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말 노르만의 로제르 1세가 시칠리아를 점령한 후 그의 아들 로제르 2세가 1130년 건국한 나라로, 이전의 비잔틴제국과 이슬람 지배 세력의 전통을 계승한 중앙집권적 국가였다. 1194년 신성로마황제 하인리히 6세와의 결혼 관계로 독일 호엔슈타우펜 왕가의 지배를 받아 프리드리히 2세(재위 1215∼1250) 때 정치적 ·문화적으로 최성기를 맞이하였다. 1266년 교황 클레멘스 4세가 프랑스의 앙주백(伯) 샤를에게 시칠리아를 위임하자, 로제르 2세의 서자(庶子) 만프레드가 대항하다가 실패하였고, 1282년 시칠리아의 만종(晩鐘)사건으로 앙주가(家)의 지배는 벗어났으나 곧 이베리아반도의 아라곤왕국 페드로 3세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시칠리아의 왕이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왕을 겸했으나, 이후에는 나폴리왕국은 앙주백이, 시칠리아는 아라곤왕이 지배하였다. 1443년 아라곤왕 겸 시칠리아 국왕 알폰소 5세(재위 1438∼1481)가 나폴리왕국을 점령하여 스스로 양(兩)시칠리아의 국왕이라 칭하였다. 1647년 에스파냐왕을 겸한 아라곤의 지배에 대항한 시칠리아 도민의 반란이 있었으나 진압되어 에스파냐의 지배를 받았고, 1713∼1720년 이탈리아의 사보이가(家)가 시칠리아를, 오스트리아가 나폴리왕국을 지배하다가 1734년 양 지역 모두 에스파냐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나폴레옹체제 붕괴 후인 1816년 페르난도 7세(재위 1814∼1833)가 종래 시칠리아왕국과 나폴리왕국을 정식으로 병합하여 양시칠리아왕국을 건설하였다. 1820, 1848년의 혁명을 거쳐 1860년 5월에는 G.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을 이끌고 상륙하여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를 축출하였다. 같은해 10월에는 국민투표 실시로 이 지역이 사르데냐왕국으로 병합되어 양시칠리아 왕국은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