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주크 제국(셀주크 투르크)        1000 ~ 1100  2009. 4. 27.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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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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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제국

말리크 샤 1세의 사후 셀주크 투르크의 최대 판도 (1092년 경)
수도 니샤푸르
정치체제 전제군주제-술탄제
종교 이슬람 수니파
성립 1037년
해체 1194년
초대 술탄 토그릴 베그
(1037–1063)
최후 술탄 토그릴 일
(1174-1194)
성립 이전 카라한 왕조
해체 이후 룸 술탄국

셀주크 제국 (터키어: Selçuklular 셀주크룰라르, 페르시아어: سلجوقيان 살주키얀; 아랍어 سلجوق 살주크, 또는 السلاجقة 알-살라지카)또는 셀주크 투르크11세기경 부터 14세기까지 중앙 아시아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를 말한다. 셀주크 왕조라고 하기도 한다. 셀주크 투르크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연합체로 발흥하여 중동에서 투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고 제1차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터키, 투르크메니스탄의 투르크인들의 문화적 조상으로 여겨지며 페르시아 문화의 보호자였다.

목차

[숨기기]

[편집] 초기역사

10세기경 셀주크라는 수장이 지휘하는 유목민의 일단이 볼가강을 넘어 흑해연안의 스텝지역으로 건너왔다. 셀주크 가문은 오구즈 투르크멘 부족이 그 기원으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곧 남하하여 이란 북부에서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하였다. 이후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 페르시아에 동화되었으며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조의 용병으로 있었으나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

셀주크인들은 처음에 사만 왕조와 동맹을 맺고 카라한 왕조, 가즈나 왕조 맞서 싸웠으나 사만 왕조가 권력투쟁에서 패하자 스스로 독립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

[편집] 셀주크 제국의 발전

셀주크의 손자인 차그리 베그토그릴 베그는 가즈나 왕조의 마무드 지원을 받았으나 1037년 가즈니를 공격하여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웠다. 1055년 토그릴은 부와이 왕조에게서 승리하여 바그다드를 정복했기 때문에 셀주크는 수니파 칼리프 주도하에 이슬람의 통일을 회복시킨 존재로 여겨졌다. 1063년 차그리가 토그릴은 이란 서부와 메소포타미아를 포괄하는 제국의 수장이 되었다.

차그리 베이의 아들 알프 아르슬란 때에 이르러 셀주크의 세력을 더욱 강대해져 메소포타미아,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권을 확대했으며 1064년 아르메니아그루지야를 복속하였고 1068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였다.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티움 황제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를 포로로 붙잡았다. 이로써 셀주크인들은 소아시아로 진출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알프 아르슬란의 뒤를 이은 말리크 샤 1세에는 제국의 영토가 더욱 확장 되었다. 이슬람의 침입이전 이란의 영토이었던 지역의 대부분을 복속하였는데 동쪽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는 제국의 수도를 라이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바그다드에 학교를 세우고 군대제도를 개선하였다. 그의 치세에 셀주크 제국은 전성기를 이루어 1087년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로 부터 "동방과 서방의 술탄"의 칭호를 얻었다.

당시 와지르 니잠 알 물크는 제국내 행정조직을 개편하여 이슬람 문화에 크나큰 유산을 남겼다. 일종의 이슬람의 신학 대학인 마드라사 조직이 형성되어 행정관료들과 신학자들에게 통일된 교육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니잠 알 물크는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아사신에 의해 살해당했다.

[편집] 제국의 분할과 십자군

1092년 말리크 샤 1세가 죽자 제국은 그의 형제와 네명의 아들들의 권력 투쟁으로 분할되었다. 소아시아는 룸 술탄국을 창설한 킬리지 아르슬란 1세에게 계승되었고 시리아는 말리크 샤의 형제인 투투스 1세에게 게승되었다가 다시 그의 아들들에 의해 분할 되었다. 페르시아는 그의 네 아들들의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한 셀주크의 분열을 틈타 1095년 군중 십자군1차 십자군이 침공해 왔다. 킬리지 아르슬란은 군중 십자군을 이겼으나 1차 십자군을 얕잡아보아 니케아에서 패배, 십자군은 니케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을 차례로 정복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비록한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

1118년 말리크의 셋째 아들인 아메드 산자가 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했으나 바그다드에서는 그의 형 마무드 2세가 스스로 술탄을 차처하였다. 1131년 아메드 산자는 형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했으나 여전히 불안정하였다. 아메드 산자는 각지에서 일어난 카라한과 반란에 대처하여야 했고 제2차 십자군의 침입에도 맞서야 했다.

1153년 오구즈 투르크가 반란을 일으켰고 산자는 축출되었다. 이후 그의 계승자들이 셀주크를 다시 통합하려고 하였으나 십자군 국가들과 비잔티움의 공세로 인해 번번히 실패했다. 3년후 산자가 죽자 제국의 분열을 더욱 가속되었고 아타베그들은 독립했다.

[편집] 제국의 몰락

1194년 이란의 마지막 셀주크가 전사하고 1200년경 셀주크 권력은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끝났다. 이후 이집트의 칼리프 위대한 살라딘의 지도아래 시리아가 셀주크의 세력하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루지아아르메니아와 함께 셀주크의 영향력을 벗어났다.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프도 점차 힘을 키워서 독립해 버렸고 결국 예전 셀주크 제국에서 남아있는 곳은 소아시아의 룸 술탄국과 주변 뿐이었다.

13세기에 이르러 셀주크는 더욱 몰락하여 결국 몽골 제국아나톨리아를 침입했을때 완전히 세력을 상실하고, 몇몇 에미레이트로 분할 되었다. 그중에 하나인 오스만 투르크가 나중에 다시 대 제국을 세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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