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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House of Savoia)

요약
제2차세계대전 직후까지 이탈리아에 군림했던 왕가.
설명
제2차세계대전 직후까지 이탈리아에 군림했던 왕가. 11세기 프랑스의 부르고뉴지방 봉건영주였던 움베르토 1세가 시조이다.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피에몬테 지방으로 영토를 넓혀 1416년 공국(公國)이 되었다. 15세기 중엽부터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대립·항쟁의 틈에서 종종 작은 나라의 비운을 겪었으나, 루이 14세 시대에는 열국의 세력균형을 이용하여 지위를 확보하고, 에스파냐 계승전쟁의 결과로 시칠리아 등지의 영토를 획득함과 동시에 왕호(王號)도 얻었다(1713). 1720년 시칠리아를 사르데냐와 교환하여 사르데냐왕국을 건설하였으나, 프랑스 대혁명 후 나폴레옹체제하에서 본토의 영토를 전부 잃었다. 그러나 빈체제와 더불어 옛 영토를 회복하고, 제노바를 합병하여 이탈리아 제1의 영방(領邦)이 되었으며, 1861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46년 국민투표로 공화제가 탄생함으로써 이 가문의 이탈리아 지배는 마감되었다.
사보이가 [Savoia]
요약
이탈리아가 공화제가 될 때까지의 이탈리아를 통치한 왕가.

11세기에 사보이백()으로 서임된 움베르토 비안카마노(907?∼1048)를 시조로 일어나, 지금의 프랑스령 사부아(사보이)에서 점차 알프스 이남의 이탈리아 쪽으로 세력을 뻗쳐 마침내 피에몬테까지 영역을 확대하여 사보이공국()을 형성하고, 1416년 아메데오 8세 때에 공()의 칭호를 획득하였다.

한때 제네바·니스까지도 영유하여 북이탈리아에서 큰 세력을 이루었고, 에스파냐계승전쟁 후의 위트레흐트조약으로 시칠리아를 획득하고, 1713년에는 시칠리아왕으로 칭하게 되었다. 1718년 오스트리아의 요구에 따라 시칠리아를 사르데냐와 교환하여 당시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가 초대 사르데냐왕이 되었다.

1831년 사보이가의 혈통이 끊어지자 방계()의 사보이 카리냐노가()의 카를로 알베르토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이탈리아왕이 되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정권을 장악한 뒤 독재자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왕국의 영토였던 바티칸을 기독교 교황에게 돌려주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콘스탄틴 처럼 종교적 인기를 이용하여 약한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던 계략) 2차 대전 종료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함과 함께 이탈리아는 공화정으로 이행하고 사보이 왕가는 국민투표로 이탈리아 반도에서 쫓겨나고 이탈리아 반도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P.S.: 가만 생각해보면 불쌍한 집안. 모나코같이 자기 副만 챙기면서 버텨서 왕국을 세울 수도 있었지만 괜히 자기 공령인 사보이공령까지 내놓으면서 이탈리아 통일을 했다가 되려 이탈리아에서 쫓겨나고 들어가지도 못 하고 땅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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