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셀주크 [al-Rum Seljuk]        1000 ~ 1100  2009. 4. 2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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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셀주크왕조 [al-Rum Seljuk]
요약
셀주크투르크족이 소아시아의 룸에 건설한 왕조(1077∼1308).
본문

아나톨 셀주크왕조라고도 한다. ‘룸’이란 본래 로마를 의미하였으나, 후에는 주로 소아시아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이란의 대()셀주크왕조의 한 분파이지만, 각지에 흩어진 셀주크계 분파 중에서 가장 유력한 왕조였다.

시조는 술레이만(재위 1077∼86)으로 대셀주크왕조의 말리크 샤 시대에 소아시아 방면의 군사 지휘자로 임명되어 니케아에 진출하였는데, 1077년 그곳의 군주가 되었다. 이것이 왕조의 시작이며, 이 왕조는 투르크족의 가장 강력한 전위대로서 십자군의 공격에 과감히 저항하여 그리스도교 세력의 동진()을 저지하였다. 십자군의 내습 이후 처음 도읍지였던 니케아에서 내륙으로 이동하여 코냐로 천도하였다. 1219년에 알라에딘 케이 쿠바드 1세(재위 1219~37)가 즉위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하여 건축 ·공예 ·학술 ·종교 등 각 방면에서 문화의 꽃을 피웠고, 통상에서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의 사망 후 투르크만족의 반란과 몽골군의 침입이 시작되어, 1243년에는 몽골 원정군에게 패하고 일한국의 속주가 되면서 쇠퇴하였다.

그 후 1308년에 기야스 우딘 메수트 3세(재위 1830)가 카이세리에에서 급사함으로써 멸망하였다. 그러나 소아시아의 투르크화 및 이슬람화 촉진에 크게 이바지하여 투르크민족의 지반으로 닦음으로써 후에 오스만 투르크의 발전기반이 되었다.

룸셀주크왕조 (Rum Seljuk)

요약
아나톨리아에 있었던 투르크계 왕조.
설명
아나톨리아(룸)에 있었던 투르크계 왕조(1077∼1308). 왕조의 시조인 술레이만은 1071년 말라즈기르드전투 후, 아나톨리아에 들어가서 니케아를 점령하고 룸지방에 셀주크왕조를 창건하였다. 술레이만의 아들 퀼리치 아르슬란 1세(재위 1092∼1107) 때에는 제1차 십자군에 의한 공격으로 니케아를 빼앗겼으며, 이후 수도는 아나톨리아 중앙부에 있는 코냐에 설치되었다. 12세기 후반 술탄 퀼리치 아르슬란 2세(재위 1155∼92)의 치하에서 국력은 크게 신장되어, 아나톨리아 모슬렘 투르크인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13세기 전반에는 왕조 내분을 수습한 술레이만 샤(shāh) 이후 1219년 알라 우딘 케이쿠바트 1세가 즉위하면서 황금기를 맞았다. 그러나 케이쿠바트를 이은 케이후스라우 2세(재위 1237∼45) 때 몽골군의 침공을 받고 원정군에게 패하여, 이후 몽골제국에 종속하는 입장이 되어 끝내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14세기 초 역사에서 그 모습이 사라졌다. 이 왕조 때에 아나톨리아의 투르크화와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수도 코냐에는 이슬람사원이나 사원학교 등이 많이 건설되었다.


1076년 셀주크의 3대 술탄 말리크샤의 사촌 동생인 슐레이만 샤라는 자가 봉토를 지급받아 비잔틴에게 빼앗은 룸지방의 영토를 가지게 되고 그곳의 술탄이 되니 이게 룸 셀주크왕조입니다..

슐레이만 샤 이전에도 쿠타미쉬라는 귀족이 그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1060년이 건국년도로도 볼수 있습니다..

슐레이만 샤의 뒤를 이어 15세의 키리쥬 아르슬란1세가 즉위했는데 이 어린 술탄이 즉위할 당시 피에르라는 정신병자가 이끈 군중 십자군이 쳐들어왔는데 키리쥬 아르슬란1세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참전하여 군대라고도 볼수도 없던 이 불량배들을 쳐부쉈는데 사실 이건 전투도 아니고 대학살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1차 프랑크 전쟁때 십자군과 제일 먼저 맞서 싸운 것도 키리쥬 아르슬란1세였습니다.. 키리쥬 아르슬란1세는 같은 투르크 공국인 다니시만드 술탄국과 접전을 벌이다가 십자군이 침공한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 도릴레움에서 보에몽이 이끄는 십자군을 기습하여 화살로 불량배(기사)들을 다수 쏘아 죽였고 수많은 불량배들을 잃은 보에몽은 강가로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포위중 갑자기 지원온 불량배들이 기병대를 받는 바람에 보에몽도 힘을 얻어 죽을 힘을 다해 대항하자 키리쥬 아르슬란1세는 일단 철수하였고 다음 전투에서 수많은 불량배단장들을 포로로 잡는 전과를 올립니다..

그러나 너무 인자하고 온화한 성격의 키리쥬 아르슬란1세는 이 쓰레기같은 놈들을 모조리 놓아주었고 결국 이놈들은 아나톨리아를 거쳐 결국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어 짐승같은 학살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후로도 룸셀주크는 힘을 얻어 각지에서 십자군과 불량배들을 격파하여 통과를 허용하지 않았고 결국 최후로 도이치 황제인 프리드리히 바바로사라는 빨간 수염의 늙은이가 아나톨리아를 마지막으로 원정하였으나 그도 셀주크군의 기습을 받아 도망가다가 세이한강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군대는 그가 죽자 그냥 무너졌고 이렇게 하여 룸셀주크는 프랑크전쟁 당시 살라딘 못지 않는 무훈을 세웠습니다..

바바로사 이후로 더 이상 아나톨리아로 원정한 십자군은 없었습니다... 룸 셀주크는 코냐와 니케아를 수도를 삼아 번성하였고 기야드 앗딘 케이 쿠스라우2세때는 황금기를 맞아 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241년 쾨세다크전투에서 바이주 노얀이 이끈 에케 몽골 울루스군에게 기야드 앗딘 케이 쿠스라우2세가 패배하고 몽골제국의 속국이 되면서 룸 셀주크의 황금기는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내분과 일칸국의 속국이 되어 일칸국의 명에 따라 술탄이 여러 차례 바뀌고 되풀이 하다가 결국 공국 중에 제일 세력이 강한 오스만1세가 오스만제국을 세우고 1307년 기야드 앗딘 메수드3세를 살해함으로써 룸 셀주크는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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