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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Euc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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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로마 시대의 으뜸가는 수학자.
기하학 논문인 〈기하학 원본 Stoicheia〉이 잘 알려져 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BC 323~285/283 재위)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쳤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중세 번역가들과 편집자들은 가끔 1세기 전의 플라톤과 같은 시대 사람인 메가라의 철학자 유클레이데스를 에우클레이데스와 혼동하여 그를 메가렌시스라고 불렀다. 5세기에 그리스 철학자 프로클로스는 "기학학에서 〈기하학 원본〉의 방법보다 쉬운 길은 없는가"하고 질문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질문에 "기하학에 왕도는 없다"고 대답한 에우클레이데스의 이야기를 전했다. 또한 알렉산드리아의 한 학생이 기하학의 첫 명제를 배운 뒤 이런 것들을 배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자 프로클로스는 하인을 불러서 "배운 것으로 이익을 얻어야만 하는 그에게 동전 세닢을 주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저술된 시대부터 현재까지 〈기하학 원본〉은 인간 문제에 중요한 영향을 끊임없이 미쳐왔다. 〈기하학 원본〉은 19세기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출현할 때까지 기하학의 추론·정리·방법의 주요한 근원이었다. 〈기하학 원본〉은 서구세계에서 씌어진 책 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출판·번역·연구되었다고 한다. 에우클레이데스가 일급 수학자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의 교본이 2,000년 이상 바뀌지 않고 사용되어왔으므로 일급 수학 교사임에는 틀림없다.
B. L. van der Waerden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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