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코 2세 [Necho II, ?~?]        기원전500~기원전400  2009. 4. 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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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인들에게 아프리카 일주항해를 성공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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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코 2세 [Necho II, ?~?]
요약
이집트 제26왕조의 제2대 왕(재위 BC 610~BC 595). 카르케미시전투에서 대패한 후 다시는 이집트로 오려 하지 않았다. 홍해와 나일강 사이의 운하 건설을 계획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국적 이집트
활동분야 정치
본문

프삼티크 1세의 아들이다. 유대의 왕 요시아를 죽이고, 왕 에호아하즈를 퇴위시키고는 팔레스타인을 발판으로 하여 새로 일어난 신()바빌로니아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BC 605년 카르케미시전투에서 바빌론의 왕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대패하였다. 그는 이 패전으로 인해 다시는 이집트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홍해와 나일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려고 노력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페니키아 인은 기원전 600년경이라는 매우 이른 시기에 아프리카 일주의 항해를 달성했다.



이 점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상세한 기술로 증명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헤로도토스 자신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아시아와 이어지는 장소를 제외하고, 아프리카가 완전히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최근 들어 이집트의 왕 네코 2세(609-594 BC)에 의해 처음으로 이야기되어진 일이다. 이 왕은 나일 강과 아라비아 만을 잇는 운하의 건설을 중지하고, 대신에 페니키아 인에게 함대를 편성케 하여 홍해에서 인도양으로 나가서 아프리카를 서쪽으로 빙 돌고,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에서 지중해로 들어가서, 이집트까지 돌아오도록 명했다."



페니키아 인들은 도중에 두 번이나 긴 시간 동안 육지로 올라가서 곡물을 재배하여 수확하기도 했는데, 마침내 2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아프리카를 일주했다.



헤로도토스는 아프리카의 선단을 돌았을 때, 해가 북쪽에 보였고, 오른쪽에서 떠올랐다는 말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나, 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페니키아 인이 적도를 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참고로 말하자면 바스코 다 가마의 아프리카 일주 항해는 1497년에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페니키아 인의 아프리카 일주 항해에 비하면 2000여년의 격차가 있다.

내용출처 : [도서] '미스터리 세계사', 프랜시스 히칭, 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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