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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Thales, BC 624?~BC 546?]
요약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7현인()의 제1인자이며 밀레토스학파의 시조. 만물의 근원을 추구한 철학의 창시자이며 그 근원은 ‘물’이라고 하였다. 물을 생명을 위하여 불가결한 것으로 보았다. 변화하는 만물에 일관하는 본질적인 것을 문제삼은 데 그의 공적이 있다.
별칭 물의 철학자
활동분야 철학
출생지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
본문

소아시아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 출생이다. 페니키아인의 혈통이며, 당초에는 상인으로 재산을 모아 이집트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배웠다. BC 585년 5월 28일 일식()을 예언하였는데, 그것은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적 지식에 의했던 듯하다. 이집트의 경험적·실용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최초의 기하학을 확립하였다. ‘원()은 지름에 의해서 2등분된다’, ‘2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의 크기는 같다’, ‘두 직선이 교차할 때 그 맞꼭지각의 크기는 같다’ 등의 정리()는 그가 발견한 것이다. 또, 닮은꼴을 이용하여 해안에서 해상에 있는 배[]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였고, 자석()이 금속을 끌어당기는 작용도 그의 발견으로 전한다.

또한 만물의 근원을 추구한 철학의 창시자이며 그 근원은 ‘물’이라고 하였다(형이상학). 물은 생명을 위하여 불가결한 것이며, 또 물이 고체 ·액체 ·기체라는 3가지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에서 그렇게 추정한 듯하다(물활론). 변화하는 만물에 일관하는 본질적인 것을 문제로 한 점에 그의 불후의 공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대지()는 둥근 편평상()이며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의 철학자라 불렸다.



BC 6세기에 활동. 소아시아 밀레토스 출생.
이 모든 물질의 본질이라는 데 기초한 우주론과 많은 연구자들이 BC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스의 사상가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BC 624년에 태어났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제58회 올림픽 대회(BC 548~545) 때를 그가 죽은 나이(78세)로 잡았다.
탈레스의 글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당시의 자료도 없다. 그러므로 그의 업적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전설적인 7현인의 정전에 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이상화되었고, 틀림없이 가짜가 많지만 많은 행동과 격언이 그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탈레스는 에게 지역의 이오니아 도시들의 연합을 옹호한 현실 정치가였다. 그리스의 학자 칼리마코스는 탈레스가 항해사들에게 북쪽 하늘에서 눈에 띄는 별자리 중 큰곰자리보다 작은곰자리를 기준으로 키를 잡으라고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또 탈레스는 기하학 지식을 사용하여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측량하고 바닷가에서는 바다에 떠 있는 배까지의 거리를 계산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지어낸 것이지만 탈레스의 명성을 잘 보여준다. 그가 리디아의 알리아테스와 메디아의 시악사레스 사이의 전쟁을 멈추게 한 일식을 BC 585년에 예측했다는 주장은 좀더 타당성이 있다. 예측했다고 말했다. 일식이 거의 개기일식이었고 결정적인 전투 기간에 일어났기 때문.
기하학에서 탈레스는 5개의 정리(定理)를 발견한 인물로 알려져왔다. ① 원은 그 지름에 의해 2분된다. ② 같은 길이의 두 변을 갖는 3각형의 밑변의 두 각은 같다. ③ 교차하는 직선의 맞꼭지각은 같다. ④ 반원에 내접하는 각은 직각이다. ⑤ 밑변과 밑변에 관계된 두 각이 주어지면 3각형이 하나 결정된다. 그러나 특별한 발견은 매우 유명한 지혜로운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고대의 관례 때문에 그의 수학적 업적도 정확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탈레스가 유럽 철학의 창시자라는 주장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최초로 우주의 단일한 물질적 기체(基體), 즉 물 또는 습기를 주장한 인물이라고 썼다. 탈레스는 철학자로서 신화를 비난했지만 그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물을 선택한 것은 전통적으로 선례가 있었다. 탈레스가 물을 선택하면서 생각했음직한 것은 물이, 예컨대 증기가 되는 능력에서 보여주는 겉모습의 운동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변화하거나 운동하는 것은 생명 자체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탈레스에게 전체 우주는 물에서 증발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요소).
탈레스의 중요성은 물을 본질적인 실체로 선택한 점보다는 현상을 단순화하여 자연을 설명하려 한 데 있고, 신들의 변덕보다는 자연 자체 안에서 원인을 탐구한 데 있다. 탈레스는 그의 계승자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처럼 신화의 세계와 이성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은 중요한 인물이다.



