭하이성: 지도 참조)을 정복하고 1572년에는 티베트까지 원정하였다. 알탄 칸이 몽골사상 최초로 라마불교를 받아들인 인물이다. 원나라(1300년대에 망한)가 라마불교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조선에서나 가르치는 거짓말이다. 원나라는 성리학때문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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