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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이란 도교에서 깨달은 사람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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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처기 [, 1148~1227]
요약
도교의 한 일파인 전진교의 개조 왕중양의 가르침을 받아 전진교 7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정치 수완이 탁월하여 칭기즈칸의 도움으로 교단을 크게 발전시켰다. 인도까지 가서 면세 특권과 도교에 대한 총관할권을 얻었다고 한다.
장춘자
별칭 자 통밀, 일명 장춘진인
국적 중국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중국 산둥성 시샤현
본문

자 통밀(). 호 장춘자(). 일명 장춘진인(). 산둥성[] 시샤현[] 출생. 도교()의 한 파인 전진교의 개조() 왕중양()의 가르침으로 학문이 깊어져, 전진교 7진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정치적 수완이 탁월하여 교단의 쇠퇴를 막았으며, 금나라와 송()나라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사태를 주시하다가 칭기즈칸[]의 부름에는 응하여 인도지방까지 가서, 면세()의 특권과 도교에 대한 총관할권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전진교는 원나라 때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금(金)나라 말기에서 원(元)나라 초기에 걸쳐 전진교(全眞敎) 개조(開祖)인 왕중양(王重陽)의 7진(七眞), 즉 고제자(高弟子) 7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1219년 서정(西征)중이던 칭기즈 칸의 부름에 따라 제자 18명을 거느리고 사막을 건너 태조와 만나 도교(道敎)의 최고책임자라는 칙명을 받고 연경(燕京, 北京)에 돌아왔다. 천장관(天長觀)에 거주했으며 뒤에 천장관을 장춘궁(長春宮)이라 개칭했는데 이곳이 명대(明代) 이후 전진교총림(全眞敎叢林, 총본산) 백운관(白雲觀)의 전신(前身)이다. 이 당시의 여행기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가 있고, 이 밖에 문집 《반계집(磻溪集)》 등이 있다. 지금도 백운관에는 장춘조사(長春祖師)를 봉사(奉祀)하는 구조전(丘祖殿)이 있고 장춘진인 외에 장진인(張眞人) 이하 8명의 백운관 장교(掌敎;住持) 조사들을 좌우에 배치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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