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8세기 말경의 사람으로 추측되며, 호메로스를 정점으로 하는 ‘이오니아파(派)’의 서사시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보이오티아파’ 서사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오락성이 짙고 화려한 이오니아파의 시에 대해, 그의 작품은 종교적 ·교훈적 ·실용적인 면이 두드러지고 중후한 성격을 지녔다. 그의 작품으로 간주되는 것은 많이 있지만 현존하는 것은 《신통기(神統記) Theogoniā》 《노동과 나날 Erga kai Hēmerai》의 2편뿐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자서전적인 기술(記述)을 종합해 보면, 소아시아의 항구도시에서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가 그리스 본토로 돌아와 보이오티아 지방의 아스쿠라 마을에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는데, 아버지의 사후(死後)에 헤시오도스는 그 유산을 지키며 견실하게 살았으나, 노동을 싫어하는 동생 페르세스가 유력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한 재판으로 헤시오도스의 상속분까지 가로채려고 하였다.
《노동과 나날》은 그런 동생을 훈계할 목적으로 농경기술과 노동의 신성함을 서술한 것이다. 《신통기》에서 그 자신이 말하듯이, 그는 젊었을 때 시작(詩作)에 착수, 그리스 문학사상 특이한 지위를 차지하는 농민시인이 되었다. 《신통기》 1,022행은 천지의 창조, 신들의 탄생을 매우 소박한 세계관에 입각하여 계통적으로 서술한 작품으로 그의 독창적인 사색이 그 근간을 이룬다. 《노동과 나날》은 판도라 및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 등이 포함되고 설화성(說話性)도 있으며, 또한 사계(四季)의 추이(推移)를 전원의 풍물에 맡긴 목가적 서술도 뛰어나다. 너무나 인간적인 호메로스의 신들을 종교적으로 순화(純化)하고, 제우스가 관장하는 정의에 대한 신뢰로 살아가려고 힘쓴 헤시오도스의 사상은 후세까지 그리스인의 윤리관을 떠받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