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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 시대를 이끈 5현제 중 으뜸 가는 황제로서 그리스도교를 소탕하는 한편 로마제국 최대 전성기를 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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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 [Marcus Ulpius Trajanus, 53.9.18~117.8.8]
요약
로마 황제(재위 98∼117). 원로원과의 협조 자세를 유지하고, 빈민 자녀의 부양정책, 이탈리아의 도시 ·농촌 회복시책을 추진하였다. 다키아, 나바타이왕국, 메소포타미아 등을 속주로 만들었고 로마제국 최대의 판도를 과시하였다.
국적 로마제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히스파니아 이탈리카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둥 / 로마의 황제 트라야누스는 101-102년과 105-106년에 이긴 다치아(현재의 루마니아) 정복의 기념으로 포룸을 건설하였다. 다치안전투를 묘사한 장면으로 세부장식이 되어 있는 이 기둥이 포룸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본문

로마 황제(재위 98∼117). 바이티카 이탈리카 출생. 오현제() 중 제2대 황제이다. 에스파냐 출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특히 군인으로서 명망이 높아 군대의 신망을 얻었으며, 네르바제()의 양자가 되어 제위를 계승하였다. 원로원과의 협조 자세를 유지하고, 빈민 자녀의 부양정책, 이탈리아의 도시 ·농촌 회복시책을 추진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로마제국 판도의 확장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도나우강을 건너 다키아를 정복하여 속주로 하였으며, 또 남쪽으로는 사하라사막의 경계까지 진출하여 요소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다시 동방으로는 나바타이왕국을 병합하여 속주 아라비아로 하였으며, 아르메니아메소포타미아에서 파르티아군을 몰아내고 아시리아까지도 속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 파르티아의 반격, 이집트 ·유대의 반란을 당하여 아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포기하였다. 동방으로부터 로마로 귀환 도중 병사하였다. 로마제국 최대의 판도를 과시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The extent of the Roman Empire under Trajanus (117)

File:Traianus Glyptothek Munich 72.jpg


베네벤토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개선문
West face of the Arch of Beneventum

Trajan with German tribesTrajan as Pontifex











베네벤토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개선문 부조 더 보기: http://www.dl.ket.org/latinlit/historia/empire/beneventum/15benetour.htm

안코나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개선문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개선문

 

로마제국의 10대 기독교 박해사건                                

연도

황제

박해의 유형 및 범위

대표적인 순교자

64

네로
로마와 근교 부근에서 박해를 가했다.
바울
베드로

90년경
-96년

도미티아누스
로마와 소아시아 지역에서 일시적이고도 산발적인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의 황제숭배 거부로 비롯되었다.
로마의 클레멘트
사도요한(밧모섬에 유배)

98-117

트라야누스
점차 박해가 강화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비애국적인 집단으로 규정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발견 즉시 처형되었다.
이그나티우스
시므온
조시므스
루프스

117-138

하드리아누스
황제 숭배는 계속되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하는 자는 처벌되었다.
텔레스포루스

16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배격한 스토아주의자인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자연재해의 장본인으로 규정하였다.
순교자 저스틴
포티누스
블란디나

202-211

셉티무스
세베루스
기독교로의 개종을 금지시켰다.
레오니다스
이레니우스
페르페투아

235-236

트라키아의
막시미누스
기독교 성직자를 처단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황제가 암살한 전임황제를지지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다.
우르술라
히폴리투스

249-251

데키우스
최초로 제국전체에 박해의 손길을 펼친 그는 황제숭배의 향기로운 제물을 요구하였고 기독교의 완전한 파멸과 더불어 이교신앙으로 복귀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파비아누스
예루살렘의 알렉산더

257-260

발레리아누스
그리스도인의 재산을 몰수하며 그들의 공민권(公民權)을 박탈하였다.
오리겐
씨프리아
식스투스 2세

303-311

디오클레티아누스
갈레리우스
가장 혹독한 박해로서 교회는 파괴되었고 성서는 불태워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시민권은 박탈위기에 처했으며 로마신들에 대한 숭배가 강요되었다.
마우리티우스
알바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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