1. 탈레스와 비장의 책




탈레스는 그리이스 일곱현인 중에서도 최고라고 일컬어 질 만큼 유명한 수학자이며 철학자로서, 기원 전 620년 경에 그리이스 이오니아 해안의 밀레토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상인인 아버지와 어느날 함께 지중해를 건너 먼 이집트로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집트의 고전에 관심을 가져온 그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먼저 그는 피라미드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저렇게 웅장한 것을 인간이 만들 수 있었을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가 이집트인으로부터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불가사의한 책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책을 꼭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탈레스는 이집트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 책의 소재를 탐문해 본 결과 어느 사원의 사고(事庫)에 비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기쁨에 넘쳐 그는 이 사원의 승려에게 그 책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좀체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탈레스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끈질기게 부탁을 계속했더니 그 승려도 결국은 그의 열성에 마음이 움직여 그 책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이 책은 수학과 천문에 관하여 쓴 것으로서, 탈레스가 그 방면에 평소부터 연구해 왔기 때문에 꿈에서도 읽을 만큼 그 책을 열심히 읽어 그 내용을 흡수하였다.






2. 일식을 예언




탈레스는 기원 전 585년 5월 28일 일식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예언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오늘날에는 신비한 일도 아니지만, 기원 전 585년에는 태양의 일부 또는 전체가 달에 의해 가리워진 다는 것을 예언하는 일은 세상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탈레스가 비록 이집트를 다녀온 천문학자라 해도 설마 태양이 이지러진다는 것을 알 수야 있겠느 냐고 생각하여 마을 사람들은 5월 28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 날은 왔다.
탈레스는 예언은 적중하였다. 한낮에 하늘은 갑자기 밤이 온 것처럼 어두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탈레스가 천문에도 밝다는 사실에 경탄해 마지 않았다. 그리하여 탈레스는 단지 수학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천문학자로 서도 그 명성이 그리이스 전역에 떨쳐지게 되었다.






3. 노파에게 훈계를 받다




천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탈레스는 자주 하늘을 쳐다 보면서 연구에 열중하였다. 그 날 저녁에도 전과 같이 무심히 밤하늘을 보면서 산보하고 있었다. 지상의 것은 어느 하나도 관심이 없 었다. 갑자기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라 보니 그 소리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었다. 별에 정신 을 팔고 걷다가 길옆의 웅덩이에 빠진 것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 그곳에서 기어올라와서는 일단 집으로 돌아 와 이 사실을 노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노파는 웃으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현자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자신은 바로 눈 앞의 일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하늘의 일 까지 알려고 하는가?"라고.






4. 피라밋의 높이를 재다




옛부터 이집트에서는, 사람은 그 육신은 죽어도 영혼만은 죽지 않으며 또 어느 때인가는 되돌아 온다는 이른바 영혼불멸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국왕이 죽으면 피라밋이라는 거대한 묘에 유해가 썩지 않도록 해서 묻었다.



탈레스는 이 피라밋이 높이를 잰 것이다. 비례에 대하여 아직도 확실한 지식이 없었던 그 당시에, 그는 비례의 성질을 이용하였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의 그림자와 피라밋의 그림자의 비가 피라밋의 높이 와 지팡이의 길이의 비와 같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발견이었다.






5. 탈레스의 제자들




탈레스는 고향인 이오니아에 돌아와 학교를 세우고 많은 제자들과 함께 수학을 연구하였다. 따라서, 그의 제자 중에는 유명한 수학자가 있다. 그 중에도 아낙시만델과 아낙사고라스, 아낙레메네스
등은 최고의 수학자들이다. 그들을 학계에서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부르고 있다. 

아낙시만델은 어떤 사정으로 붙잡혀 오랜 기간 감옥살이를 했는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수학을 연구하였다. 그 때 연구한 것 중의 하나는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를 가진 정4각형을 만들라는 문제였다. 


이것은 '원적문제' 로 알려진 기하학의 3대난문 중의 하나로서, 자와 컴파스만으로는 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는 증명되고 있다. 탈레스는 비례 뿐만 아니라 초등기하학의 각 부분에도 손을 대어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 등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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