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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피아의 제우스신상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가 비바람은 물론 천둥과 벼락을 만드는 신이라고 믿었다. 벼락은 하늘에서 내린 신의 징벌로 생각했기 때문에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도시마다 제우스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아무래도 그리스 반도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올림피아(올림피아는 도시
가 아니고 신전과 경기장이 세워진 장소다)에 안치된 제우스 신상이었다.


 
 
   
제우스 신상의 건설          그리스인들은 가장 먼저 올림피아의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우스를 위해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건축했다. 기원전 4백70년의 일이다. 이 건물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회석으로 건설됐는데 하얀색의 치장 회반죽을 건물 외벽에 바랐다.

제우스 신전의 놀라운 점은 인간의 착시 현상을 고려해 건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의 아테네에 보존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동일한 굵기의 기둥이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된 직사각형의 ‘반듯한’ 건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지어진 건물은 이와 매우 다르다. 우선 가장자리 기둥은 가운데 있는 기둥보다 좁은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이와 같이 불균형하게 건설한 것은 만일 동일한 굵기로 만든 기둥을 동일한 간격으로 세웠다면 건물의 모양은 직사각형이 아니라 위나 옆으로 퍼져 보이기 때문이다. 대들보의 가운데도 위로 볼록하게 휘어져 있으며, 가장자리의 기둥은 안쪽으로 약간 휘어져 있다. 기둥은 위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수치적으로 정확하게 그려진 수평선은 실제로는 중앙 부분이 처진 듯이 보이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거대한 돌들을 맞춰 나가면서 중앙부를 약간 들어올렸다.

제우스 신상은 신전이 건설된 후 40년이 지났을 때 피디아스에게 주문됐다. 피디아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로 기원전 4백70년에 피라테에서 8m나 되는 대형 아테나 신상을 만들었고,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을 조각했다. 그는 크리세레환틴 방식(나무에 상아와 금을 입히는 장식)을 사용해 10m 크기의 아테나 여신상을 완성했으며, 아테나 신상 덕분에 피디아스는 그리스가 배출한 최고의 조각가로 자리매김했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기원전 4백47년 제우스상을 완성했다. 이것이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나 여신상과 함께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제우스 신상도 아테나 여신상과 마찬가지로 크리세레환틴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13m나 되는 제우스상은 높이가 90cm, 길이 10m, 폭 6.65m 크기의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옥좌에 앉아 있는데 천장에 거의 맞닿을 정도였다. 제우스를 서있는 형태로 조각했다면 거의 18m나 달하는 거인이었다. 이와 같이 거대한 신상임에도 불구하고 피디아스는 제우스의 신성한 위엄과 너그러움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들었다.
   
 
 신전의 파괴

제우스 신상 앞에는 파로스에서 운반된 백색 대리석으로 된 웅덩이가 있는데 그것은 신상에 사용된 상아가 적정 습도를 유지하도록 칠하는 기름을 보관하는 곳이다. 반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는 기름 대신에 물이 준비됐다. 그것은 파르테논 신전이 건설된 아크로폴리스가 고지대여서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기름 대신 물을 사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기독교가 들어오자 제우스 신전도 수난을 면치 못한다. 393년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올림픽 경기를 금지시키고, 그의 손자인 테오도시우스 2세는 제우스 신전에 대해 더 강력한 명령을 내린다. 신전을 완전히 파괴하라는 것이다. 물론 단서가 붙었다. 신전을 철저히 파괴하되 제우스 신상만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라는 것이다. 당시에 이 신상을 옮기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은 기록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제우스 신상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후 얼마되지 않은 475년에 화재가 일어나 한줌의 재로 변했다.
     
 
  발굴 및 현재

1755년 독일인 학자 빈켈만(John J. Winchelmann :1717 ~ 1786)이 <고대 그리스 미술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면서 고대문화에 대한 열기에 불을 당기기 시작했다.

  1766년 영국인 찬들러(O. Chandler)가 빈켈만의 고대미술사와 고대시가지지(古代詩歌地誌)의 두 권의 책을 안내로 삼아 이 올림피아 유적지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고대 올림피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쪽 엘리스주(州)에 있으며, 북으로 크로니온(Kronion;제우스 신의 부친 Kronos에서 유래됨) 산자락 구릉과 서쪽에 그라디오스(Gradios)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동경기를 마친 뒤에나 또는 연습 후 목욕이나 샤워를 이 그라디오스 강에서 했고, 또한 이 물을 끌어들여 올림피아 도시에서 목욕탕에 사용하였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위치는 이곳이 정확했다.

찬들러는 발굴에 착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우스 신전'을 발굴하였다.

 182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가 단기간 발굴에 착수하여 메도프(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그 후 50여 년이 흐른 1876년, 베를린 대학교수 E.쿠르티우스(1814~1896)의 발굴계획을 독일 정부가 승인한 후 그리스 정부도 발굴유물을 현지에 보관한다는 엄격한 단서를 붙여 허가하니 6년간에 걸친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때의 발굴작업은 현재의 유적지 규모로 발굴됨으로 그 당시의 체육시설의 건축분야와 기록동판 13,800매, 비석 400개, 조각품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4차 발굴은 1937∼58년(제2차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중단)에 실시되었는데,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는 학술적으로 대단히 귀중한 성과를 올렸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페이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올림포스 산의 제우스에게 봉헌된 신전 유적지. 전설에 따르면 이 곳에 신전이 세워진 것은 신화상의 듀켈리온(Deucalion)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역사시대에 제우스 숭배가 시작되었다. BC515년 아테네의 참주(僭主)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착공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AD124~125년경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신전 안에는 황금과 상아로 만든 제우스 상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보다 웅장했다는 건물은 4세기에 고트족이 파괴했고 지금은 열다섯개의 코린트식 기둥만 남아 있다. 발굴은 1889년~1886년에 펜로즈(E. Penrose)에 의해 그리고 1922년에 웰터(G. Welter)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 트라블로스(Travlos)에 의해 1960년대에도 이루어졌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는 뛰어난 건축가와 조각가들이 많았었다. 아테네 화가 카르미데스의 아들인 페이디아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기원전 490년경에 태어난 그는 그리스 조각의 고전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서, 그가 조각한 것이라고 입증할 만한 작품은 없지만 파르테논 신전에 장식된 조각들을 통해서 그 작풍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책에서는 아테네의 파르테노스상(象)과 올림피아의 제우스상(象)은 그가 조각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제우스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의 펠레포네소스반도 북서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神域)으로서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알려져 있다.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곳 올림피아는 종교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처음 그리스인들은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후에는 제우스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기원전 457년에 우뢰의 신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상을 안치하였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개씩,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에 있는 제우스상은 높이가 90cm,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에 닿고 있다. 제우스상은 보석과 흑단(黑檀),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는 위치에 있다. 오른손으로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 니케상(象)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은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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